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의 이야기이다. 나는 영상과 사진을 매체로 한 시각예술을 하고 있어서 해외에 나가면 꼭 그 나라의 국공립 미술관과 크고 작은 갤러리와 현대 미술관을 찾아가서 보는 편이다. 일반적으로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관광지보다는 여행을 통해 현지의 예술과 문화를 알아가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파리에서 예술이 그들의 일상의 삶 속에서 문화 그 이상의 의미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에 반했다. 그래서 나의 기나긴 사진 여행은 책에서는 느낄 수 없는 깨달음의 연속이었다.
파리의 크고 작은 미술관에 가면 어김없이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 바로 미술관에서 부모와 아이들이 예술을 대하는 태도이다. 그곳에서 부모는 아이들이 작품을 잘 볼 수 있도록 작품의 높이만큼 안아주며 아이의 시선을 벽에 걸린 작품에 맞춘다. 그리고 질문을 던진 후 아이들이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주고, 아이가 대답할 때까지 기다린다.
한 부모가 아이의 눈을 보고 말했다. “이 그림을 보고 어떤 느낌이 들어?” 부모의 한마디에 순간 나는 “어?” 하고 작은 충격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보통 부모들이 미술관에 아이들을 풀어 놓거나 손잡고 대충 슬슬 보고서 나가버리는 게 일반적이다. 이 작품의 작가는 누구이며 이 작품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해진 답을 알려주려는 부모도 있었다. 이처럼 한국의 보편적인 정서는 작품을 감상하는 개인의 감정보다 작품에 대한 해설에 집중하려는 것이다. 이미 규정된 정답에 의해 개인의 감정 표현에는 인색했던 경험들을 비춰보니 파리에서의 경험은 나에게 있어서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팝과 케이팝 버스킹이 전부인 홍대 앞과는 달리 파리의 지하철과 거리에는 오케스트라 클래식 연주, 제3세계의 음악, 샹송, 팝, 락, 재즈가 들려왔다. 파리에서 몇 주 지내다 보니 그들의 삶과 예술은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관용을 추구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일까? 이러한 태도를 볼 때마다 과거의 일들이 오버랩 되어 떠오른다.
먼저 대학 시절 피아노과를 다녔던 친한 언니가 들려준 얘기가 있다. 학교 다닐 때 피아노 연주회를 하면 피아노 전공자들이 관람을 하는데, 객석 맨 앞자리에 앉아서 얼마나 박자나 음을 틀리고 있는지 관찰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손만 바라보고 있을 때 얼마나 부담되고 떨리는지 모른다고 하소연했던 기억이 난다. 미대 서양학과에 다녔던 한 학생도 생각난다. 졸업 전시회를 준비하는 동안에는 하기 싫어도 교수님이 지시하신 작품을 해야 졸업할 수 있다며 투덜거렸는데, 이런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럼 그건 예술이 아니잖아?’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음악이든 시각 예술이든 예술가와 관객들이 예술을 향유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비록 같은 장르의 비슷해 보이는 작품일지라도 거기서 전해지는 예술가들의 표현과 아우라, 감정과 해석, 표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다양한 창조물을 나름의 방식으로 느끼고, 예술을 간접 체험함으로써 동시대의 문화적 감수성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예술계에는 여전히 예술가의 창작과 감성보다 테크닉을 강조하며 작가가 아닌 외적인 영향을 우선시하는 풍조가 많이 남아있다. 예술을 대하는 잘못된 태도에 기인해 과거의 유물을 답습해 온 것들이 한 세대, 두 세대가 지나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예술, 그 이름의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는 예술Art 본연의 창조성을 통해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기를 원한 것일까, 아니면 나도 예술을 하고 있다는 외부의 시선이 목적이었을까? 고대 그리스 철학자 카시우스 롱기누스(Kassios Longinos)는 예술은 쾌락과 지적 신념을 넘어서 있는 숭고한 정서, 즉 황홀을 낳는 것이라고 했다. 예술가의 천재적인 영감과 자존심을 말하며 예술이 철학과 도덕을 넘어서 있는 것임을 강조했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지 않는 그 이상의 세계를 창조하기 위한 의미를 탐구하는 것이다.
예술은 철학적 텍스트가 존재하기 전에 예술 그 자체만으로 보이거나 은유의 핵심에 닿는 순간을 통해 미처 보지 못한 미학적 경험을 하게 한다. 어쩌면 예술은 살아서 움직이며 호흡하고 존재와 시대를 오가며 시간을 따라 흐르는 물방울 같은 것이 아닐까? 문화와 예술이 넘쳐흐르는 현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다시 한 번 예술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