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조한혜정

 

이번 세월호 참사는 ‘정부란 무엇인가’라거나 더 근본적으로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해 국민들로 하여금 대대적인 시대 학습을 하게 만들고 있다. 초고속 경제성장과 불균형 발전을 한 결과, 질주하는 자본의 횡포와 공공성을 상실한 국가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가 더 이상 사실이 아님을 알아차린 이들의 첫 번째 반응은 이민을 가겠다는 것이었다. 사실상 우리는 마치 부족사회처럼 국적을 쉽게 옮길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세월호 참사 뒤 엄마들이 모여 활동하는 누리방에는 호주 이민을 가려면 36억, 동남아로 가면 17억 정도가 필요하다는 자세한 견적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냉정한 계산 뒤 이민을 가지는 않기로 했다고 한다. 대신 이 땅에서 자신과 자신의 자녀들을 위한 나라를 새로 만들어내겠다고 했다. 결코 애국주의 때문에 고국에 남기로 한 것이 아니다. 이들은 민족과 국민을 말하는 부모세대의 국민적 콤플렉스나 권위주의, 그 배타성과 적대감과는 거리가 멀다. 이들은 오히려 타산적이고 개인적인, 그리고 의심이 많은 삐딱한 시민들로서 자신을 오로지 개인일 뿐이라고 말할 가능성이 높다.

 

일제 압박 아래 나라 잃은 서러움을 겪었던 저항적 민족주의자들의 애국심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 조국광복과 경제발전이 가슴 벅찬 일이었음을, 우리는 부모님이나 조부모님 모습을 떠올리며 쉽게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 자율적 인간이 되고자 하는 청년들이 때로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부모세대를 부담스러워 하는 이유는 그런 국가주의가 파시즘과 닮아가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민족의 이름으로 문화상품을 만들어 어떻게든 돈만 벌면 되고, 다른 한편 자신들이 당한 그대로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욕망을 펼치려 할 때 그 ‘애국’은 추하고 그 국가는 불량해진다. ‘구글’이라는 한 회사가 가진 현금이 미국이 가진 현금보유액보다 많은 현실에서 국가의 파산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세대에게 국가주의는 더 이상 어떤 효과도 낼 수 없는 낙후된 이념일 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불량국가’가 온갖 장치를 동원해 여전히 ‘국가’의 이름으로 이들을 회유하고 탄압하려는 시도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함께 지혜를 모으는 공공지대를 없애는 한편 공권력을 동원해 정보통제 수위를 높이면서 독재시대로 회귀하며 불량성을 더하고 있다. 다양성 공존을 유도해야 할 국가가 단일한 국민 정체성을 강조하면서 국민을 분열시키고 권위주의국가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불거진 국정원 댓글 사건이나 댓글 알바꾼들의 등장은 이런 흐름이 만들어낸 현상이다. 최근의 대대적 여론 조작은 나치 독일 시대 선전부 장관을 지낸 요제프 괴벨스의 어록을 떠올리게 한다. 괴벨스는 “충분한 반복과 사람들의 심리파악을 통해 네모가 실은 동그라미라고 믿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말은 단순한 말일 뿐이고 말이란 얼마든지 옷을 입히고 위장을 통해 새로 만들어질 수 있다.”라거나 “선전은 원하는 것을 이루면 좋은 선전이고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면 나쁜 선전이다. 선전의 목표는 제대로 알아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성공하는 데 있다.”라고 말하면서 유럽을 파시즘의 폭풍으로 몰고 간 인물인데 21세기 대한민국 국가가 그 괴벨스들의 유령을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세월호 사태는 자본을 비호하고 적대적 국민을 양산함으로 유지되고 있는 ‘불량국가’의 민낯을 보여주었고 그 꽃다운 아이들은 더 이상 불량국가를 신뢰하지 말고 자체적으로 새로운 거버넌스를 만들어가라는 교훈을 남기고 갔다. 재일교포인 내 남편은 국기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국기를 앞세워 끔찍한 세계 대전을 치렀던 일본에서 전후 평화주의자 교사들로부터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럼 국기를 되살려내려는 최근 한국의 움직임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공공성을 확보하기보다 공권력의 확보에 주력하는 퇴행적 움직임은 위험하다. 이를 경계하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자체 안에 신뢰할 집단을 만들어내고 국가 단위만이 아니라 세계 전체에 공공성이 실현되는 거버넌스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작업을 해낼 자율적 시민들은 어디에 있을까? 이들이 만일 책 읽기를 좋아한다면 임지현의 《민족주의는 반역이다》라는 책을 읽었을 것이고 국가를 낯설게 보여주는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을 통쾌해하면서 읽었을 것이다. 노명우의 《혼자 사는 것에 대하여》를 반갑게 읽은 독신이거나 자녀를 타율적 교육체제에서 탈출시켜 좀 다른 길을 가게 한 부모들일 수도 있다. 나는 자율성을 중시하는 이 개인들이 ‘환대의 주민’으로 진화할 때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 보고 있다. 최근 엄기호는 《단속사회》에서 “편만 남고 곁이 파괴된” 단속사회를 넘어 다름과 만나고 삶의 연속성을 이어가자고 말하는데, 이들이 스스로를 돕는 차원을 서로를 돕는 차원으로 높여갈 때 새로운 거버넌스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말이다.

 

많은 시민들이 애도의 마음으로 진도로, 안산으로, 서울시청 분향소로 찾아 나서고 있다. “애도가 두려운 것이 될 때 우리의 두려움은 애도를 재빨리 해소할 욕구를 불러 일으켜 상실을 회복하고 애도를 추방하려 할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종전의 세계 질서로 돌아가거나 이 세계가 옛날에는 정돈되어 있었다는 판타지를 소생시키려는 권력을 투여한 행동을 취할 것이다.” 페미니스트 주디스 버틀러가 한 말이다. 시민들은 섣불리 애도를 마감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명령하지 않았지만 꼭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할 것이며 국가가 무엇인지 내가 누구인지 질문하기를 그치지 않을 것이다. 하루하루 살기 바쁘고 피로해서 생각을 접어버리게 만드는 신자유주의 덫에 빠지지 않기 위해 서로를 돕고 손을 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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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혜정 님은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이자, 하자 센터 (서울시 청소년 직업체험 센터)의 센터장이며 하자 마을 주민이다. 역사와 생활세계가 만나는 지점에서 문화 탐구를 줄곧 해 왔다. 저서로 《한국의 여성과 남성》, 연작 형태의 문화비평서인 《탈식민지시대 지식인의 글 읽기와 삶 읽기1 : 바로 여기 교실에서》, 《2 : 각자 선 자리에서》, 《3 : 신촌에서 하노이까지》, 《교실에 돌아왔다》, 《다시 마을이다》를 포함해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