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겨울이었다. 친구들과 술자리를 한 후, 신촌 거리를 거닐던 나는 그날따라 그동안 익숙했던 지저분한 길거리 풍경이 눈에 거슬렸다. 쓰레기가 넘쳐나는 신촌 거리를 하루 이틀 보는 게 아니었지만, 술기운 때문이었는지 가로변 쓰레기통 앞에 서서 한참을 바라봤다. 우리의 시민의식이 문제인가 싶었지만, 쓰레기통이 넘쳐흐르는데도 어떻게든 욱여넣으려고 애쓴 흔적을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새벽 5시부터 해가 질 무렵까지 격무에 시달리는 환경미화원의 탓도 아니었다.
이렇게 거리를 지나는 모든 이들이 고통을 받고 있지만, 누구의 잘못도 아니기에 가만히 나아지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순간 무력함이 느껴졌다. 운이 좋아 소위 명문 대학에 입학했지만 나와 같은 집단이 정말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 한참 고민하던 시기였다. 대단한 일은 아니더라도 우리의 힘으로 사회에 조금이라도 유익한 일을 해보고 싶었던 나와 몇몇 친구들은 그날을 기점으로 가로변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렇다면 집에서는 왜 쓰레기가 흘러넘치는 것을 보기 힘들까? 쓰레기를 버릴 때, 가득 찼다 싶으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손발로 누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쓰레기가 넘쳐흐르기 시작하면 ‘깨진 유리창의 법칙’에 따라 주변이 굉장히 빨리 더러워진다. 즉, 우리는 애초에 넘치지 않는 쓰레기통을 만들자는 생각에 다다랐고, 가로변에 서 있으니 태양광 에너지를 모아서 쓰레기를 꾹꾹 눌러 담는 쓰레기통을 만들기로 했다.
문제는 함께 프로젝트를 시작한 우리가 한 명의 공대생과 세 명의 경영학과생으로 이루어진 집단이었다는 사실이다. 그 때문에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기엔 턱없이 전문성이 부족했다. 하지만 이왕 하기로 마음먹었으니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서라도 어떻게든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우리는 무작정 청계천으로 향했다. 청계천에 가면 숨은 고수가 금방이라도 뚝딱뚝딱 만들어줄 거라는 기대를 했지만, 그 기대는 도착한 지 10분 만에 완전히 깨졌다. 종로3가에는 골목마다 영세한 철공소들이 빼곡했지만 태양광 에너지를 활용하여 스마트한 압축 쓰레기통을 만들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러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연습장에 대충 그려간 도면을 갖고 수많은 철공소에 제작 의뢰를 하러 돌아다녔다. 그렇게 발품을 팔며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첫걸음을 뗀 최초의 시제품을 겨우 만들 수 있었다.
미숙한 첫 경험으로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슬프게도 ‘아! 이렇게 하면 안 되는구나’였다. 그러나 다소 조잡하더라도 첫 시도가 없었다면, 더 나은 두 번째 시도도 없었을 것이다. 이런 비효율적이고 연속된 어려움의 과정도 감사하고 즐거웠다. 애초에 번듯한 제품을 빨리 만들어 팔 목적이었다면 조급한 마음이 앞섰겠지만, 사회에 도움이 되는 것을 우리가 생각한 방향대로 우리가 스스로 행동하여 이뤄가는 과정이 너무나 새로웠다. 학교만 착실히 다녔던 우리에게는 이 모든 과정이 뿌듯하기만 했다.
이후에도 수많은 실패와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완성도를 높여간 태양광 압축 쓰레기통은 6년이 지난 현재 약 35개국에서 사용 중이다. 이는 흔히 생각하는 단순한 쓰레기통이 아니다. 적재량을 실시간으로 확인함으로써 언제 수거하면 좋은지 최적화된 시점과 경로를 알려주는 솔루션도 제공하고 있다. 더불어 쓰레기차가 모두 출발할 필요 없이 최소한의 자원과 시간으로 수거하도록 도와주는 수거 차량 관리 솔루션도 함께 제공 중이다. 이로 인해 관리해야 할 땅이 넓고 인건비가 비싼 호주나 미국, 유럽 등 해외 시장에서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과학고 조기 졸업 후 공대로 진학하여 착실하게 학교만 잘 다니던 내가 설마 쓰레기 산업에 종사하며 해외 국가를 상대로 사업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어릴 적에도 물론 사업가를 꿈꾼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하지만 우리가 옳다고 생각한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하여 많은 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사업의 가치라면 아무리 과정이 힘들더라도 계속해나가고 싶다. 특히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오늘도 함께 최선을 다하고 있는 능력 있는 이큐브랩 동료들이 있어서 미래가 더 기대된다. 전 세계 모든 나라, 모든 쓰레기 수거 회사에서 확신하며 당연하다는 듯이 우리의 솔루션을 사용하는 그날이 올 때까지 지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무모한 도전을 계속 이어나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