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니네 텃밭 순천 본황공동체

글 사진 김기돈

 

전남 순천 황전면 본황마을 마을회관이 아침부터 부산하다. 꾸러미 싸는 날, 언니네 텃밭 ‘언니’들이 꾸러미에 담을 것들을 바리바리 싸서 모이기 시작한다. “아유, 상추가 싱싱하니 좋구먼.” “콩나물이 이쁘고 알맞게 컸네 그랴.” “소불(부추)을 막 끊어 오셨나보네. 생생허니 좋네.” 일주일 동안 준비한 것들을 부려놓으며 한마디씩 한다.

 

‘언니네 텃밭’은 여성농민이 직접 가꾸는 텃밭 농사에 담긴 가치를 찾아내고 이를 나누는 일을 해왔다. 이름을 갖지 못하고 변두리 노동으로 남았던 현실 속에서 여성농민 스스로 이름과 얼굴을 되찾는 과정이기도 했다. 나라 농업정책이 대규모 기업농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어 소농이 살아남는 길을 고민하다 소비자와 직접 잇는 ‘꾸러미’를 시작했다. 2009년 강원도 횡성 다섯 농가가 도시 소비자 21가구와 함께 시작한 뒤 지금은 전남, 전북, 경남, 경북, 충청, 제주에 이르기까지 전국 17개 지역 공동체가 활동하고 있다.

 

순천 본황마을은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구례와 접하고 전라선이 지나는 지역이다. 2010년 3월 이른 봄날, 언니들 5명이 인연을 맺은 광주여성센터 활동가 7명에게 첫 꾸러미를 쌌다. 처음에는 어떻게 꾸려야 할지 막연해 실수도 있었지만 서로 이해하고 격려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현재 여성농민 생산자 10명(한숙희, 강정이, 이삼례, 이종숙, 조연자, 신삼엽, 전금자, 서양님, 문영미, 손순자)이 소비자 회원 130명에게 꾸러미를 보낸다. 주마다 싸는 꾸러미가 70여 개에 이른다.

 

언니네 텃밭 꾸러미는 토종씨앗에 대한 관심과 연결되어 있다. 해마다 다국적 종자회사에 씨앗을 의존하는 것은 우리 농업기반을 무너트리는 일인 탓에 곳곳에 조금씩 보존해온 토종씨앗을 모으고 이를 이어간다. 하지만 토종씨앗은 생산자 노력 뿐 아니라 먹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본황마을 공동체도 꾸러미에 담을 콩과 옥수수, 오이, 채소 몇 가지를 토종씨앗으로 가꾸고 있다.

 

공동체 회장을 맡은 한숙자(79세) 님은 친정어머니가 오래전 주신 토종씨앗 10가지를 지금껏 해마다 이어오고 있다. 어느 해에는 날씨 탓에 콩 한 가지를 거두지 못했는데, 토종씨앗 축제에서 그 씨앗을 발견하고선 어머니를 만난 듯 기뻤다고 한다. 유정란을 주로 내는 한숙자 님은 5년째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꾸러미에 참여했다. 닭 250마리를 키우는데 사람 대하듯 건강한 사료를 직접 만들어 세끼 밥을 꼬박꼬박 먹인다. 고소한 계란 맛을 사람들은 금방 알아본다. 텃밭 퇴비도 직접 만들어 1년 동안 숙성한 것을 쓰는데 고추에 병 한 번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오순도순 꾸러미 싸는 날을 늘 기다리며 닭을 키우고 농사짓는다.

 

“내 식구 먹인다는 기분이 들어요. 돈 목적이 있으면 이건 못해요. 뭐 하나 잘 크면 이것도 넣어야지 하는 마음이 들고, 산에서 고사리를 뜯어도 같은 마음이에요. 믿고 먹는 사람이 있으니까 공을 들일 수 있는 거예요.” 사람들이 뭔 좋을 일이 있냐고 말할 정도로 늘 웃고 다닌다. “하루하루가 즐거워요. 내일은 무엇을 해야 즐거울까 생각하고, 일 하면서도 밭에 김을 매면서도 풀 한 포기에도 내가 일하게 되어 고맙다고 인사를 해요.”

 

꾸러미 속에 담는 것은 단순한 농산물이 아니라 언니들의 삶과 일상, 소박한 바람이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져야 하고, 촘촘해져야 한다. ‘장마전선이 오늘부터 영향을 미친다고 하더니 새벽부터 여우비가 내렸답니다.’로 시작하는 꾸러미 편지에는 한 주 동안 있었던 언니들 일상이 소소하게 담긴다. 누가 담근 김치인지, 누가 키운 건지 살뜰한 마음을 적는다. 꾸러미 편지는 문영미(46세) 님 차지다.

