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과 자연의 친구 우이령사람들 이병천 박사 인터뷰

인터뷰 정리 사진 이다영

 

 

“사람들은 자연이 당연한 것이고, 산삼을 캔다든지 송이를 캐는 것 같은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생산물 같은 것들은 언제든지 자기에게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한 것이라 생각해서 수익으로도 여기지 않지만 사실 그것들은 산이 망가지면 절대 돌아오지 않습니다. 망가지고 나서 돌아오지 않을 때 의아해하면 늦습니다. 무엇이든 있을 때 잘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가리왕산은 퇴적암 지형으로, 퇴적암이다 보니 전부 다 결이 있습니다. 화강암은 풍화 작용으로 무너지면 바스러져 모래가 되지만, 퇴적암은 시루떡처럼 결 따라 무너집니다. 돌들이 여기 얹히고, 또 얹히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나무뿌리가 그 사이 사이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햇빛이 비치더라도 시원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먹을거리를 신선하게 보관할 때 신문지를 돌돌 말아 놓지 않습니까. 신문 껍질 하나하나가 열을 막아주기 때문이죠. 퇴적암 지형도 마찬가집니다. 모래 같으면 열이 바로 스며들지만 겹겹이 쌓인 돌들이 열을 막아주기 때문에 뿌리가 항상 시원하게 유지됩니다. 주목 같은 한대식물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되는 겁니다. 그걸 풍혈(風穴 여름에도 늘 서늘한 바람이 불어 나오는 구멍이나 바위틈)이라 합니다.

 

제가 봤을 때 가리왕산은 나중에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주목이 남아 있을 수 있는 지역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지역, 화강암 지역 고산지에 남아 있는 주목은 기후변화에 의해 열이 차츰 고산 쪽으로 올라가면 거의 죽게 되어 있거든요. 하지만 가리왕산은 풍혈 지형 덕분에 뿌리가 열기로부터 보호받아 어지간한 기후 변화에도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리왕산이 중요합니다. 기후 변화에 대비해 살아 있는 식물을 가장 잘 보존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가리왕산은 주목의 어린 개체부터 오래된 개체까지 함께 있는 곳인데, 고산식물이자 한대지방에 자라는 주목의 특징을 생각하면 어린 나무가 자란다는 사실은 중요합니다. 발아가 되더라도 여름에 온도가 높아져 뿌리 자체가 뜨거워지면 대부분 못 버티고 죽어버리거든요. 그런데 가리왕산은 풍혈 지형 덕분에 밑에서 차가운 바람이 계속 올라오니까 살아남는 것이죠.

 

 

 

예전에는 원시림의 기준이 사람이 안 들어가는 지역, 사람이 한 번도 손을 대지 않은 지역이었지요. 하지만 이젠 그런 지역이 실제로 많이 없기 때문에, 지금의 원시림이라고 하는 것은 정의가 약간 다릅니다. 예를 들어 신갈나무가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건드리지 않은 바람에 그 신갈나무가 끝까지 생장을 다 해서 나무껍질에 의지해 사는 여러 곤충과 갑충류, 뿌리 부분에 의지해 사는 생물들과 주변 식물들이 신갈나무를 중심으로 모두 제 역할을 하며 같이 살아가는, 자연스럽게 순환하는 지역을 원시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자연에서 일어나는 순환 체계가 인간의 간섭 없이 진행되는 상태인 것이죠. 가리왕산 같은 경우에도 산삼봉산으로 관리하거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인위적 개입이 있었던 것이지만, 숲의 개체들마다 외부 간섭 없이 제 역할을 잘하고 있는 숲이라는 점에서 원시림이라고 볼 수 있는 겁니다.

