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기돈 녹취 김찬호 손현주 이다영

 

인천에서 190킬로미터 떨어진 북쪽 끝섬 백령도에 점박이물범이 산다. 겨울 되기 전 중국 랴오둥만으로 올라가 바닷가 얼음 위에 흰 배내털을 가진 새끼를 낳는다. 젖 떼고 털갈이한 뒤 얼음이 녹을 즈음, 갓 난 물범은 어미 곁에 붙어 백령도 하늬바다 물범바위에 닿는다. 백령도에서 몸집을 키운 새끼는 어미가 그랬듯, 수백 수천 년 동안 물범 조상들이 그랬듯 랴오둥만을 오르내리며 생명을 잇는다.

 

점박이물범을 만나기 위한 여정은 시작부터 험난했다. 백령도 점박이물범 조사를 이어온 한강유역환경청에서 며칠 전 백령도 물범조사를 다녀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동행 기회를 놓쳐 안타까워하며 한강유역환경청을 방문했다. 주무관인 윤석민(54세) 님은 한강유역환경청에서는 2004년 점박이물범이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으로 지정된 뒤 해마다 봄과 가을에 조사를 해왔다고 했다. “날씨가 안 좋아 이번 조사가 어렵겠다 싶었는데, 다행히 백령도를 한 바퀴 돌며 물범 조사를 잘 마쳤어요. 눈으로도 숫자를 세지만 파노라마식으로 같은 시간대에 연속 사진을 찍은 뒤 이어 붙여 숫자를 세죠. 이번 6월 17∼18일 조사에서 50마리 확인했어요.” 자연환경과장 김정우(58세) 님은 최근 물범바위에 어민들이 접근하는 것이 물범에게 위협이 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1박2일 조사라서 연구자들이 상주하며 조사하는 것만큼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개체가 유지되고 있는지는 추정할 수 있어요. 2014년 가을에는 180마리를 확인했어요. 꾸준하게 관찰하고 위협요인을 살피는 것이 중요해요.”

서정대학 환경공학 박사 진종구(54세) 님이 한강유역환경청 물범조사에 지난 몇 년 동행하며 자문해온 것을 알게 되었다. 다음 날 양주시 서정대학을 방문했다. “물범 번식지인 중국 랴오둥만 쪽에 갇힌 물이 순환하려면 30년이 걸린다고 해요. 공단도 확대되고 환경오염이 심해 해마다 번식 환경이 나빠지고 있어요. 그래서 물범조사 할 때 어린 개체가 얼마나 내려왔는지 주목해서 살펴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한 50마리 가운데 4마리가 새로 태어난 새끼였어요. 번식에 성공했다는 거니까 대견한 마음이 들죠.” 그이는 독도 강치가 일본에 의해 멸종됐다는 사실을 알고 독도 생태와 강치 연구를 했다. 서해 점박이물범도 관심을 갖지 않으면 자칫 멸종될 수 있겠다 싶어 자청해 물범조사에 동행해 사진도 찍고 보고서 작성도 도왔다. “물범바위에 인간이 오르지 않는다는 학습효과가 필요해요. 10년 정도 접근하지 않아야 물범들이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새끼를 키우며 살 수 있어요. 이번에 미역 채취를 위해 15명 정도가 물범바위에 오른 것을 보고 걱정되더라고요.” 중국어선들 남획으로 어획량이 줄고, 해양쓰레기도 자주 발견되는데다 최근 백상아리 출현도 물범의 서식환경을 위협하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번식지인 중국, 북한이 함께 연구해야 물범보호가 힘을 받아요. 그냥 오는 것만 관찰하는 건 멸종을 기다리는 거잖아요.”

 

고래연구소에서 5년 정도 점박이물범을 연구했던 해양수산연수원 박태건(45세) 님을 만나러 새벽같이 부산으로 향했다. 교육 출항을 몇 시간 앞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1940년대만 해도 서해에 물범이 8000마리 정도 있었다고 하거든요. 백령도에서 다 수용할 수 없는 숫자였을 거예요. 흑산도, 가로림만, 그 밖에 서해와 남해에 큰 개체군을 이뤘을 거예요. 동해까지 상당한 숫자가 왕래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2008년 고래연구소에서 물범 연구를 시작했을 때 이동경로 파악을 위해 중국 번식지에서 열 마리에 위성 추적기를 붙여 풀어주는 일에 참여했다. 거의 백령도로 내려왔고, 중국 연안 쪽으로 개체도 있었다. 한 개체는 해남까지 내려와서 신호가 끊어졌다. 더 추적했다면 의미 있는 이동경로를 파악했을 텐데 경험이 적어 신호기가 물범 몸에서 생각보다 빨리 떨어져 나간 탓이다.

백령도 물범바위는 오랜 세월 물범에게 각인된 곳이다. 어민들이 물범바위에서 미역을 따는 6월에는 사람과 물범 사이 경쟁관계가 만들어진다. “물범바위에 최대 120마리까지 올라간 것을 봤어요. 물범들이 털을 말리고 쉴 시간이, 미역을 채취하기 좋은 시간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올라가니 주위를 맴돌다가 사람이 떠나면 다시 올라가더라고요. 위협요인이지만 물범도 포기할 수 없는 곳이니까요.”

 

 

지난해 중국 청도에 다녀왔는데 그곳 수족관에 점박이물범이 20마리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단다. “관광도시로 발돋움하는 큰 해안 도시들마다 수족관을 짓고 있거든요. 10개 도시에 20∼30마리씩 있다면 어림잡아 300마리 가깝잖아요. 다 어디에서 왔을까요. 러시아에서 사들일 수도 있지만, 대체로 겨울 랴오둥만에서 불법으로 잡은 것 아닐까 싶어요.” 물범 보호는 중국과 연계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가 보호해도 중국에서 잡아버리면 백령도 물범 개체수를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번식지와 서식지는 한 덩어리니까 말이다.

