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혈관(血管)속에 시내처럼 흘러
돌, 돌, 시내 가까운 언덕에
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


삼동(三冬)을 참아온 나는
풀포기처럼 피어난다.


즐거운 종달새야
어느 이랑에서나 즐거웁게 솟쳐라.
푸르른 하늘은
아른아른 높기도 한데…
                                   -윤동주의 시 ‘봄비’




우리나라의 첫봄은 제주로부터 시작된다. 봄과 시작. ‘처음’을 의미하는 이 단어에는 ‘설렘’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 설렘을 안고 나는 내일모레 베트남 다낭으로 출장을 간다. 9년 전 봄, 스튜디오에서 여행 잡지사로 이직하고 간 첫 출장지가 바로 베트남 다낭이었다. 설렘 반 걱정 반으로 도착한 베트남에서는 숨이 턱 막힐 듯한 무더위가 목을 조여 왔다. 조금 전 설렘과 걱정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곧이어 평화로우면서도 분주한 베트남의 이국적인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다낭에 도착해 공항 검색대를 지나 출구로 나가니 웃는 얼굴이 매력적인 현지 가이드 히유와 홍콩 배우를 닮은 운전기사 Mr. chau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다낭 호텔에 도착해 바로 짐을 풀고 촬영하기 위해 로컬 음식점으로 향했다. 베트남 음악이 흘러나오는 작은 벤에 몸을 싣고 오토바이가 쉴 새 없이 지나는 도로가 눈에 들어왔다. 베트남에 왔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로컬 음식점은 상당히 이질적인 베트남의 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실 한국에서도 베트남 음식점을 가보지 않았던 터라 모든 것이 생소했다. 코스로 나오는 음식을 모두 촬영하고 나서야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식사하려는 내게 Mr. chau가 한입에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채소를 꾹꾹 눌러 담아 스프링롤을 싸주었다. 거부할 수 없는 해맑은 미소와 함께. 맛있게 생긴 쌈을 고맙게 받아먹는 순간, 강렬한 고수의 향이 코를 마비시키기 시작했다.
고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생전 처음 먹어보는 향채는 도전 욕구를 불타오르게 만들었다. 정성껏 싸놓은 스프링롤을 겨우겨우 해결하고서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는 내게 또다시 엄청난 양의 쌈을 권했다. 이전보다 해맑은 표정으로.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나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내색하지 않고 꾸역꾸역 삼켰다.
그날 이후로 다낭에 머무는 동안 Mr. chau는 늘 옆에 앉아 나의 모든 음식(쌀국수 등)에 향채를 듬뿍 넣어 베트남을 ‘확실히’ 느끼게 해주었다. 이튿날 마블마운틴에 오를 때도 그의 진심 어린 애정 공세(?)는 계속되었다. 카우보이 밀짚모자를 직접 구입해 내게 씌어줬는데, 워낙 태양이 강렬한 터라 그땐 정말 고마웠다. 뿐만 아니라 취재 기간 내내 손수 모자를 씌워주고 턱에 꼭 맞게 끈까지 조여주는 친절함을 보였다. 하지만 뒤늦게 거울을 보고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얼굴에 비해 모자가 너무 작아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흉측한 모습에도 출장 내내 모자를 쓰고 다닐 수밖에 없던 것은 그의 해맑은 미소를 계속해서 보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