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송라이터 요조(신수진·37)는 가사와 목소리로 기억되는 뮤지션이다. 무덤덤하면서도 담백하게 일상을 고백하는 문장은 거추장스러운 수사로 인위적인 포즈를 취하지 않는다. 음악을 짓고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영화를 만들 때, 그녀와 그녀의 문장만이 있을 뿐이다. 그 담담한 어조와 보통의 단어, 행간의 거리에서 오는 긴장감은 치열하게 삶에 몰두해온 일상의 조각들이다. 요조라는 이름은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실격>의 오바 요조(大庭葉藏)에서 차용했지만, 여전히 수많은 대중은 요조숙녀에 그녀를 대입한다. 노래 <나의 쓸모>에서처럼 늘 자신의 존재와 쓸모에 대해 고민하는 그녀를 서초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보았다. 나긋한 목소리로 일상의 조각들을 펼쳐 보인 그녀는 읽고 싶은, 아니 읽혀야 하는 책처럼 다가왔다. 새로운 텍스트로 해석되는 오늘의 요조는 어제의 요조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인간실격>을 스무 살에 처음 읽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싶어요. 요조라는 인물과 저를 동일시하고 감정이입을 했는데, 최근에 다시 읽고는 완전히 다른 감상을 갖게 됐죠. 애정은 있지만, 타인의 입장에서 ‘왜 이렇게 살지?’하고 답답하더라고요. 사실 요조는 책 속에 봉인되어 변할 여지가 없잖아요. 감상이 달라진 건 내가 변해서인데, 몇 년 뒤엔 또 달라지겠죠. 한 인물을 놓고 다른 입장이 된다는 게 신기해요. 책은 언제 읽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5월에 발표한 정규 3집 <나는 아직도 당신이 궁금하여 자다가도 일어납니다>는 영화로 제작되어 전주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된 바 있다. 러닝타임 29분의 단편영화에 실린 5개의 신곡은 유기적인 플롯으로 기능하고, ‘죽음’과 ‘늙음’이라는 불편한 진실에 접근하여 ‘삶’을 역설한다. 연출 및 작사·작곡을 맡은 그녀는 감각적인 스토리텔러가 되어 자신만의 서사를 철학적인 화법으로 풀어내고 있다.
“뮤지션은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결이 달라지잖아요. 저도 보컬리스트로 시작했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더 강해요. 그래서 작사에 더 신경이 쓰이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어질 때 가수로서의 생명도 끝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확실히 예전에 비해 뜨거운 연애 감정은 메말라 있어요. 지금도 연애는 하고 있지만, 불처럼 확 타오르진 않거든요. 본질은 그대로인데, 사랑에 대한 태도가 변한 거죠. 늙어서일 수도 있고요(웃음). 사랑한다고 골백번 말해도 상대가 뭘 원하는지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만이 유의미해요. 나쁜 연애를 하며 깨달았어요. 그렇다고 초창기 음악을 부정하고 싶진 않아요. 윤아 언니에게 자우림 초창기 노래가 좋다고 하면 ‘나는 잘 못 듣겠어’ 하더라고요.”
요즘 들어 문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그녀는 더 많은 문자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더 깊고 더 넓게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고 했다. 그것은 어떤 영역, 어떤 상황에서든 가장 효과적으로 사고의 회로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 사진 잡지에서 멋진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어떻게, 왜 좋은지 상대방에게 전하려면 문자가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됐어요. 문자는 내 눈이고 귀고 혀니까요. 영화 <콘택트>에 ‘사피어 워프 가설’(Sapir?Whorf hypothesis)이 등장하잖아요. 원래와는 다른 언어를 습득해서 사고할 때, 그 언어를 배우면 배울수록 과거와 현재, 미래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시야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순간 아득해지더라고요.”
그녀의 일상은 ‘언어’와 ‘책’의 자장 안에 있고, 책들이 하나의 군락을 이루는 ‘책방’은 세상과의 연결통로이자 성장의 공간이다. 제주로 이주하여 ‘책방무사’를 다시 열게 된 것도 타인과의 소통을 이어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문득 그녀가 어떻게 제주와의 인연을 맺게 됐는지 궁금해졌다. 제주가 그녀에게 온 최초의 순간이. 
“20대 중반에 김영갑 작가의 포토 에세이집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선물 받아서 읽었는데, 그때 처음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알게 됐어요. 그 전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거든요. 직접 눈으로 확인하려고 갔었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그 뒤로 1년에 한 번 이상은 제주에 갔고, 정착하기로 결심했죠. 서울과 제주를 오가는 삶이 힘들어 보일 수도 있지만, 정작 저는 즐기고 있어요(웃음). 제주에 살면서 서울, 그리고 도회적인 것들을 장점으로 받아들이게 됐어요.”
 
