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콩, 탁탁, 쓱쓱. 태어나면서부터 집에서 들어온 익숙한 소리이다. 그 소리는 내가 어린 시절 집안 어른들이 금박 일을 하신다는 기분 좋은 일상이었다. 이러한 소리가 없을 때는 부모님들이 평소 미뤄 놓았던 다른 일이나 자질구레한 집안일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나의 작업장에서는 아내(朴秀英)와 함께 같은 소리를 내고 있다. 마치 흥부가 큰 박을 타던 소리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물론 흥부처럼 대박이 나서 기뻐한 경험은 아직 없다. 그저 정직하게 일을 하면서 그 대가를 받는 데 익숙하다.
나는 새로운 시도를 할 때 신이 난다. 그 결과가 궁금해서다. 그런데 결과는 금방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수년에서 길게는 10여 년 정도가 지나야 그때의 노력을 가늠할 수 있다. 이것이 전통 공예의 특징 중 하나이다. 행여나 품질에 문제 있는 공예품을 만들까 걱정되고, 그 와중에 한참 전에 했던 일들의 효과를 알게 되기도 한다.
한때는 무리해서 새로운 작품 제작을 하기도 했다. 가능한 많은 작업을 해보고자 잠을 줄이면서 수년간 일을 하다 몸에 무리가 와서 병원에 한 달 정도 입원하는 신세를 지기도 했다. 이제는 내가 단거리 선수가 아닌 마라토너처럼 일해야 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던 순간이다. 그러나 아직도 바쁘거나 새로운 생각이 들면, 자다가도 일어나 일을 시작한다. 물론 과거처럼 무리하지는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 결과 새로 만든 작품도 조금씩 늘어나고, 문화 상품도 10여 가지가 넘게 만들어 놓았다.
지난 9월에는 한국인에게 선물로 우리 공방에서 만든 금박 명함함을 받은 일본인이 본인이 알지 못했던 한국 금박 공예의 아름다움에 감명을 받고, 우리나라에 들렀을 때 일부러 찾아와 전시관을 구경하고 다른 것들도 추가로 구매했다. 가끔 이럴 때면 기분이 좋다.
이러한 보람 뒤에는 오랜 시간 한길을 걸어오신 조상님들과 부모님의 그늘이 크다. 우리 집안에서는 조선 철종조 고조부(金完亨)께서 이와 관련된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증조부(金元淳)께서는 명성황후 관련 행사와 함께 비슷한 시기의 의궤들에 부금장(付金匠)으로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에는 독특하게도 금박용 목판에 여러 가지 문양을 조각해서 만들어 왕실 예복에 금박을 붙이는 공예가 발달했다. 조선 말기 이후 금박 일은 가업으로 전해져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아버지(金德煥)와 함께 나까지 5대에 걸쳐 이어오고 있다.
사람들은 금(金)을 다루는 직업이니 부자일 거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아마도 금이 부의 상징으로 많이 쓰이고 연상되기 때문일 것이다. 금은 색상도 잘 변하지 않는 순수함과 태양을 닮은 노란색으로 우리들 마음속에 소중한 가치로 각인되어있다. 이를 갖고 싶은 마음은 종이보다 훨씬 얇게 펴서 원하는 곳에 붙일 수 있는 방법으로도 발전했고, 이때 만들어진 얇은 금을 금박(金箔)이라고 한다.
이를 붙이는 작업을 조선시대에는 ‘부금(付金)한다’고 했다. 따라서 우리가 이어온 가업이 과거 부금장(付金匠)의 일이다. 일정시대와 6·25를 거치며 집안 어르신들은 조선시대부터 써오던 도구들과 기술을 보전해 오셨다. 그 도구들을 지키기 위해 집안의 할머니 한 분은 6·25전쟁 때 종로에 있는 집에서 피난도 가지 않으셨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어렵게 이어온 유물과 기술을 물려받은 황실 장인의 후손이라는 자랑스러움과 함께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이와 더불어 많은 분의 격려와 응원은 큰 힘이 된다. 금박할 것이 있으면 잊지 않고 다시 찾아주시는 분들, 가까운 곳에서 나를 아껴주시는 지인들과 가족들은 누구보다 소중한 지원군이다. 특히 나의 아내는 나와 거의 24시간 함께 일하면서 자신의 솔직한 견해와 조언을 아끼지 않고 함께 힘을 모아 금박 일을 해왔다. 이제는 나의 숨소리나 표정만으로도 다음에 진행할 작업을 도와주고 있다. 그래서 나는 진정 행복한 사람이다.
오늘도 고마운 새날을 맞이하고, 공방에서의 작업을 시작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