 

물범을 볼 수 있을까. 이른 아침 인천항에서 백령도행 배를 기다렸다. 바람도 거세고 안개 자욱하다. 첫배는 결항했고 다행히 두 번째 배를 탔다. 소청도 대청도를 거쳐 4시간 만에 백령도에 닿았다. 구름이 걷힌 하늘은 맑고 투명하고 바다도 잔잔하다. 이런 날씨는 한 달에 두세 번밖에 없단다. 약속을 따로 한 것도 아닌데 놀랍게도 고래연구소 물범연구자인 안용락(44세) 님이 백령도에 도착해 있었다. 서울대공원 연수팀과 함께 오후에 물범바위로 배를 띄운다고 해 부랴부랴 항구로 이동했다. 물범바위 쪽으로 20여 분 물살을 갈랐다. 물이 완전히 빠지지 않아 물범바위가 조금 드러났다. 저기 물범! 100여 미터 앞 물범바위 맨 위쪽에 물범 6마리가 쉬고 있었다. 물 빠지기를 기다리는 수많은 물범이 이곳저곳에서 고개를 삐쭉삐쭉 내밀며 물범바위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눈어림으로 물범바위 근처에만 50여 마리는 돼보였다. 넋을 놓고 물범의 유연한 자맥질과 유영을 봤다. 하늬바다 쪽에도 수십 마리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안용락 님은 2006년부터 2011년까지 고래연구소에서 박태건 님과 함께 점박이물범을 연구했다. 연구 과제가 남았는데 부처 통폐합과 독립과정에서 예산 배정과 우선순위에 밀려 중단됐었다. 올해 하반기부터 다시 연구를 시작하게 되어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물범을 조사하려면 최소 일주일, 제대로 하려면 보름이 필요해요. 밀물 썰물 주기를 한 주기로 봐야 해요. 물이 얼마 안 빠질 때는 백령도에 머물지 않아요. 대동강 하구까지 오가면서 먹이활동을 하죠. 하루 와서 보고 ‘몇 마리가 있다’고 말할 수 없어요.” 고래연구소 조사에서 가장 많이 본 게 272마리였다고 한다. 그해 물범 얼굴을 촬영해 일일이 대조하며 개체 식별을 해보니까 약 370마리쯤으로 파악됐다. “물범들마다 무늬가 다 다르거든요. 들락거리니까 못 찍은 것까지 포함하면 450마리쯤은 예상하고 있어요. 3년 정도 되니까 물범바위에 올라간 물범들 얼굴을 구분하겠더라고요.”

3년 공백을 뒤로하고 올해 다시 물범 사업을 진행할 때 한국과 중국, 러시아까지 함께 연계해서 진행할 예정이다. 동시에 유네스코 사업으로 중국, 북한과 공동으로 진행하는 물범연구를 제안할 계획도 있다. 이미 2006년 한중일 공동심포지엄을 통해 공동연구를 했었고, 중국 다롄 물범보호센터 물범 10마리를 위성추적 했던 경험, 아울러 2008년 한-러 해양포유류 연대활동을 바탕으로 공동연구를 이어갈 예정이다. “유네스코 과학부장이 중국 출신이어서 관심을 많이 갖고 있더라고요. 올 2월에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1차로 설명을 했고, 북한이 수용하지 않더라도 진행하면서 설득하려고요. 물범이 사는 서해와 러시아 권역을 아우르는 연구 프로그램을 안착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해요.”

 

 

안용락 님은 중국을 포함해 서해에 사는 물범을 약 600∼700마리쯤으로 보고 있다. 서해에 오랫동안 고립된 탓에 유전 다양성이 떨어져 근친교배에 가까운 상태일 수 있다고 한다. 점박이물범은 러시아 연해주에 3천 마리, 오호츠크해에 10만 마리, 캄차카반도와 베링해, 알래스카만을 합해 10만 마리 정도가 살고 있다. 최근 주목할 내용은 3년 전 고래연구소가 동해에서 우연히 섞여 잡힌 수컷 물범 한 마리를 울산에서 풀어준 일이다. “처음에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어요. 회복된 뒤에 추적기를 붙여 풀어줬는데, 예상대로 곧바로 러시아 표트르대제만으로 올라가더라고요. 그런데 5개월 머물다가 번식기가 되니까 이동을 시작하더니 남해와 서해를 거쳐 중국 랴오둥만으로 갔어요. 놀라운 일이었죠. 러시아에서 암컷을 만났다면 함께 움직였을 가능성도 있어요.” 러시아 종과 백령도 물범은 같은 종이고, 교류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했는데 사례가 확인된 것이다. 우연하게 잘못 간 것이 아니라 일상 교류가 있었다면 아주 좋은 징조라고 생각한다. 이번 물범 연구에서는 러시아에서 위성 추적기를 달아 이동경로를 추적하는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중국 랴오둥만 번식기 때 이뤄지는 불법 포획도 위협요인이지만, 물범에겐 기후변화가 가장 큰 문제이다. “겨울철에 번식지에서 새끼들이 젖을 떼고 털갈이할 때까지는 얼어 있어야 하는데, 그 전에 녹아버리면 지방층이 형성되지 않아 저체온증으로 죽거든요. 이렇듯 물범보호는 단순한 과제가 아니에요.” 점박이물범 연구는 단지 한 개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바다 생태계 전체를 아우르며 어떻게 다가서야 하는지 질문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