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현대미술 작가로서 ‘예술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자주 고민하게 된다. 나는 지난 6월, 아트선재센터 <그레이트 대디> 전시를 예로 들어 질문에 대한 답변의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한다. 
먼저 가족에 대해 말하자면, ３형제인 우리는 유년시절 ‘동아서원’이라는 출판사에서 외국서적을 다루셨던 아버지 덕분에 무척 많은 책이 전시된 독특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했다. 집 안 구석구석을 가득 채웠던 어려운 철학, 미학 관련 외국 서적들은 우리에게는 ‘읽힐 수 있는 책들’로서가 아니라, 그저 그림 그리기와 놀이의 공간이었다. 그 공간에서 낙서를 하거나 밟고 올라서며 놀이를 할 수 있는 친근한 ‘장식적인’ 물체들로 여긴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집안 장남으로서의 책임감이 컸던 맏형은 이른 나이에 회계사가 됐고, 우리 두 형제(강상빈, 강상우)는 모두 홍대 회화과를 졸업한 후, 현대미술의 중심지인 영국 글래스고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유학을 떠났다. 나는 ‘Intermedia Gallery, Centre for Contemporary Arts(CCA)’에서의 개인전과 수차례 터너상(Turner Prize) 작가들을 배출한 ‘Cove Park’ 숏 리스트에 오르며 열심히 작업했고, 동생 역시 세계 유명 갤러리 중 하나인 네덜란드의 ‘Diana Stigter’에서의 개인전과 ‘European Ceramic Work Center’ 레지던시 등을 지내면서 미술작가로서의 활동을 활발히 해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버지께서는 보관하시던 책 창고를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게 되자 슬슬 정리해야겠다고 하셨다. 유년시절부터 함께해온 소중한 책들이자 미학과 인문학을 공부한 사람들에게는 매우 귀중한 원서들의 거처가 불투명해질 것이라고 생각할수록 안타까움은 더욱 커졌다. 우리가 가진 능력과 인적 자산을 동원해서 어떻게든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귀중한 도서들이 바르게 쓰일 방도를 수소문하던 중에 ‘아트선재센터’로부터 연락을 받았고, 앞서 열거한 사연들과 마음이 담긴 <그레이트 대디>를 전시하게 되었다.
매일 고된 노동으로 건물 천장 높이까지 책 상자를 조금씩 쌓아가며 100평 규모의 창고를 채우셨던 아버지의 모습은 정말 대단했다. 가족을 위한 외롭고 힘든 노동이자 열정의 산물인 책들은 예술을 행하는 우리에게는 ‘가족사랑’을 상징하는 아버지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아버지의 책들이 예술 활동을 하는 우리와 연관되어 제삼자인 관객들에게까지 어떻게 관계를 맺게 되는지 고심했다.
아버지는 정말로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책들이 전해지고, 그것이 소중히 간직되기를 바라셨다. 그리고 우리는 관객들이 아버지가 보여주신 노동(운반, 설치)의 형태를 조금이나마 체험하며 우리가 느낀 아버지의 대단함을 기억해주길 바랐다. 전시 기간에 관람객들이 운반·설치 후 무료로 가져가며 남긴 책들의 수많은 인증 사진들은 벽에 부착되어 사진으로 이뤄진 책장 형태로 선보이게 되었다. 결국, 책들은 물질로서 완전히 아버지의 곁을 떠나지 않고, 아버지만의 책장 형태로 새롭게 변하여 남겨지길 원한 우리의 바람과 같았다.
 
현대미술에 있어서 ‘예술의 역할이란 무엇인가?’라는 중요한 질문은 <그레이트 대디>라는 전시를 통해 ‘예술에 있어서 가족의 역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옮겨졌다. 우리에게 예술의 역할은 ‘가족의 역할’과 같다. 전시 속에서 평생 가족을 위해 일하신 아버지의 수많은 책은 미술을 하는 두 아들의 눈을 통해 달리 인식되고 시각화되어 다시 아버지에게 투영된 것이다. 나아가 한 가족의 인생의 한 부분이 담긴 책들은 관람객들에게 개인 소장의 형태로 고스란히 남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현재 각각 ‘777레지던시’와 ‘금천예술공장‘ 레지던시에 입주하여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또한 강상빈은 전문 예술가들의 협업과 교육적 역할을 기대하며 ‘메리 메리 아트 인스티튜트(Mary Mary Art Institute)’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미국, 영국 등 해외 미술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을 돕는 전문적이고 실험적인 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도록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