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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클럽’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90년대 혼성 3인조 음악 밴드가 생각나실 테죠. ‘TV동물농장’과 유사한 포맷의 예능프로를 기억하는 분도 더러 계실 겁니다. 제가 오늘 소개하려는 ‘주주클럽’은 지극히 사사로운 조직(?)의 애칭입니다. 수십 명이 모이는 일은 결코 없고 대부분 3명이 만나 간단히 식사하거나 차를 마시는 소박한 모임입니다.
MBC에서 ‘일밤’이라는 프로를 연출하던 시절에 보조로 일하던 청년이 어느 날 저에게 엉뚱한 부탁을 했습니다. “감독님. 나중에 제가 결혼할 때 주례 서주실 거죠.” 성실하고 과묵한 그 청년에게 얼떨결에 제가 한 답변은 “당연하지”였습니다. 그때 그 젊은이는 20대 초반이었고, 저에게는 적어도 10년 후를 예상한 약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일이란 한 치 앞을 모르는 겁니다.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 저를 찾아온 청년은 “감독님, 약속 지키셔야죠” 하며 하얀 봉투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청첩장이었습니다. 당시 40대 초반이던 저는 꼼짝없이 생애 처음으로 ‘주례’라는 걸 서게 되었습니다. 1997년 늦가을의 일입니다.
그것이 처음이자 끝일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좋은 인연이 모여 좋은 인생이 된다고 믿는 저의 주례 행각은 쉼 없이 이어졌고, 마침내 ‘주주클럽’이라는 희한한 단체가 결성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짐작이 가시나요? 주주클럽은 제 이름 주철환의 ‘주’와 주례선생님의 ‘주’가 합해진 이름입니다. 주철환에게 주례를 의뢰한 남녀, 그리고 결혼생활이 평화롭게 순항 중인 부부가 주주클럽의 정식 멤버인 겁니다.
주주클럽엔 정관도 없고 약관도 없습니다. 그저 인간적인 신뢰와 권고사항만 있을 뿐입니다. 저는 5분 안팎의 주례사에서 빠짐없이 말합니다. “이 부부의 결혼수행평가를 3개월 단위로 진행할 겁니다. 직접 만나서 하는 게 원칙이지만 서로 바쁘다 보면 예외적으로 영상이나 문자로 대체할 수도 있습니다. 체크포인트는 3가지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살고 있는지, 부모를 공경하는지, 진실한 남편과 아내로서의 도리를 다하는지가 핵심입니다.” 사실 이 3가지 사항은 결혼식에서 주례가 공식적으로 확인받는 혼인서약의 고정레퍼토리입니다.
통계를 내보지 않았지만 주주클럽은 이제 상당한 멤버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일 년에 열 커플이라고만 쳐도 20년이 넘었으니 200쌍은 족히 넘은 걸로 추측합니다. 깨진 숫자도 가늠해야겠죠? 하지만 수행평가를 받는 부부 중 갈라선 부부는 불과 5쌍 미만입니다.
연예인 중에도 주주클럽멤버가 있습니다. ‘아내들이 가정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낭만적인 일탈을 꿈꾸고, 남편들이 이를 지켜보면서 그동안 몰랐던 아내의 속내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콘셉트의 예능 프로그램’인 ‘싱글와이프’에는 무려 3쌍이 주주클럽 소속입니다. DJ DOC의 김창렬 장채희 부부, 개그맨 박명수 한수민 부부, 개그맨 정성호 경맑음 부부가 그들입니다. 그들은 별도로 수행평가를 받지 않아도 됩니다. 전국에 퍼지는 영상으로 이미 부모님, 그리고 하객들에게 결혼보고서를 매주 제출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방송진행자인 박경림과 개그맨 유세윤 부부, 성대모사의 달인 김학도와 그의 아내인 바둑기사 한해원도 알콩달콩 잘살고 있어서 주례는 적잖이 안심 중입니다.
음악 밴드 주주클럽의 대표곡 ‘나는 나’의 노랫말은 두 가지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왜 내가 아는 저 많은 사람은 사랑의 과걸 잊는 걸까. 좋았었던 일도 많았을 텐데 감추려 하는 이유는 뭘까.’
과거는 기억하되 좋은 건 공유하는 것. 결국 이것이 주주클럽의 롱런 비결이 아닐까요. ‘사랑의 온도’라는 시적인 제목의 드라마 포스터엔 지속가능한 결혼의 비결이 제시되어 있더군요. ‘사랑하기 참 어려운 시대를 만났다. 그래도 우리는 사랑을 한다.’ (아, 그러고 보니 이 드라마를 연출한 남건 PD도 주주클럽멤버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