 

“이 동네로 1995년 시집온 마지막 며느리에요. 내 뒤로 아무도 안 오네요. 벌써 20년이 되어가요.” 지역에서 여성농민회 활동을 하다가 마을 여성농민들과 함께 일상을 나눌 활동을 위해 ‘언니네 텃밭 꾸러미 공동체’를 처음 제안했다. 주민들도 언니네 텃밭 때문에 마을 공동체가 살아나고 활력이 생겼다며 도움을 주려고 노력한다. 일 년에 두어 번 있는 체험행사에는 마을 언니들도 참여해 손을 거들고, 북적북적 마을 잔치가 된다. “4년 전에는 광주여성센터 영상팀이 ‘우리텃밭’이란 제목으로 언니들 일상을 담은 영화를 찍었어요. 공동체를 주제로 한 영화제였는데, 우리가 1등 해서 시상식에도 참여했어요. 이것이 계기가 되어 더 활발한 활동을 이어온 셈이죠.” 1년에 한 번 전국 언니네 텃밭 추수한마당 때는 언니들이 서울로 올라가는데 꾸러미 회원이 부스에 찾아와 얼굴을 마주하는 기쁨도 나눈다.

 

 

본황마을공동체는 순천, 여수, 구례를 비롯한 전남 지역과 서울 강남구, 서초구 회원을 맡고 있다. 멀지 않은 순천지역은 5가구 정도 꾸러미 싸는 날 오후에 문영미 님이 직접 전달한다. 잠깐이지만 얼굴을 마주하고 한두 마디 안부를 나누는 일이 꾸러미를 이어가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꾸러미를 3년째 받는 임봉숙(51세) 님은 본황마을과 이웃마을에서 건강원을 하고 있어 꾸러미를 직접 받고 있다. 아이가 같은 초등학교를 다닌 인연으로 10년 넘게 문영미 님과 알고 지낸 덕분에 언니네 텃밭 꾸러미 소식을 알았다. 가끔 남는 두부나 채소를 맛보라고 주곤 해서 고마운 마음을 늘 갖고 있다 꾸러미를 신청했다. 언니네 텃밭에 함께 하는 언니들도 잘 알고 있고 오며가며 만나기도 해서 이웃이 손수 지은 농산물을 받는 느낌이란다. 가게 일로 바빠 장볼 시간도 없는데 철마다 제철 먹을거리와 손수 만든 반찬을 받으면 선물 받은 것처럼 기분 좋은 경험을 한다.

 

“꾸러미가 오면 이번에 뭐 들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설레는 마음이 일어요. 생각지도 못한 장아찌나 김치 반찬이 들어 있으면 반갑죠. 그날 바로 캐서 바로 받은 신선한 제철음식이니 최고 건강식이기도 하고요. 꾸러미는 요리를 하게 만들어요. 받으면 바로 이것저것 밑반찬을 우선 만들어 놔요.” 가끔 언니들이 가게에 들러 꾸러미 싸는 이야기나 있었던 일을 재미지게 해줘서 이제는 꾸러미에 대한 동지의식도 생겼단다. “어느 언니가 지은 상추, 누가 키운 계란, 이렇게 먹으면서도 언니들 얼굴 생각을 하게 되니 버려지지 않게 살뜰하게 먹게 되더라고요.”

 

 

꾸러미를 싸서 택배로 보낸 뒤 문영미 님이 서걱서걱 수박을 자른다. 한숨 돌리고 둘러 앉아 다음 주에 저마다 무얼 가져올지 회의를 한다. 가지가 익었는지, 호박이 딸 수 있을 만큼 컸는지, 남아 있는 채소가 뭐가 있는지, 왁자한 회의가 이어진다. 매실 철이니 장아찌용으로 큰 것을 준비하고, 호박도 따고, 흰 감자도 준비하고, 식혜도 만들어 넣자고 정리했다. 둘러앉아 두런두런 사는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진다. 순천시 지원으로 곧 완공될 마을 회관 옆에 언니네 텃밭 꾸러미를 위한 작업실도 ‘언니들’과 같이 둘러봤다. 널찍한 꾸러미 작업실에 너른 공동체 마음이 깃들어 씩씩한 언니들이 스스로 늠름한 일상을 살아갈 것이다. ‘언니네 텃밭’에는 지금 보랏빛 가지가 한창 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