 

오랫동안 잘 보존된 숲인 만큼 오래된 큰 나무들도 많이 있습니다. 거기에 익숙하게 자라는 곤충부터 나무가 뿌리 내린 토양 생태계에 터를 잡아 사는 생물들이 굉장히 많아요. 우리는 잘 보지 못하지만 사실 숲에서의 나무 한 그루는 그 자체로 큰 도시이자 사회이며, 숲 생명들의 공동체인 겁니다. 만약 외부 영향에 의해 나무가 사라진다고 하면 거기에 같이 살고 있는 것들도 다 없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나무를 잘라낸다는 것은 도시를 하나 드러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도시도 조그맣게 있을 때는 몇 개 작은 역할밖에 하지 못합니다. 규모가 커지면서 더 큰 체계가 되고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지요. 큰 나무들도 그렇습니다. 식물들 입장에서 커다란 나무가 사라진다는 것은 자기 나라가 없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2012년 6월 동계올림픽 활강경기장 부지로 가리왕산이 선정됐습니다. 두위봉이나 만항재, 상원산 같은 다른 장소들을 전부 봤는데 안 되더라 하면서요. 그리고 2013년 산림유전자보호구역 일부를 해제합니다. 동계올림픽은 하고 나면, 올림픽조직위원회나 선수들과 관람객들이 다 빠져나가면 남는 것이 없습니다. 올림픽을 치렀던 흔적만 남는 것이죠. 그건 덕유산에 가 보면 압니다. 1997년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알파인스키장 슬로프를 덕유산에 만들었거든요.

 

지금 가리왕산 복원 방법으로 나무 옮겨심기, 자연 천이를 이야기하는데 덕유산도 그랬습니다. 거기 있는 주목도 다 옮겼거든요. 주목이 80퍼센트 넘게 죽었고, 구상나무도 많았는데 모두 죽어버렸습니다. 자연 천이로 복원한다고 내버려 뒀지만 개망초나 달맞이꽃 같은 1년 초나 2년 초 식물들만 자라지 나무는 없어요. 벌채하는 지역이나 산불이 난 지역 같은 경우에나 자연 천이가 가능한 것이지, 스키장 같이 인공 시설을 만드는 곳에서는 되지 않습니다. 시설을 만들기 위해 원래 땅을 걷어내고 콘크리트와 롤러 같은 것으로 일부러 땅을 다질 것 아닙니까. 그런 상황에서는 씨앗이 아무리 떨어져도 발아해서 제대로 자라지 못합니다. 가능성 있는 복원을 하려면 공사할 때 거기 있는 퇴적암 돌들을 전부 다 옮겨 놓았다가 다시 전부 안정적으로 쌓아가지고 본래처럼 흙을 덮어 놓아두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저는 5퍼센트에서 10퍼센트 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것도 빗물에 흙이 쓸려 내려가지 않고, 산사태가 일어나지 않는 좋은 상황이어야 됩니다. 중요한 나무들은 옮겨 심겠다는 것도 사실 눈 가리고 아옹 하는 식이죠. 지름이 20센티미터 넘는 나무들이 6만 3천 그루가 있다고 해요. 우리가 측정한 것으로는 12만 그루가 넘습니다. 그나마도 6만 3천 그루에서 181그루를 옮긴다고 하는 겁니다. 본래 있던 곳과 같은 환경으로 옮겨주지 않고 그냥 옮기면 거의 죽을 겁니다. 나중에 ‘우리가 이렇게 복원 활동을 했다’는 면피용일 뿐이죠.

 

덧붙여, 산 전체가 아니라 일부 지역에 만든다고 괜찮은 것은 아닙니다. 만약 서울에 문제가 생긴다면 대구나 광주나 부산에 영향이 없을 수 없지 않겠습니까. 스키장 코스에 따라 일부를 자른다고 해도 공사가 시작되는 순간 가리왕산 생태계가 어긋나고 순환 고리가 끊어지게 됩니다. 처음에는 일단 공사가 진행된 양쪽에 영향을 주겠죠. 그 다음 그쪽 지역 미기후에 영향을 받는 또 다른 곳에 변화가 생길 것이고, 결국 시간문제이지 차례로 전체가 망가지게 됩니다. 저는 덕유산을 보고 절대 이런 일이 다시 생기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가리왕산 보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이 글은 2014년 10월호 <그곳에 가리왕산이 있었네> 특집 글의 일부를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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