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엄마가 되었습니다. 딸아이의 이름은 서아. ‘지혜의 싹’이라는 뜻이지요. 세상을 살아가며 돈도, 명예도, 사랑도 필요하겠지만 그 모든 것들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생기는 것. 다만, 지혜란 그 모든 순간 함께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그리 지었답니다. 그 지혜가 다 자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왕성한 나무가 되더라도 ‘싹’에서 출발한 겸손함만큼은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아이의 이름에 담았답니다.
이제 8개월이 된 서아는 물건을 잡고 서서 한 발짝 떼는 정도의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엄마 품을 가장 좋아하는 엄마 껌딱지라 일하는 엄마는 집에 와서도 내내 아이 곁에만 붙어있지만 엄마가 서아를 안은 건지, 서아가 엄마를 안은 건지, 두 팔로 아이를 감싸 안으면 마치 내가 안긴 듯 포근하게 위로를 받는답니다. 누군가가 내게 완전히 기대있다는 사실이 사람을 어찌나 강하게 만들던지요. ‘hug’라는 로맨틱한 단어가 엄마가 되고부터는 완전한 믿음이요, 놀라운 에너지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아이의 성장은 놀랍도록 빠르답니다. 5개월 즈음이 지나 꼬물꼬물 고개를 돌리던 서아는 어느새 스스로 뒤집고 되집고 데구르르 구르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팔목과 어깨에 어느 정도 힘이 붙었는지 땅을 짚고 배밀이를 하며 낮은 포복을 하더니 어느 순간 엉덩이를 들고 무릎으로 기며 온 집안을 탐색합니다. 그러더니 마침내 지난달, 두 다리로 세상을 디디고 선 딸아이. 말랑하던 무릎엔 검은 흔적들이 생기고, 포도알 같던 발가락은 조금 더 단단해졌지요. 불과 3개월 만에 일어난 일입니다.
서아가 뒤집기에 성공하던 날은 감동의 도가니였지요. 몇 번씩 코를 바닥에 받고 머리를 찧어도 서아는 다시, 또다시 땀을 뻘뻘 흘리며 고개를 쳐들었습니다. 어제보다 오늘, 서아는 조금씩 더 잘 해내고 있었지요. 그 과정에서 울음을 아앙 터뜨리기도 했지만, 그것을 수차례, 아니 수십 차례 반복하던 서아는 마침내 혼자 당당히 머리를 치켜들고 중력을 거스르는 인간의 직립 의지를 보여주었답니다. 그 모든 과정을 목격한 나는 요즘 이 아이에게서 참 많은 것을 배웁니다.
가만히 누운 자리가 편하다고 만족하지 않고, 뒤집고 기고 앞으로 나아가는, 포기를 모르는 에너자이저. 머리를 바닥에 그렇게 박으면 아파서 포기할 법도 한데 서아는 헥헥 숨을 몰아쉬고는 또다시 포복 자세를 취합니다. 태어난 지 이제 겨우 200일 되는 아이가 이토록 무언가에 열정적일 수 있을까. ‘나도 저랬을까?’ 문득 아이의 모습에서 30여 년 전의 나를 상상해 봅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아직 자라지 못한 아이가 있다고 하죠. 만지고 디디며 경험한 만큼만, 딱 그만큼만 생각할 수 있다고 하는 우리들은 수없이 넘어져 보는 경험을 통해 성장하기도, 좌절하기도 합니다. 생후 200일의 나도 분명 바닥에 수십 번 코를 박으며 아파도 보고 울어도 봤을 겁니다. 물론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지요. 그때의 나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랬으니 지금 이렇게 걷기도 뛰기도 하는 게 아니겠어요? 그런데 지금의 나는 조금만 피곤하면 자꾸 누우려 합니다. 이제 그만하면 됐다고 너무 쉽게 주저앉으려 하지요. 어려운 자리를 앞두고는 마치 무슨 공식이라도 있는 양 몇 걸음 가다가 되돌아오기도 합니다. 세상을 아는 만큼 겁이 많아졌고, 안 되는 일들을 경험하며 지레 포기하게 됩니다. 그래서 더 이상 꿈꾸지 않으려 하고, 새로운 길은 애당초 가보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 엄마에게 우리 서아가 온몸으로 말해 줍니다. 몇 번 해보니 되더라고, 겪어보니 나아지더라고.

나는 요즘 서아의 일상들을 적어둡니다. 훗날 서아가 일상에 지치고 도전 앞에 좌절하게 될 때 말해주려고요. 네가 얼마나 세상에 관심이 많았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었는지. 그리고 내 안의 아이에게도 말해주렵니다. 너도 원래 그랬었다고,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었다고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