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사진 김기돈

 

비누베이스에 숨겨진 것들
가장 많이 알려진 천연수제비누는 ‘녹여 붓기’ 식으로 만드는 ‘엠피(MP) 비누’이다. 저온 숙성해서 만드는 ‘씨피(CP) 비누’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과정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원래 비누성분은 열을 가해도 물처럼 녹지 않는다. 비누베이스에 다른 첨가제를 넣지 않았다면 반복해서 끓여 녹일 수는 없다. 기업마다 다르지만 비누베이스 성분을 모두 공개하지 않을 뿐 아니라, 첨가제도 조금씩 달라 잘 살펴야 한다. 피부에 닿는 모든 것은 성분 표시가 의무인 미국 비누베이스 성분표시를 보면, ‘소듐라우릴설페이트(SLS), 소듐도데실설페이트(SDS), 소듐라우레스설페이트(SLES)’라는 석유계 계면활성제가 들어있다. ‘알킬황산염’이라고도 하는데, 피부 단백질을 파괴하고, 면역력을 약하게 만들어 탈모나 아토피, 천식이나 비염을 가져오는 물질로 알려져 있다.

 

 

비누베이스 성분에서 ‘글리세린’이나 ‘프로필린글리콜’는 실온에서 액체이고, ‘티이에이(TEA)’나 ‘소듐라우레스설페이트(SLES)’는 액체이거나, 액체로 변하기 쉬운 물질이다. 성분표시에서 ‘소듐코코에이트’, ‘소듐스테아레이트’만 진짜 비누성분이고 실온에서 항상 고체이다. 고온에서도 액체로 잘 바뀌지 않는다. ‘엠피 비누베이스’는 고체이길 좋아하는 비누와 액체이길 좋아하는 여러 성분을 ‘조심스럽게 섞어놓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엠피 비누베이스도 합성 계면활성제 없이는 만들 수 없는 것이다.

 

천 번 저어 천 시간 숙성하는 느린 비누
성미산 마을에서 일공동체 ‘두레 비누’를 두레원들과 함께 6년째 이어온 조수강(43세) 님은 줄곧 ‘저온숙성비누’를 만들어 왔다. “씨피 비누는 ‘천 번 저어 천 시간 숙성’ 하는 시간이 만드는 비누에요. 특별하게 높은 온도로 가열하지 않고 상온에 따듯한 정도에서 그대로 놔두면 ‘자연의 시간과 자연의 온도’로 완성되는 거죠.” 전기 같은 에너지가 들어가지 않고 만드는 과정마다 사람 손이 많이 필요해 ‘수제’라는 말이 어울린다. 열을 가하지 않은 탓에 재료변형이 일어나지 않고, 보통 4∼12주까지 숙성하는 동안 비누 알칼리도가 낮아져 더욱 순한 비누가 된다.

 

 

“‘효율과 속도, 대량생산’을 통해 수익을 만드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느린 비누’는 생산 과정과 일상이 단절되지 않아 자극이 없고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비누예요.” 조수강 님은 처음에 엠피 비누를 배웠지만 녹일 때 나는 독한 냄새에 의문을 가졌는데, 비누베이스 성분에 화학합성제가 첨가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뒤 저온숙성비누로 바꿔 지금까지 느리게 비누를 만들고 있다.
몸을 지나치게 씻어 자정능력을 잃게 만들어 놓고 되레 화학물질로 몸을 지키겠다는 것이 요즘 현대인들 모습이다. 피부에 문제가 일어나는 것도 안 씻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이 씻어서인 셈이다. “땀으로 씻는 것이 가장 좋고, 그 다음이 물, 그 뒤가 비누로 씻는 것이라고 해요. 가장 좋은 보습제는 몸에서 나오는 기름이거든요. 저는 비누를 만드는 사람이지만 비누를 많이 안 써요. 비누의 가짓수가 아니라 피부가 자생력을 갖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최고의 세안은 ‘혈액순환’이라는 말을 새겨듣고 있어요.”

 

비누는 5천 년 전부터 늘 비누였다
비누 역사는 5천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이미 안전성이 증명되었다는 말이다. 위해성을 안고 있는 ‘석유계 계면활성제’보다는 자연에서 얻은 비누성분(지방산나트륨)을 쓰는 것이 안전하고 자연스럽다. 색이나 향, 다른 성분을 넣지 않은 순수비누가 가장 좋은 비누인 셈이다. 5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누는 비누일 뿐이다.
물비누를 주로 생산하는 ‘물살림’ 김태익(44세) 님은 비누가 세상에 아직까지 존재하는 이유는 ‘안전성’에 있다고 본다. 피부를 괴롭히지 않고 유해성이 적고 분해가 빠른 것이 원래 자연비누이다. 법으로도 모든 공산품은 ‘자율안전확인제도’ 대상인데, 순 비누 제품은 대상에서 빠져 있을 만큼 안전성이 검증된 것이다. 석유계 계면활성제가 단 0.1퍼센트만 들어가도 순 비누제품이라고 할 수 없다.

 

 

“물살림에서는 지금 주요 세정 성분은 비누 성분을 쓰지만, 비누가 갖는 단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식물성 계면활성제’를 섞어 만들고 있어요. 말하자면 ‘천연복합세제’인 거죠.” 생분해도가 높아 자연친화 제품이라 해도 하천으로 배출되는 순간 분해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24시간 안에 분해가 된다면 24시간 동안 환경에 부담을 주는 것이다. “생산과정부터 물을 덜 쓰는 걸 고민해야 해요. 비누 만들 때 버려지는 물이 많거든요. 냉각과정, 정제과정에서도 깨끗한 물이 그대로 버려져요. 물살림은 연못정화로 하수를 처리해서 하수처리 비용은 0원입니다. 밖으로 나가는 물도 전혀 없어요.”
요즘 소비자들은 환경이나 유해성에 관심이 높다. 대기업조차 식물성 계면활성제를 넣은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몸에 해롭지 않은 것을 찾는 소비자가 있기에 기업이 움직이는 것이다. 환경을 우선에 두고 ‘팜유 없는 비누’를 생산하는 것도, 거품도 덜나고 팜유만한 세정력은 없어도 환경과 몸을 생각해서 ‘착한 비누’를 선택하는 사람이 있어야 가능하다. “팜유를 쓰지 않으면 원가가 올라가거나 팜유에서 느낄 수 없었던 불편함이 있을 거예요. 이를 감수하면서 행동하는 소비가 필요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