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15일과 관련하여 녹색창에 김구 선생님을 검색하던 중 연관 검색어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너무나 다른 연관 검색어인 테러리스트. 순간 얼마 전 아내의 첫째 임신 소식이 오버랩 됐다. 나의 아이가 이렇게 알면 어떻게 하지? 이 부분으로 아이와 싸우게 되면 그 자괴감은 어떠할까?

이런 두려움에서 삼청동의 ‘독립운동가 시리즈’를 만들었다. 매니저인 친구와 작업실을 오가며 작품을 했다. 길을 가고 밥을 먹으며 떠올랐던 것은 ‘그들이라면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라는 사소한 질문이다. 학생 유관순과 빵집사장 이봉창, 샐러리맨이자 두 아이의 아빠인 윤봉길, 그리고 산타 김구까지. 모두 ‘평범함’이었다. 하지만 그 평범함에 핍박과 공포와 고문을 견뎌낸 힘이 있지 않았을까. 오히려 그 일상을 정상적으로 평범하게 살아가려고 그들은 희생하지 않았을까? 한편으로는 나와는 다른 사람들의 생활에도 눈이 가기 시작했다. 특히나 공무원이 인생 목표인 아이들. 그런 그들이 잘못되었다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기성세대가 잘못한 것들을 그들이 꿈은 뒤로 미루고 현실이라는 감옥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은 공무원 시험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러브카모(LOVE CAMO)는 나의 반성문이자 위로이다.

카모플라쥬(Camoflauge), 흔히 얼룩무늬, 군복무늬라고 불린다. 이것은 은폐와 위장을 목적으로 흔히 군인들이 사용했고, 이제는 패션 아이템으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카모 문양의 옷들을 좋아했고 알고 보면 굉장히 자유로운 그 문양의 모양새를 좋아했다. 하지만 이것을 사회와 비추니 꼬아버리고 싶었다. 왜 숨어야 하는가? 꿈꿀 자유는 없는가? 하고 싶은 걸 몰라 방황하는 어른들, 언제나 후회만 하는 부모님들, 나에겐 도시속의 회색빛으로 건물 그림자에 숨어들어가 자의 반 타의 반 어떤 시험 준비를 하며 굳어져가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었다. 그리고 꿈꿀 자유가 있다고 얘기하고 싶었다. 이 모노톤의 삭막한 곳에서 컬러를 품어보면 어떨까? 각기 다른 색의 자유로운 문양들이 뭉쳐서 하나의 작품으로 되는 것을 나의 시그니처로 삼았다.

그래피티를 처음 시작한 것은 1998년 8월 즈음이다. 고등학교 때는 동아리 활동으로 사물놀이를 3년간 했었는데, 대학교에선 무언가 완전히 다른 것을 해보고 싶었다. 가까운 친구 중에 힙합에 관심이 있던 친구가 먼저 힙합동아리에 들어가서 공연 준비도 하고, 춤도 배우는 것을 보니 매우 흥미롭게 느껴졌다. 그곳에서 그래피티를 만났다. 인터넷이 이제 막 활성화 되던 시기라 유튜브도 없어서 비디오테이프에 해외 댄서들의 춤 영상을 보면서 연습을 했다. 그때 그 배경으로 보이던 멋진 그림들이 나에겐 정말 충격이었다. 미술을 공부하면서 저렇게 자유로운 느낌의 그림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나의 첫 그래피티 작품은 동아리방의 벽면이 되었다. 어떤 재료로 그려야 하는지도, 그래피티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시작했고, 페인트와 마커를 이용해서 프리스타일로 그려졌다. 그리고 조금씩 인터넷 그래피티 모임에 사진도 올리고 해외 작품들도 찾아보면서 내가 그리는 그림들이 그래피티라는 것과 스프레이를 주재료로 사용한다는 것을 알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많은 그림을 그렸고, 우연한 기회에 신문과 방송에서 인터뷰를 꽤 많이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한쪽에서 뭔가 걸리는 게 있었다. ‘나 혼자 그래피티를 즐기지 말자.’ 그래서 교육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었다. 처음 그래피티 수업을 한 것도 2013년 겨울이었는데, 다양한 연령층이 참여했다. 교육을 할 때 늘 부딪치는 문제는 잘 그리려 한다는 것. 스케치를 하기 위한 펜이 선뜻 나가질 못한다. 그래서 강의에 앞서 하는 것이 낙서연습인데, 이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수업이 끝날 때까지 좀 고생을 한다. 학생이나 나나 잘 그리려는 것은 원초적인 욕구일 수도 있다. 못 그려도 되니 자신 있게 해보라는 말이 고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유치원마저 선생님들이 아이들의 그림을 수정해서 보여줘야 기뻐하는 부모를 둔 슬픈 이 시대에 ‘나라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피티는 힙합문화의 한줄기이다. 그래서 스웨그가 있고 자유롭고 거칠다. 화려함과 현란함, 귀여움 속에 터프함이 있다. 그 분위기에 매료되어 19년째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피티 속 스트리트아트는 이제 미술관과 동네 골목길 상점과 카페 등에 전시(?)되어있다.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버스킹을 하고 자신의 가사로 랩을 한다. 5분 동안 무대가 아닌 거리에서 공연이 이뤄지고 행위예술가들의 퍼포먼스가 행해진다. 그래피티는 그 안에 있다. 그리고 그 거리의 건물 안에도 있다. 자유로움을 느끼려고 움직이는 생물처럼 고정되지 않고 움직인다. 나의 그래피티도 그렇게 여기저기 움직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