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재돈

 

2014년은 유엔(UN)이 정한 ‘세계 가족농의 해’이다. 유엔은 가족농이 빈곤과 기아 극복, 식량주권과 영양개선, 환경과 생물다양성 보전, 지역경제와 공동체 유지에 큰 역할을 하고 있음에 주목해 지난 2011년 12월 제66총회에서 ‘가족농의 해’를 결정했다.

 

2000년 밀레니엄 정상회의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세계 기아인구를 2015년까지 1990년 대비 절반으로 줄이자는 목표를 세웠지만, 기아인구가 오히려 8억에서 10억으로 늘어난 상황에서 가족농의 역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규모 기업농으로는 이 목표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된 결과이기도 하다. 이는 식량과 농업을 시장경제에만 맡겨 놓을 수 없다는 의미이며, 특히 ‘농산물 무역자유화’라는 이름으로 초국적 농식품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고, 다양하게 공존해야 할 나라별 고유 농업과 식량체계를 파괴해온 세계무역기구(WTO)체제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지금 세계는 기후변화와 에너지 문제, 식량문제, 그리고 신자유주의 경제위기와 사회 양극화 문제로 지속가능한 발전에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유엔은 ‘세계 가족농의 해’ 지정을 통해 가족농의 역할에 대한 세계의 관심을 집중시켜 ‘소농’과 ‘가족농’의 위상을 높이고 농민과 그 가족, 공동체, 협동조합, 토착민, 어민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국가정책을 촉진하고자 하는 것이다.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 우리나라처럼 가족농이 급속히 해체의 길을 걸어온 나라는 없을 것이다. 농사에서 제일 중요한 게 땅, 물, 농사지을 사람이다. 지금 우리나라 농가당 평균 농지면적은 1.4정보(13,884제곱미터)이고 농민 70퍼센트가 1정보(9,917제곱미터) 아래 농사를 짓고 있다. 대부분 가족 노동력으로 농사짓는 ‘가족농’인 셈이다. 하지만 농업소득의 가계비 충족도가 70퍼센트밖에 되지 않아 농사만으로는 생계가 어려워, 농가 84퍼센트는 후계자가 없다.

 

 

우리 가족농이 해체 위기를 맞은 것은 그동안 역대 정부가 추진한 저임금 노동력의 낮은 농산물가격정책, 무역자유화라는 미명 아래 진행한 농산물수입개방정책, 규모 확대와 탈농을 위한 구조조정 농정, 경쟁력 위주의 엘리트농정 때문이다. 농업을 억지스레 구조조정해서 성공한 나라는 없다. 농민을 억지로 탈농시켜 도시로 가게 하면 주택, 고용, 의료, 교통, 교육, 복지 측면에서 더 많은 사회 부담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은 오랜 시간을 두고 농업인들이 타 산업에 흡수되어 자연스런 농업 구조조정이 이뤄졌지만, 우리는 세계 역사상 유례없이 짧은 기간 안에 압축해 산업화를 진행했고 그 과정에서 정책을 앞세워 농업 구조조정이 이뤄진 만큼 농업희생의 정도나 속도가 극심했다.

 

세계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농업분야는 시장실패, 정부실패의 우려가 가장 높다. 그 이유는, 농산물 자체가 생산 출하 조정이 어려운데다가 영세 소농의 경우 개별 분산으로 경영하기 때문에 완전경쟁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농산물가격이 아무리 떨어져도 탄력성이 낮아 농산물 수요가 무한정 늘어나지 않으며, ‘소농과 개는 때릴수록 땅에 달라붙는다.’는 옛말처럼 농가가 파산지경에 이르러도 생산을 지속해야 한다. 고령으로 쉽게 직업을 전환할 수도 없는 처지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런 한계를 저마다 해결해보려고 빚을 지며 농기계 사서 남의 땅 빌려 규모를 늘리면서 발버둥 쳐왔지만 나라 안팎의 수십, 수백 정보의 기업농을 어찌 당하겠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위기에 올바로 대처할 수 있는 새로운 농정이념을 다시 세우는 것이다. 경쟁력 강화와 구조조정으로 나타나는 시장만능주의에서 벗어나 농업농촌의 지속가능성 확보를 농정 중심에 두어야 한다. 농업인과 농촌주민의 삶의 질 향상, 국민의 식생활 안전과 안정, 농업생산을 비롯해 주민생활과 도시민 휴양 같은 복합기능을 가진 공간으로 농촌지역에 대한 폭넓고 균형 있는 시각을 바로 세우는 것이다. ‘농민 농업’에서 ‘국민 농업’으로, ‘농민 농정’에서 식품 농업 농촌정책을 연계시킨 ‘국민 농정’으로 과감하게 넓혀가야 한다. 새로운 농정을 추진할 때 핵심 과제는 가족농을 중심으로 농업 노동력 재생산 구조를 살려내고, 지역공동체 해체 상황에서 농어촌지역 사회적 경제 영역(협동조합, 사회적기업, 커뮤니티비지니스)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가족농을 사회공통자본으로, 농업농촌발전을 국가발전 기본전략으로 삼고 소농과 가족농에 대한 지원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공익형 직불제의 확대를 통해 가족농의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고, 후계인력 육성과 귀농귀촌 활성화를 위한 눈에 띄는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뉴욕이나 런던처럼 먹거리와 지역(도시)단위 교육, 복지, 문화, 환경정책의 연계발전 방안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소농과 고령농의 안정된 소득보장을 통해 농업과 지역사회를 유지 발전해 가고 있는 완주군 사례처럼 로컬푸드운동 활성화도 필요하다.

 

농민 자신도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의 발전을 위해 저마다 살아남으려 발버둥치기보다 가족농의 협업화, 협동조합 조직화를 통해 공생하고 순환하는 지역농업을 일상에서 모색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농협이 제대로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더욱 혁신해야 한다.

시민사회에서도 가족농의 육성과 보호를 위한 연대활동이 필요하다. 몇몇 시민단체와 도농생활협동조합이 전개하고 있는 소농 가족농을 통한 유기농산물직거래, 가족농 사랑 기금 조성과 지원, 자급퇴비 마련을 위한 암송아지 입식운동은 얼마든지 연대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사례들이다. 가족농을 살리는 길이 지역, 협동, 생활 경제망을 통한 도농상생의 길이요, 지역공동체 복원과 활성화에 이바지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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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돈 님은 국민농업포럼 상임대표로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해 농민만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공감하는 농업을 만드는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가톨릭농민회에서 생명공동체 운동, 우리밀살리기운동에 함께했고 전국농민연합을 통해 자유무역협정과 쌀 개방에 맞서 우리 농업을 지키는 활동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