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벡스터는 그의 책 <파리에 가면 키스를 훔쳐라!>에서 이렇게 말한다.
“파리에 관한 이야기는 어떤 면에서 전부 러브스토리다. 보상받았거나 받지 못했거나, 다 알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모르거나, 영적이거나 지적이거나 세속적이거나 운명적이거나 한 사랑이야기다. 청중을 끌만한 요소다 싶으면 모조리 조금씩 가미하려고 하는 서툰 영화각본처럼, 나를 파리로 데려온 사랑에는 그 모두가 조금씩 얽혀있다.”

파리를 이토록 제대로 설명한 글이 또 있을까 싶다. 파리를 다녀왔거나 다녀오지 않았거나,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파리는 누가 뭐래도 우리 모두의 로망이고 환상이다.

물론 파리에도 생활의 무게는 존재한다. 아침 8시의 파리 북역, 그곳은 낭만적인 파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말발굽 같은 발자국소리가 요란한 전철 안에는 무표정한 사람들이 가득하다. 잿빛하늘아래 혹여 비까지 흩뿌릴라치면 우울함은 극에 달한다. 그럼에도 파리는 여전히 힘이 세다. 프랑스인들이 프랑스의 진짜 매력은 시골마을에 있다고 외쳐도 사람들은 오늘도 ‘쥬뗌므 파리’를 외치며 파리로 몰려든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유독 파리에 열광하는 걸까? 자신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도시이기 때문은 아닐까. 곳곳의 건축물과 카페, 호텔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카페 데 플로르’는 시몬느 보봐르와 사르트르의 사랑이야기를, 몽마르트의 ‘물랑르주’는 로트렉의 사랑과 예술을, ‘호텔 리츠’는 피츠제럴드와 헤밍웨이 사이의 우정과 불화를 소설처럼 들려준다. 게다가 에디트 피아프, 짐모리슨, 오스카와일드, 보들레르, 모파상, 세계적인 예술가들을 품고 있는 페르라세즈 공원묘지까지, 발길을 옮기는 곳마다 사랑과 예술이 얽혀있다.

파리의 고서점, ‘세익스피어&컴퍼니’도 그중 한 곳이다. 영화 <비포선라이즈>를 기억하는지? 여행 중 오스트리아 빈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제시(에단호크)와 셀린느(쥴리델피). 그들은 6개월 후를 기약하며 속절없는 이별을 한다. 그리고 9년 후 <비포 선셋>이라는 영화로 다시 돌아온다. 해가 뜨기 전부터 해가 지기 전까지 무려 9년의 세월이 흐른 셈이다. 이번에는 비엔나가 아닌 파리의 고서점 <세익스피어앤컴퍼니>에서 재회를 하게 되는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나타난 제시는 서점에서 사인회를 열게 되고 우연히 서점에 들른 셀린느는 제시와 만나게 된다. 한층 성숙해진 둘을 만나는 것도 즐겁지만 그보다 더 흥미로운 건 노랗고 초록색의 간판이 앙증맞아 보이는 고서점의 사연이다.

서점의 역사는 195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몽상가이자 방랑가, 공산주의자인 조지 휘트먼은 새로운 세상을 꿈꿨다. 누구나 원한다면 글을 쓸 수 있고 시를 발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 그는 서재의 책꽂이 사이사이에 침대를 놓아 오갈 곳 없는 젊은 작가들에게 잠자리와 음식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비록 욕실도 없고 언제 빨았는지 가물가물한 시트가 덮인 침대와 딱딱한 빵조각이 전부였지만. 어쨌거나 이 침대에 몸을 뉘였던 사람들은 5만 명이 넘어가고, 이곳에서 탄생한 베스트셀러 작가들도 있다고 한다. 작가가 되어 나타난 제시에게 기막히게 어울리는 장소다. 파리는 늘 그렇게 하나의 배경이 또 다른 이야기의 배경이 되어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이야기를 더해가는 건 비단 과거의 예술가나 영화 속 주인공들만이 아니다. 서점 한 쪽 벽면의 장식장엔 수많은 여행자들의 메모가 가득하다. 혹은 자신들의 사진을 남겨놓고 떠나기도 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키스를 나누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는? 존 벡스터의 말을 떠올렸다. 파리에 가면 키스를 훔쳐라! 순간 또 하나의 달콤한 파리가 프레임에 담겼다. 이래저래 우리 모두는 ‘로맨틱한 파리’의 즐거운 공범들인지도 모른다.


*사진1: 영화 <비포선셋>의 배경이 된 헌 책방 ‘세익스피어앤컴퍼니’ 앞의 연인.
사진2: 몽마르트에 있는 사랑의 벽. 이 벽에는 ‘사랑’이란 단어가 언어로 적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