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한 새벽에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고 집을 나선다. 꽃 시장에서 필요한 꽃을 사고 서둘러 오차원으로 향한다. 물통에 물을 받고 꽃을 풀기 시작한다. 가시를 제거하고 잎을 정리하고 줄기를 자르고, 사온 꽃들을 풀고 다듬는 것은 마치 여행지에서 짐을 푸는 기분과도 같다. 계절에 따라 꽃의 종류가 바뀌고, 각각의 꽃들도 매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꽃의 줄기가 물을 새롭게 흡수하고 짧게나마 여기에 머물, 시작이 된다. 이 과정은 아름다운 꽃다발을 만드는 과정 못지않게 중요하다. 꽃 정리가 끝날 무렵 찻주전자에 물을 올린다. 찻물이 다 끓으면 잠깐 손을 멈추고 차를 우린다. 시간이 빠듯할 때면 차 마실 타이밍을 놓쳐 차갑게 식어버리기 일쑤지만, 정리가 끝난 후 화병에 꽂힌 꽃과 풀을 보며 차를 마시는 시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 중 하나다.
오차원에서는 절화(줄기를 잘라 보는 꽃)를 다룬다. 절화는 유지되는 시간은 짧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최대치의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잘린 줄기의 꽃은 죽음을 필연으로 한다. 꽃봉오리에서 더 필 수 있을까 싶을 때까지 신기하리만치 만개하는 꽃을 바라보면 그 생명력에 놀라고, 곧 꽃잎을 떨구고 시드는 모습에서는 죽음의 숙연함을 배운다.
생화는 다른 상품과 달리 재고를 보관할 수가 없다. 시들기 시작하거나 상한 꽃들도 판매할 수가 없다. 그래서 오차원에서는 주문 제작의 방식을 택하고 있다. 주문에 맞춰 꽃을 사입하고 되도록 남는 꽃을 만들지 않으려 한다. 특별한 때가 아니면 미리 만들어둔 다발을 볼 수 없는 이유다. 한 송이 한 송이가 모두 특별하고 의미 없는 생명이라는 것은 없으니 조금이라도 그 낭비를 줄이기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다. 어떻게 하면 낭비 없이, 남는 꽃 없이 가장 아름다운 다발을 드릴 수 있을까, 항상 고민이다.
사실 직업으로 꽃을 다루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쭉 디자인을 공부했고 공간디자인 일을 해왔다. 초대받은 자리에 갈 때 가끔은 꽃을 사서 가고, 그보다 더 가끔 작은 꽃을 사다 집에 두곤 했지만, 꽃과 아주 가깝다고 할 만큼은 아니었다. 디자인 일을 하면서 꽃을 많이 사용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비슷한 시기에 여러 우연이 겹쳐서 꽃을 직접 만지고 곁에 두면서 꽃의 효용이랄까, 즐거움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집 식탁 위, 침대 머리맡 등을 장식하다가 여러 구실을 만들어서 주변에 선물하기 시작했다. 친구의 결혼, 부모님의 생신, 승진, 이직, 퇴사, 졸업, 기념일 등의 특별한 날은 물론이고, 지난번 나눴던 이야기가 생각나서, 날씨가 좋아서 등등 꽃을 선물할 구실은 차고 넘쳤다. 내가 꽃을 건넬 때 받는 이의 얼굴에 번지던 미소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미소가 후에 오차원을 시작할 수 있는 씨앗이 되었다. 같은 시기에 차를 마시는 것에도 푹 빠졌었다. 바쁘고 불규칙한 일상 속에서 혼란스러운 감정들에 불안했었는데, 차나 꽃을 마주하고 있으면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보살피는 느낌이 들어서인 것 같다.
잠깐 짬을 내어 차를 마시고, 꽃을 만지는 것은 생활의 큰 활력이 되었다. 오차원은 성씨 오(吳), 차나무 차(茶), 동산 원(園)자를 합쳐 만든 이름이다. 좋아하는 차와 꽃을 함께 하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한 것이 시작이다. 상수동 뒷골목의 작고 소박한 오차원을 찾아주시는 분들과 꽃과 차의 시간을 나누고 있다는 것이 아직 조금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감사하게도 오차원을 통해서 많은 분을 만났고, 덕분에 좋아하는 꽃을 마음껏 만지고 아름다운 꽃을 많이 엮었다.
물론 꽃을 다루는 일이 매사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강도 높은 노동이 함께하고, 절화의 짧은 수명 때문에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 작업을 해야 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가끔은 이 자체로도 아름다운 꽃과 풀은 어떻게 해도 아름다울 텐데 공연한 손길을 보태는 건 아닐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 기대어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조합을 만들면서 여러 가지 형태와 색을 가진 꽃과 풀을 한 손에 잡고 쓸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이다. 게다가 그 아름다움을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다니 얼마나 멋진지. 꽃을 준비해드리며 마주하게 되는 얼굴 가득한 웃음, 기쁨, 설렘은 나를 벅차게 한다. 그리고 짧은 탄식과 감탄사들은 고단함이나 걱정을 잊고 이 일을 계속해도 괜찮겠다는 응원의 메시지가 된다. 가능한 한 오래 오차원에서 아름답고 향기로운 시간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