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내린 가을비로 내가 근무하는 강원도 동해지방해양경찰청 뜨락에는 물이 곱게 들었던 느티나무 잎들이 모두 지고 말았다. 그래도 멀리 아스라이 자작나무의 단풍이 아름답다. 그렇게 가을은 우리에게 이별을 준비하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 8월 14일 이곳 동해지방해양경찰청 기획운영과장으로 발령이 났으니 벌써 3개월이 되었다. 1986년 5월 해양경찰 최초의 여경으로 임용되어 31년만인 올해 8월, 최초의 총경으로 진급하였다. 덕분에 언론 매체에 최초의 여성 총경이 탄생했다는 기사도 많이 나왔다. 며칠간 축하 전화와 메시지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평생 받을 전화와 문자를 다 받은 것 같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귀중한 시간이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고 그것으로 인한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해양경찰 최초의 여성 경찰관으로 임용되어 보내온 31년의 일들이 스쳐 지나간다. 먼저 민원실 근무 시 장애를 가진 아들을 전국 해양경찰서에 수소문하여 찾아주니 그 어머님이 두 손을 꼭 잡고 고맙다고 인사하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분은 제주도에 사신다며 잊을만하면 안부 전화를 하시는데,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그 마음을 충분히 알 것 같다.

맞벌이 부부가 겪는 어려움을 너무도 잘 알기에 해양경찰청 본청 복지계에 근무하면서 일과 가정 양립을 위한 직장 내 보육시설을 신축하기 위해 노력한 일도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보람 있는 일 중 하나였다. 이른 아침 놀이방(예전에는 어린이집이 없었다)에 한돌 지난 아들을 맡기려고 하면 나와 떨어지지 않기 위해 내 팔을 꼭 붙잡고 울곤 하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아들은 벌써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어린아이를 키우면서 직장생활을 한다는 것이 무척 어렵다는 것을 절감한 나는 맞벌이 직원들을 위해 3년간 노력 끝에 예산을 확보하고 2011년 드디어 우리 해양경찰청 청사 내에 어린이집을 신축하였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아이를 맡기고 퇴근할 때 데려가는 직원들을 보면 참으로 흐뭇하다. 지금도 본청을 지나갈 때면 어깨가 으쓱해진다.

현재 해양경찰청에는 8300여 명의 경찰관이 근무하고 있는데, 이 중 여성 경찰관이 630여 명으로 경비함정, 수사과, 정보과, 파출소, 비행 조종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경감 때 지원해서 태안해경서 1507함 경비함정에서 부장으로 1년간 근무했다. 7박 8일간 출동을 나가면 핸드폰도 되지 않는 망망대해에서 우리 해역에 불법으로 들어와 고기 잡는 중국어선을 단속했는데, 중국어선은 날씨가 악화된 틈을 타서 우리 해역에 넘어왔다. 불법 중국어선 1척을 나포하여 조사하고 마무리하기까지 보통 15시간 정도 걸리기 때문에 밤을 꼬박 새워야 했다. 비록 힘은 들지만 경비함정 전 직원은 우리 영해를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지금도 해양경찰은 소중한 우리 바다를 지키기 위해 높은 파도와 싸우고 있다. 경비함정 근무를 하면서 매일 땅을 밟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를 절실히 느꼈다. 한여름 당직을 서고 난 후 경비함정 갑판에 올라가 봤던 깜깜한 밤하늘의 은하수, 보름달이 내려앉은 바다, 아름다운 노을을 보며 가족 생각에 마음이 뭉클했던 시간. 경비함정 근무는 나를 더욱 성장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가족보다 더 끈끈한 동료애. 그때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은 지금도 나를 부장님으로 부르는데, 그것은 아마도 당시의 애틋함이 있어서일 것이다.

날마다 꿈을 꾸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고 한다. 내가 꾸는 꿈은 어떤 것일까? ‘최초’의 여경이 되었다는 사실보다는 항상 내가 가는 길이 후배들에게 길이 된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최초’라는 명예보다는 항상 현재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여성이 가지는 섬세함과 따뜻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 되고자 마음먹는다. 앞으로 진정으로 국민에게 사랑받고 신뢰받는 해양경찰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