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3년 전 일이다.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누구일까?’
뜻밖에도 상대방의 목소리는 OECD의 ‘Young professional program’(YPP) 담당팀 매니저였다.
“축하해요! 최박사를 1순위로 뽑았어요.”
기대하지도 못했던 합격 뉴스라 기쁘고 반가웠다. 선발 과정도 서류, 필기시험, 면접 3단계라 시간도 9개월 정도 걸리는 긴 여정이었고, 경쟁률도 워낙 치열하여 합격을 처음부터 확신하진 못했다. 국제기구 경험은 석사과정 중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ILO(국제노동기구)에서 3개월 남짓 연구 인턴으로 일한 게 전부였다.
그러나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과장된 자기 포장 없이 진솔하게 핵심만 답변했던 것이 인상적이었고, 함께 일해 보고 싶어서 뽑았다는 것이었다. 석사와 박사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대학 졸업 후 거의 7년 만의 학교 밖에서의 취업이었다. 가족들의 뜨겁고 진심 어린 축하를 받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문화와 환경도 낯설고 언어도 안 통하는 프랑스에서의 새로운 삶이 또 다른 부담으로 다가왔다. 대부분 영어로 업무를 보지만, 파리 생활을 위해 프랑스어 공부도 병행해야 했다. 이제는 불어도 늘어서 큰 불편은 없다. 그러나 OECD에서의 일과 삶은 내게는 새로운 도전이자 모험이었다. 그리고 벌써 2년 반이 흘렀다.
 
그동안 정책분석관으로 한 일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업무는 PISA팀(국제학업성취도평가팀)에서 2015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웰빙 조사 결과분석 및 리포트 작성 업무였다. 9개월간 PISA 리포트의 개요 짜기, 선행 연구에 대한 조사(literature review), 데이터 분석과 결과보고서 작성 작업에 참여했다. 몇 개월 안에 7~8명의 스태프가 매달려서 방대하고 심층적인 웰빙 리포트를 완성하려다 보니 스태프 본인들의 웰빙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는 우스갯소리가 절로 나왔던 시기였다.
하지만 리포트가 여러 나라 미디어의 관심의 중심에 서고, 몇몇 나라 대표를 통해서 그 나라 정책의 터닝 포인트 혹은 이슈 공론화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말을 들을 때 고생한 만큼 내가 한 일에 대한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처럼 OECD 내의 여러 팀에서 일하면서 공통적으로 느낀 보람된 부분은 내가 기여하는 업무들이 여러 회원국들의 중요 정책들에 크고 작은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또한, OECD에서 개최되는 많은 미팅과 국제회의에 참여하여 정책결정자, 정부 관계자, 학자들과 함께 토론하고 배울 기회가 있다는 것도 국제기구에서 근무하는 또 하나의 장점이었다.
하지만 OECD도 역시 여느 직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느 directorate(국)에 있고, 또 세부적으로 어느 팀에 있느냐에 따라 판이한 일을 하게 된다. 어느 부서든지 경쟁이 아주 치열해서 자기만의 강점과 새로운 업적을 강하게 어필해야 살아남는 곳이다. OECD 내에서 팀이나 포지션을 옮기는 것도 내부 외부인 구분 없이 동등하게 경쟁해야 성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OECD 회원국이 주로 유럽 및 선진국들이다 보니 OECD 내 유럽 출신들이 강세를 보이는 게 현실이지만, 한국인 직원은 한국 국력에 비해 작아서 아쉽다. 점점 한국 직원들이 많아지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어느 날 구내식당에 앉아서 동료를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보니 나 혼자 동양 여성인 게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더욱 많은 한국 직원들이 진출하고 성장해서 주요 위치에 자리를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 들던 날이었다.
또한 어떤 상사를 만나는지에 따라 앞으로의 진로에 큰 영향을 주기도 한다. 일한 지 일 년쯤 되었을 때 상사가 갑자기 다른 국제기구로 이직하게 되었다. 아직도 연락을 취하고 있는 그분은 나의 좋은 멘토 역할을 해주고 있다. 나를 뽑아준 보스가 갑자기 떠나게 되어 적잖이 당황하기도 했지만, 결국 다른 프로젝트나 팀에서 기회를 적극적으로 찾는 계기가 되었다. 인생은 이렇게 뜻하지 않은 곳에서 풀리기도 하고 매듭이 엉키기도 한다.
이러한 경험들이 앞으로 OECD 내부나 밖에서 내가 앞으로 맞닥뜨릴 도전이나 위기에서 나를 동아줄처럼 단단하게 매어주고 나에게 힘을 주는 에너지가 될 것이다. 앞으로도 나의 작은 노력이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주고, “better policies for better lives”라는 슬로건처럼 나아가 사회의 발전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나는 배우고 나누며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