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리 정은영 김기돈 녹취 손현주 이다영

 

우리 시대 인문학자 김우창 선생님께 세월호 참사 뒤 우리 사회가 돌아봐야 할 것을 물었다. 올봄 펴낸 《깊은 마음의 생태학》을 중심으로 깊음, 마음, 생태의 세 가지 연결고리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남긴 것
이번 세월호 참사가 이전 다른 사고와 달리 특별히 사람들 마음을 움직이고 함께 슬픔을 공유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 사람이 죽으나 여럿이 죽으나 사실 죽음은 다르지 않아요. 하지만 가령 전쟁 같은 상황은 사람이 저지른 일이면서 회복하기 어려운 참혹한 살상을 가져오기 때문에 참담하게 느끼는 겁니다. 이번 세월호도 사회에 전쟁 같은 상흔을 남겼다고 봅니다. 그냥 어쩔 수 없는 우발사고가 아니라 명백하게 사람이 잘못해서, 사회 체계가 잘못되어 벌어진 일이라서 그대로 넘어갈 수 없다는 공감이 있었던 겁니다. 우리가 잘못했다, 사람이 잘못이다, 사회가 잘못되었다는 인식을 했다는 말입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사회 체계의 심각한 문제를 함께 보게 된 것입니다.

 

다 바로잡는 건 하루아침에 되지는 않을 겁니다. 마음도, 사회 조직도, 기술 문제도 바로잡아야 하지만 사실 기술 문제나 정보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사회적인 마음’이 잘못된 것이 더 심각합니다. 사회 조직을 고치고 체계를 바로잡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지만, 양심에 따른 각성이 동시에 일어나야 해요. 자신을 빼고 다른 누구 탓만 하는 것은 근본 해결책이 아니라고 봐요. 사실 세월호 참사 상황에서 누구나 파렴치한 선장처럼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큰 사회일수록 또 그 사회에 여러 가지 문제가 존재할수록 개인 삶도 괴롭고 쉽지 않은 일이지만 도덕 윤리적 각성과 결단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런 각성에 공감하고 공유하는 쪽으로 나가야 하는 겁니다. 사람들이 공감을 표시하고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바탕에는 우리 사회가 달라지고 바뀌어야 한다는 갈망이 있다고 봐요.

 

깊음-마음-생태라는 연결고리
‘깊이’라는 것은 누구나 자연스럽게 가지고 있어요. 사회가 너무 소비주의로 가다보니까 깊이를 잃어버린 거죠. 숨어들어가 버린 거죠. 영국 시인 캐서린 레인 시집 제목이 ‘원년(year first)’이에요. 세계가 열리기 시작할 때, 사람이 지상에 살기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는 말입니다. 시인에게 산, 꽃, 하늘, 나무 같은 것을 말하지 말라 하면 시 쓸 게 없어요. 그건 뿌리 같은 것이고, 말 그대로 ‘원년’이고 ‘원형’이니까요. 우리 마음속 깊이 그것에 대한 갈망이 있어요.

 

‘깊은 생태학’이란 말은 생태철학자 아르네 네이스가 사용한 말이에요. 인간이 부딪치고 있는 생태문제는 단순히 기후변화나 자연자원 같은 문제만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뿌리에 대한 의식과 관계된 것이라고 보는 거죠. 나는 ‘깊은’이란 형용사를 ‘마음’에 붙였는데, 이것은 생태 문제를 떠나서도 ‘깊은 마음’이 있다는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거예요.

 

 

우리 마음속에는 제대로 돌아가는 조화로운 사회에 대한 깊은 열망이 있어요. 다르게 살고 싶지만 현실에 가로막힌 장벽이 높아 몹시 불행하게 느끼고, 결국 열망을 죽이고 사는 것은 괴로운 일입니다. 이러한 열망은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도 없고 굉장히 어려운 문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실이 어떻든 누가 무어라고 하더라도 저마다 마음을 일으켜 움직이는 태도가 필요해요. 내가 마음을 먹어도 사실 사회가 그렇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몸짓하고 움직이고 살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잊어버리기 쉬운 것 가운데 하나가 사회적 관점만 이야기하고 바깥에 모든 원인을 돌리고 탓하는 것으로는 해결점을 찾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영국 경제학자 로버트 스미스는 ‘생태문제는 지금 소비경제가 계속되면 해결할 도리가 없다’고 했어요. 아무리 탄소배출량을 제한해도 소용없고, 소비 경제, 쓸데없는 생산을 그만 둬야 한다고 말합니다. 생태문제뿐 아니라 사람 사는 데도 자기에게 필요한 게 뭔가를 아는 게 중요해요. 사람들이 빨간색 입고 다니면 나도 입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지만, 나에게 흰색이 어울리면 흰색을 입는 자아의식을 바탕으로 소비 생활을 조정하는 게 필요해요. 어떤 사람은 ‘환경독재’란 말을 쓰면서 환경문제 해결하려면 어느 정도 독재가 필요하다는 말을 하지만, 뭘 못하게 한다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나는 무엇보다 마음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기 좋아하는 대로 해야 하는데 무얼 좋아하는지도 제대로 모르는 거예요. 자신을 들여다보는 각성이 일어나면 소비생활도 적절하게 조절되고 환경문제도 좀 줄일 수 있다고 봐요. 너무 쉽게 디자인해서 너무 쉽게 버리는 문제는 생산하지 않는 흐름을 만들어야 하는 거죠. 미국에 있을 때 아는 사람이 할아버지 때 옷을 그대로 입고 다니는 것을 봤어요. 좋은 것의 기준이 남에게 있지 않기 때문이죠. 모든 걸 사회적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면 거기에서 나를 빠트리게 됩니다. 내가 움직이면서 동시에 사회를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해요.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도 당위가 아니라 ‘아름다운 것이 좋은 거니까 한 번 해봐라’가 되어야 하는 거예요.

 

생태 환경 문제도 가령 ‘자원 고갈되면 안 된다, 탄소가 배출되면 환경이 바뀌니까 살기 괴롭다’, 이런 생각에 바탕을 두고 움직일 수도 있지만, 다른 계산을 떠나 ‘저 산이 있어야 행복하다’는 사실, 그것이 우리 마음속 바람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이야기했으면 해요. 또한 도덕적 결단이라는 것도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우리가 의인이 되어야 한다는 차원을 떠나서 ‘그렇지 않으면 불행하다는 것, 저마다 자신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 남을 위해서나 사회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정의롭게 행동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했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는 너무 모든 걸 사회적으로 해석을 하니까 정의라든지 바르게 행동하는 것도 피부에 닿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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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창 님은 영문학자, 문명비평가, 문화사가, 문학이론가, 평론가, 철학자로서 인문․사회․자연과학을 아우르고 통합하는 한국 인문학의 어른이다. 여러 권의 책을 펴내고 번역했으며, 올 봄에 《깊은 마음의 생태학》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