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머릿속에서만 그려온 서른셋의 내가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축구를 마냥 좋아했던 나는 너무 늦은 나이인 6학년에 무작정 축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늦은 시작으로 실력이 부족했던 학생을 받아줄 중학교는 없었고, 할 수 없이 나는 지역 중학교의 최하위 팀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축구 인생이 시작되었다. 
남들보다 축구를 늦게 시작한 탓에 당연히 기본기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던 나는 그 시절 중학교 선배들에게 수많은 폭언을 듣게 되면서 점점 축구가 두려워지고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토록 좋아했던 축구였는데, 이제는 공을 만지는 것도 두려워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축구보다는 오히려 체력운동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공도 만지지 않고 그저 뛰기만 하는 그 운동이 좋았던 것은 선배들에게 혼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존심도 강하고 승부욕도 강한 나는 혼나는 게 너무도 두렵고 싫었다. 하지만 체력 운동은 내가 조금만 참고 뛰면 다른 아이들을 이길 수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편했다. 비록 축구로 이길 순 없었지만, 체력운동은 참고 뛰기만 한다면 이기는 게 가능해서 남들은 다 싫어했던  체력운동을 좋아했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고, 이제 체력운동만 하면 항상 선두에서 달리게 되는, 체력 좋은 선수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렇게 체력이 완성된 후 기술이 보완된 케이스가 된 것이다.
이후 대구 청구고를 졸업하고 단국대학교에 진학해서 4년 동안 더 성숙한 선수로 성장했고, 그 뒤에는 당당하게 프로 축구선수로서 성남일화에 입단하게 되었다. 그런데 프로가 되어서도 나는 단 한 번도 나 자신이 잘 하는 선수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매일매일 팀 운동과 개인 운동에 성실히 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2008년을 시작으로 나는 7년간 선수 생활을 했다(성남일화(現 성남 FC)-2008, 수원 FC-2009, 2010(결혼), 광주 FC-2011, 제주 유나이티드-2012, 광주 FC-2013~4).
제주에서 다시 광주 친정팀으로 돌아온 2013년에는 주장이라는 무거운 직책을 맡았다. 나는 그전보다 더욱 책임감 있게 운동을 해야 했고, 부상도 참아가며 그라운드를 뛰어야 했다. 결국 피로골절이라는 부상이 악화되는 상황에 이르렀고, 2013년 한 해를 통째로 날려버렸다. 그리고 두 번의 반복된 정강이 수술로 나는 재기할 수없이 이듬해 팀에서 버려진 선수가 됐다. 선수에게는 몸이 생명과 같은데, 더 이상 뛸 수 없는 선수를 어떤 팀이 받아주겠는가.
내가 가장 좋아하고 가장 잘 할 수 있었던 축구. 평생 한 길만 보고 달려온 나에게 더 이상 축구를 못하게 됐다는 사실은 쉽게 납득할 수 없었고, 나는 세상에 거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그렇게 축구가 싫어졌고, 사림들이 싫어졌다. 하지만 소중한 것을 잃으니 다른 소중한 것이 기다리고 있었다. 역설적이지만,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이전보다 가족과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고, 아내와도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새삼 이렇게 힘든 순간에도 항상 나와 함께할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것에 너무 고맙고 행복했다.
그렇게 방황하고 있을 때쯤, 아내가 나에게 제안을 했다. “우리 해외에 가서 살아요.” 그 말 한마디가 우리의 제2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나는 그 수많은 대륙 중 유럽을 선택했고, 그중에서도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택했다. 마치 무언가에 이끌리듯 우리 가족은 바르셀로나로 건너갔다. 축구할 때의 정신만 있다면 못할 게 없다는 생각으로. 제대로 스페인어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스페인 문화조차 모르면서 겁도 없이 우리는 ‘가족’이라는 존재 하나만 믿고 오게 된 것이다.
타국에서의 삶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연고 없는 미지의 땅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가는 아이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나 역시 부모님의 마음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세 남매의 아버지로서 성장해가고 있었다. 그렇게 빨리 철든 가장으로서 나는 이곳에서 정착하기 위해 남몰래 정말 많은 노력을 해야만 했다.  예상하지 못한 우여곡절도 많았고 힘들 때도 많았지만, 우리는 가족의 품속에서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
지금은 바르셀로나에서 잘 나가는 한인 게스트하우스 별루이하우스 끌라로를 운영하는 사장님이 되었고, 이와는 별개로 뒤에서는 틈틈이 축구 지도자 공부를 꾸준히 하고 있다. 작년에 영국에서 취득한 UEFA 라이선스를 기반으로 스페인 자격증에도 도전하고 있다. 2016년 12월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난 막내딸(박루나), 첫째 딸(박한별), 둘째 아들(박루이),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와 이 낯선 땅에서 서로 의지하며 매일 새롭게 또 다른 무모한 도전을 준비 중이다.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나는 나를 믿어주는 가족이 있기에 무모한 도전을 계속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성공하려면 남들과는 무언가 달라야 한다는 생각으로 늘 살아왔기에 더 착실하게 준비해서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가서는 훌륭한 지도자가 되고 싶다. 과거 축구로 받은 과분한 사랑을 다시 한국 축구에 되돌려주고, 한국 축구 발전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로 남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려 부모님께 진심으로 사랑하고 고맙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과 앞으로도 소박하고 행복하게 지내고 싶다는 말도.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희망이 될 이 한마디까지.
“무엇인가 이루고자 하신다면 머릿속에만 두지 말고 두려워 하지 말고 도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