 소멸로 인한 이별은 기묘하고 복잡다단한 감정을 만들어낸다. 내 몸체만한 그림과 짐을 싣고 샌프란시스코에서 돌아온 나를 마중 나오신 어머님의 빨간 차에 지친 몸을 싣고 한숨을 돌리자 호머 심슨을 닮은 유쾌하고 인자하신 아버님께서 전과는 달리 조용히 말씀을 꺼내셨다.
“있지 말이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단다. 음, 나쁜 소식은 지난번 큰 애기가 미국으로 떠나고 며칠 뒤 ‘랑켄’이 그만 죽어 버린 것이고, 좋은 소식은 그래도 랑켄이 오래 고생하지 않고 많은 사랑 속에서 편히 갔다는 사실이란다.”
아홉 살의 랑켄은 최근 미국에서 입양한 쥬디를 포함해 지금껏 내가 키워오던 고양이 네 남매의 둘째 격이다. 대학원시절부터 키워오던 랑켄은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제목에서 따온 이름이다.
생후 1개월 만에 계단에서 떨어져 목이 꺾인 채 아물게 된 랑켄은 ‘홍대 앞 꽃집 고양이’의 새끼이자 푸른빛이 감도는 회색의 장모종 페르시안이었다. 나나와 바마 사이에 낀, 전형적인 둘째의 성격을 가진 이 녀석을 남편은 가장 애중해했다. 다섯 살 많은 첫째 나나의 까칠함과 다섯 살 적은 바마의 따돌림에 묻혀서 잘 챙겨주지 못했던 미안함으로 늘 다음을 기약케 했던 녀석은 그렇게 나에게 급작스레 그 기회를 박탈해버렸다.
“아…그랬군요. 왜 진즉 말씀 안 하셨어요?
제가 걱정할까봐 그러셨군요.”,
“둘이 미국에서 외롭게 지내는데, 이 소식을 들으면 더 우울해질까 걱정 돼서 다시 들어 올 때까지 기다린 거란다.”
운전 중이시던 어머니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고 늦여름의 차안은 축축한 공기로 가득 찼다. 태재고개로 올라가는 작은 차는 탈탈거리는 소리를 내며 도심의 불빛과 멀어져갔다. 뒷좌석에 짐과 함께 끼어 앉은 나는 적잖은 충격과 슬픔에 목이 메었다.
“랑켄이 어떻게 죽었나요?”
“올여름이 워낙 더웠잖니.
안 그래도 털이 많은 랑켄이 뭘 잘못 먹더구나.
그래서 식욕이 별로 없나보다 했지.
차츰 날씨가 살만해지려나 했더니 갑자기 기력을 잃어가서 걱정을 많이 했었지.
어느 날 이른 아침, 2층에서 꺼이꺼이 우는 소리가 들려서 올라가보니 애미가 랑켄을 쓰다듬으며 목 놓아 울고 있더구나.
마치 자기 엄마가 돌아가신 것처럼.”
어머님은 당신의 이야기를 말없이 들으시며 조용히 운전만 하고 계셨다. 어머님을 놀래 켰던 그날이 떠오르는지, 온몸이 쇠약해져 홀로 걸을 수 없는 친정 노모를 떠올리시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서글프고 복잡한 그 마음만은 짐작이 갔다.
“어머님, 죄송하고 감사해요.
고양이의 죽음도 지켜보기 힘드셨을 텐데,
그런 모습까지 보게 해드려서 송구스럽네요.”
“걱정마라.
멀리 사는 네가 우울해지지 않게 마음 잘 챙기고 너무 슬퍼하지 마라.”
운전 중이던 어머님께서 나지막하고 따뜻하게 말씀하셨다.
얼마 후 함께 올라가 본 랑켄의 무덤은 뒷산 중턱 빛이 잘 드는 조용한 곳에 있는 듯 없는 듯 묵은 낙엽으로 뒤 덮여 있었다. 다른 산짐승들이 파헤칠까봐 아버님이 자주 올라와보셨다는 그곳에 나는 서둘러 핀 코스모스와 하얀 개망초를 꺾어서 한 다발 놓아두었다. 어머님 아버님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가볍게 감싸 안으셨다.
“그래도 큰 애기가 생각보단 울지 않는구나.
우리들이 걱정을 정말 많이 했거든.”
묵묵히 랑켄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고양이 화가’ 며느리가 신기했는지 아버님께서 빙긋 웃으시며 말씀하신다.
“어머님께서 많이 슬퍼해 주셨으니까요.
아버님 말씀처럼 많은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잘 지내다 갔잖아요. 처음 추락 했을 때 안락사를 고려했었다고 꽃집 주인이 말해줬어요. 그러니 지금껏 잘 지내준 것만도 랑켄으로선 최선을 다 한 건지 모르죠.
더 이상 기울어진 목 때문에 불편해 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더 이상 고생 없이….”
소멸로 인한 많은 이별이 우리 앞에 있다.
그것은 마냥 슬프지만도 마냥 지속되는 것도 아니다.
작은 고양이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이별들을 떠올리거나 예상하며 인생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소중히 배워간다. 사람의 생의 주기보다 턱 없이 짧은 동물친구들이 알려주는 이별의 의미는 그래서 더 애틋하고 감사할 일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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