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연극인 부부다.

연출가인 남편 김진만과 그의 아내인 나, 배우 조정민은 새로운 세기의 시작이었던 2000년도에 2인극 페스티벌의 태동과 함께 만났다. 남편 김진만이 여러 동지들과 함께 만든 2인극 페스티벌은 ‘최소단위 인간관계에 대한 밀도 있는 고찰을 통하여,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에 관한 극적인 탐구’를 목적으로 출발하였으며, 꾸준히 발전을 거듭해 올해 13회째를 맞이하면서 연극계의 대표적인 예술축제가 되었다. 2인극은 ‘소통의 출발이자 작은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부부는 말 그대로 ‘2인극과 함께 사랑의 소통을 시작하여 13년 동안 사랑의 완성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소싯적 아무것도 모르고 오로지 열정 하나로 시작한 연극이 이제는 삶 전체를 관통할 정도로 큰 의미를 지닐 수 있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연극을 통해 우연히 만나서 이제는 필연이 된 우리의 삶 또한 극적인 상황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우연과 필연이 교차하며 서로의 삶 전체가 되어버린 연극 속에 남편이 있고 내가 있다. 우리의 삶은 연극 그 자체이고, 연극과 함께 우리의 모든 사랑은 존재한다.
 그동안 나는 남편이 연출한 여러 작품에 배우로 출연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했으며 지금도 가족뮤지컬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뮤지컬 <큐빅스 대모험>의 유리, 국내 최초의 기상과학 뮤지컬 <판도라의 날씨상자>의 구름박사, 국립극장에서 공연했으며 인라인을 활용해 세상에서 가장 빠른 공연으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익스트림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서로 보듬어 주자는 의미로 국립극장에서 공연한 연극 <안아주세요>의 정미, 명작의 산실 산울림소극장에서 공연하여 새로운 형식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은 <킬리만자로의 눈>의 헬렌…. 이렇듯 남편과 나는 서로의 예술적 감각을 자극하고 존중하며 연출가과 배우로서 함께 작품을 만들어 왔다.
 또한 나는 남편이 연출한 여러 작품에서 연습감독을 맡아서 창작 작업을 함께해 왔는데,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공연한 댄스뮤지컬 <스핀 오디세이>, 사랑의 대서사시 뮤지컬 <서동요>, 인간문화재 선생님들과 함께 공연한 창극 <은주 이야기>와 <대동가극단>이 바로 그것이다. 남편이 큰 틀에서 작품의 구성방향을 잡으면, 난 출연자들과 함께 장면을 창조했다. 남편의 의도를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남편이 원하는 장면을 척척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노인과 바다>를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는 슈퍼바이저 역할을 맡아서 온갖 허드렛일을 해가며 다방면에서 남편을 지원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서로의 예술적 재능을 존중하고, 삶의 소신을 서로서로 깊이 있게 이해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작품을 하면서, 혹은 일상생활에서 때때로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툴 때도 종종 있지만, 연극 얘기와 함께 곧 깔깔거리며 웃게 된다.
  “인생은 한 편의 연극”

이라는 말이 있다.

 남편과 나는 마치 2인극을 하는 것처럼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2인극에서는 작가도 연출가도 없다. 다만 배우 둘만이 있을 뿐이다. 사랑하는 남편 역할을 맡은 남편 김진만, 사랑하는 아내 역할을 맡은 아내 조정민. 우리는 이 역할을 진실로 믿고, 진실로 행하고, 진실로 사랑한다.
 미리 짜여진 각본은 없지만 해피엔딩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음을 믿기에 극적인 하루하루가 즐겁고 흥미진진하다. 대학로에서 만나는 동료들은 우리 부부를 보면, “한 집에 한 명이 연극을 해도 힘든데, 부부가 함께 연극을 하고 있으니 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힘드냐?”고 걱정스럽게 묻곤 한다. 그렇다. 맞는 말이다. 우리의 생활은 여전히 궁핍하고 여전히 힘겹다. 그러나 우리 부부에게는 그 힘겨움을 함께 짊어지고 갈 수 있는 연극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있고, 그래서 버틸 힘이 생기고, 해피엔딩을 향해 함께 손잡고 걸어갈 희망찬 미래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하다.
 오늘도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며, 두런두런 연극에 대한 수다를 떨며, 어렵고 험난한 길을 서로의 꿈을 부추기며 즐겁고 기쁘게 걸어간다.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우리 부부가 만들어가는 인생의 2인극은 앞으로도 계속 극적으로 전개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