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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종합

구분  교양/종합
정간물명   월간에세이
게재월   2013년 11월
제목  "그 어떤 이와의 끊임없는 만남" ㅡ만남 / 한유정, 할리우드 미술총감독






사람들은 나에게 늘 운이 좋다고 말한다. 내가 생각해도 운이 좋아 나쁜 경험을 뛰어넘은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스스로 가장 운이 좋다고 느낀 것은 어려울 때, 또는 내가 어떤 새로운 일을 생각하고 진행하고 있을 때 거기에 관련된 사람이 신기할 정도로 늘 내 앞에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인복(人福)’이 이런 게 아닌가 싶다.
때로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곳에서 그런 사람이 나타날 때도 있고, 때로는 예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빛과 같은 존재로 다시 나타나 준 적도 있다. 논리적인 이론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때문에 사람에 대한 소중함을 해가 거듭될수록 더욱 뼈저리게 깨닫는 것 같다.
나에게 해로운 인연도 있었다. 하지만 이 세상 인연이 다 좋을 수는 없는 법. 내가 그들 모두를 좋아할 수 없듯, 그들 역시 나를 다 좋아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좋지 않은 만남도 지나고 보면 다 그 이유가 있고, 또 거기에서 삶의 지혜를 얻게 되니 세상을 살며 이어지는 사람과의 만남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돌이켜 보면, 삶에서 이어지는 끊임없는 만남이 모여 내 인생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또 그 축에 있는 만남의 점들이 모여서 나만의 특별한 삶의 지도를 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유학을 오기 전, 혼자서 유학을 반대하는 부모님과 외로운 싸움을 하며 새벽에 몰래 영어 학원을 다닐 때, 그곳에서 수경이라는 언니를 만났다. 근 20여 년 전, 내가 영어를 더듬거리며 배울 때 정말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나를 놀라게 만든 이였다. 늘 활기차고 당당한 언니의 모습에 자극을 받은 나는, 그녀와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외로운 외국어 수행길을 동행했다. 사람의 인연이 묘한 게 그 언니는 현재 미국에서 나와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에 넘어오자마자 IMF가 터졌다. 절망 속에서 공부를 포기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상황이었다. 우연치 않게 교수님이셨던 돈(Don)에게 가슴속 얘기를 풀어놓았고, 그와의 대화를 통해 내가 이미 장학생이었던 사실을 알게 됐다. 이로써 나는 다시 미국에 머물게 됐고, 결국 그때부터 학비 전부를 매년 장학금으로 받으면서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아무런 기대 없이 그저 하소연의 대상이 없어서, 그리고 너무 절망적이어서 가슴속 깊은 얘기를 꺼냈는데, 교수님에게서 뜻하지 않은 구원의 소식을 들은 것이다. 이는 내가 지금까지 미국에 머물면서 할리우드에서 일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주었다.
학생 때 우연한 기회로 하게 된 영화. 거기서 만난 친구 조(Joe)는 할리우드에서 치열한 싸움을 하면서 지치고 무서운 길을 걷는 내게 늘 힘이 되어준 고마운 친구다. 비록 직위와 하는 일은 조금 달랐지만, 자칫 방심하면 누군가 내 위를 밟고 올라가는 이 치열한 싸움터에서 힘든 일을 함께 상의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런 소중한 인연과의 만남을 생각하면 도저히 인간의 머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 타이밍과 적절함에 놀라울 따름이다.
타향살이를 하다 보면 때론 좋지 않은 인연을 만나 무턱대고 믿었다가 상처를 입기도 한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그 상처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기도 하니, 안 좋은 인연은 인연대로 만나야만 했던 이유가 있는 것이다. 늘 좋은 만남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고, 안 좋은 만남은 만남대로 그 의미를 지닌다. 이는 내 인생에 많은 깨달음을 주고 나를 더욱 성숙시키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어쩌면 만남의 연속은 내 성장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직업은 특히 사람을 많이 만난다. 한번 작품을 하면 적게는 몇 십 명에서 많게는 몇 백 명을 만나다보니, 나와 연락을 하며 지내는 사람은 보통 인연이 아닌 사람들이다.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과 헤어짐이 일의 일부가 되어 때로는 중요한 만남도 바쁜 일상에 묻혀서 희미해질 때가 있다. 인연이 닿아 만남으로 이어지는 사람들도 서로 일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만나진 못하지만, 그 소중함은 해가 갈수록 더해지는 것 같다.
앞으로 계속 이어질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역시 내 인생을 어떤 식으로든 변화시킬 것이다. 그 알 수 없는 만남으로 내 삶이 상상 이상으로 변할 수 있기에 기대감으로 설레기도 한다. 새삼 어머니가 해주셨던 말이 떠오른다.
“너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결국 사람이 모여서 너를 만들어 주니 사람의 소중함을 늘 기억하고 있거라.”





           [출처] 월간에세이 (2013-11)
           본 콘텐츠는 발행사에서 제공하였으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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