좋은 사람, 좋은 음악

언젠가부터 약한 것들의 목소리, 작은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된 그녀는 동물과 식물, 인간사회의 약한 구성원을 보면 감정이 뜨거워진다고 한다.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사회적인 차원으로 시각과 시야가 확장됐기 때문이다. 작년 이후로는 정치에도 관심이 생겼고,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지 않는다. 책과 책방, 그리고 사회적 현실을 통해 꿈틀대던 마음이 서서히 움직이고 의식이 전환된 것이다. 
“아직도 ‘나는 과연 뮤지션다운 사람인가’ 하는 고민을 해요. 모니터에 첫 글자를 치는 순간처럼 곡을 만드는 첫 순간이 있잖아요. 곡을 써볼까 하고 기타를 잡고 폼을 잡을 때, 그렇게 쑥스럽고 민망할 수가 없어요. 데뷔한 지 10년인데, 여전히 낯을 가리니 이상하죠. 어쩌면 나는 음악을 해야 하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글을 쓸 때도, 무대 위에서도 그래요. 내 주장을 세공해서 독자를 설득시키는 게 어렵고 낯설어요. 저의 예민함에 대해서도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예전에는 ‘나는 털털한 성격이야’ 했었는데, 저를 오래 지켜본 목사님께서 ‘수진 씨는 털털한 게 아니라 예민한 성격이에요’하며 팩트 폭력을 하셨죠(웃음). 그런 예민함이 사람과의 관계맺음에는 걸림돌이 되지만 음악적으로는 장점이 되긴 해요.”
그녀가 책을 다루는 태도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궤를 함께한다. 모든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조심스러워 하는 것, 그녀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은 이러한 작은 실천에서부터 출발한다. 책을 사고파는 행위는 책방이라는 공간에서 생각을 교환하고, 땀 흘리는 노동을 새로운 가치로 환원하는 작업이다. 그만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많은 것을 해내야 한다.
“책방은 제가 좋아서 하는 거예요. 돈과 수익을 일순위로 두면 할 수 없죠. 제가 큐레이팅한 책을 판매하다 보니 모든 책들은 어쩔 수 없이 편애의 결과물이에요(웃음). 그래도 굳이 나눠보자면 관심 주제인 페미니즘과 인권, 그리고 시집, 인문 서적, 소설로 구분할 수 있어요. 흔히 볼 수 있는 책은 지양하고, ‘이런 책은 처음이지?’ 하고 선보일 수 있는, 정말 좋지만 힘이 없어서 드러나지 못한 책을 찾는 게 저의 역량이자 책방의 일차적인 목표예요.”
그녀가 음악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 지도 어느덧 10년. 하지만 창작의 여정은 망망대해를 항해하듯 늘 막막하기만 하다. 그동안 완성한 수많은 노래들이 경험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창작을 위해서는 매번 0에서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매너리즘에 빠졌을 때, 뻔한 말에도 힘이 있다는 걸 경험했어요. 옥상달빛과 일산의 한 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고민을 나눈 적이 있어요. ‘요즘 곡이 잘 써져? 나는 미칠 것 같아’ 하니, ‘나도 그래’ 하더라고요. 평소에 고민을 잘 털어놓지 못한 성격이라 그것만으로도 묘하게 위로가 됐죠. 그냥 내가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구나 싶었어요(웃음). 정답이나 대안 없이 각자 힘든 얘기만 하다가 돌아왔는데, 동병상련을 느껴서인지 힘이 되더라고요.”
인터뷰를 마치고 그녀가 쓴 책의 한 구절을 다시 펼쳐보았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혹은 어떻게 살아왔는지 대략적인 역사가 몸에 묻어나오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해를 좇느라 이리저리 휘어져 자라난 식물을 보는 것 같다.”* ‘홍대 여신’과 같은 수식어에 갇히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색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다는 그녀는 앞으로 어떤 빛깔의 책갈피를 만들어낼까. 그녀가 어디에 있든, 어디서 무엇을 하든 그녀의 문장들은 말해줄 것이다. 제자리걸음 같지만 조금씩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좋은 사람, 좋은 음악을 위한 올바른 방향으로.
 
글. 사진/ 김신영 기자
 
* 요조, 『요조, 기타 등등』, 중앙북스(주), p.22,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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