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만 나면 여행을 간다. 이방(異邦)에 대한 갈망이 무시로 몸속에서 울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상에 녹아 버리지 않기 위해 울리는 경계경보 같은 것이다. 간신한 생활로 간신히 틈을 만들고 여행을 준비한다. 몸속의 울림은 여행을 떠날 때까지 꺼지지 않고, 나는 어쩔 줄 몰라 한다.
삶에서 어쩔 줄 모르는 일이란 대개 어쩔 수 없는 일이며, 나의 몸은 다양한 방식으로 결핍을 토로한다. 비행기 이륙 직전 등이 밀리는 감각과 기차 안에서 흔들리며 음악을 듣는 기분과 민가의 골목에서 올라오는 밥 짓는 냄새와 새로운 음식을 먹을 때 생겨나는 미각의 쾌감을 그리워한다. 그리움은 결핍이고, 결핍은 병을 부른다. 병들지 않기 위해, 내 몸의 알람을 끄기 위해, 나를 보호하기 위해 여행을 간다.
여행지에선 사진을 찍고, 세 번째의 눈을 갖게 된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풍경의 절편(切片)을 떠 시간을 갖는 일이다, 화석을 만드는 일이며, 사람과 사건과 시간과 빛과 공간과 나의 영혼 조각들이 버무려진 단 하나의 시점을 간직하는 일이다. 여행자가 셔터를 눌러 갓 죽은 풍경의 영정(影幀)을 찍을 때, 한쪽 눈을 감고 풍경 속으로 자신의 영혼을 떠나보낸다. 사진은 여행지에 흘려둔 자신의 영혼을 기념하는 일이며, 풍경과 나 사이에 영정(影幀)을 만드는 의식이다.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사람과 사건과 시간과 빛과 공간을 바라보던 단 하나의 시점이 사진으로 남는다.
여행에서 사진 찍기란 비단 촬영만을 뜻하지 않는다. 흐르고 활동하는 여행지의 장면들은 눈이라는 렌즈를 통해 몸속으로 흘러들어 감광된다.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장면을 만나면 눈은 새로운 기관으로 작동하고, 시각만을 관장하던 눈은 공감각을 수렴하는 기관으로 확장한다. 귀로 보는 풍경이 있듯, 눈으로 듣는 음악도 있고, 눈으로 맡는 냄새도 있다. 이렇게 생겨난 감정은 생활에 찌든 몸, 세포의 말단까지 도착해 새로운 감각을 나누어 준다.
여행의 주된 일과는 걷는 것이다. 걷는 동안 나는 여행지 곳곳에 나의 영혼을 조금씩 떼어 둔다. 이것은 <헨젤과 그레텔>에서 헨젤이 흘린 빵가루처럼 다시 돌아오기 위한 의식이다. 수많은 여행지를 다녔으니 나는 세계에 흩어져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나의 영혼은 먼 곳에 흘려두고 온 영혼의 총합이다.
그립다는 것은 나의 영혼 조각들이 나를 부르며 진동하는 감정이며 나의 영혼은 일부 드물게 만나는 당신 속에도 있다. 당신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당신의 안부를 알게 되듯, 우리는 생각만으로도 다녀온 여행지의 기분을 실감할 수 있다. 멀리 있는 나의 조각 영혼들이 한꺼번에 우는 날이 있고, 환상통처럼 우리는 다녀온 곳을 떠올리며 다시 여행을 앓는다.
나는 여행지에 남은 나의 조각 영혼들과 교통하는 파동체가 되고 사진은 지난 시간을 연주하는 악기가 된다. 오래된 사진에서 흘러나오는 그 음악을 귀 기울여 들으며 다음 여행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