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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교양/종합

정간물명

월간에세이

게재월

2013년 10월

제목

(아름다운 人터뷰 / 이돈태, 英 탠저린 디자인회사 대표) - " 공존, 사람을 말하다 "

아인슈타인은 ‘지식보다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라는 말로 창조의 원천을 밝혔다. 상상력은 사고의 패러다임을 바꿔 세상을 진일보시키는 메커니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발상의 중력을 거슬러 창의적인 수식으로 일상의 시간과 공간을 재배열하는 산업디자인 역시 상상력이라는 단단한 지반을 토대로 한다. 이처럼 실용미학을 담은 디자인 문법으로 소통의 통로를 열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애플의 디자인 수장 조너선 아이브를 배출한 탠저린 디자인社의 이돈태 대표(46)가 그 주인공이다. 홍익대를 졸업하고 1997년 서른에 유학(영국 왕립미술대학원(RCA))을 떠난 그는 이듬해 탠저린에 인턴으로 입사했고, 7년 만에 마틴 다비셔와 공동대표에 올랐다. 디자인 강국 영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주목받고 있는 탠저린은 기울어져가던 영국항공의 비즈니스 클래스를 획기적으로 디자인함으로써 항공사에 곧은 날개를 달아주었다. 이를 계기로 성공궤도에 안착한 탠저린은 한국과 브라질에 지사를 두고 도요타, 닛산, 히드로 익스프레스, LG전자, 삼성물산, 삼성전자, SK텔레콤, 아시아나항공, 현대중공업, 아모레퍼시픽 등 국내외 기업들과 디자인 프로젝트를 실행해왔다.
“제 디자인 철학은 ‘공존’이에요. 완성된 디자인이 고객에게 전달되기까지는 제조사, 기술자, 디자인회사의 노력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혜택이 골고루 분배돼야 하죠. 제품의 생명력을 위해서는 디자이너의 창의성, 정체성만 고집해서는 안돼요. 저 역시 창작과 디자인의 경계에서 수없이 많은 갈등을 했어요. 순수예술도 어렵지만 디자인은 3D, 4D처럼 다각적, 입체적인 작업이에요. 시장을 읽는 눈과 협상 노하우도 중요한 거죠.”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과 경험은 그가 어릴 때부터 동경하고 동행해온 것들이다. 바쁜 일정에도 재래시장과 같은 광장을 찾는 것은 사람살이를 관찰하며 어제와 달라진 오늘의 판단과 생각의 밑거름을 다지고, 이를 스스로의 정체성과 충돌시키면서 일어난 불꽃으로 새로운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다. 디자인은 ‘사람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하고, 이는 책 속의 지혜를 통해 더욱 명료해진다. 학창시절 독서광이었던 그는 인문학과 테크놀로지를 양손에 들고 디자인에 접근하는 영국인의 창작 태도를 통해 인문학의 힘을 절감했다고 한다. 키워드에서 이미지를 추출하고 그것으로 조형물에 접근하는, 단어 하나로 디자인이 가능한 것은 경직된 학문으로서의 인문학이 아닌 자유로운 사고 체계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한 단어의 범주에는 서로 다른 뉘앙스의 다양한 조형언어들이 정리되어 있는데, 이를 고객의 니즈(needs)에 적합하게 조합시키면서 최상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다.
“사용자는 결국 사람이기 때문에 시장과 고객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해요. 이를 바탕으로 분석·분류하고, 분류된 것들로 정의를 내리죠. 이들을 다시 조형화, 양산화 시키고 기술적인 요소들을 투입해서 테스트하고 설계하는 것이 디자인의 과정이에요. 요즘 디자인, 디자이너에 대한 개념과 인식이 많이 달라졌는데,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 정도로 범주가 확대됐어요. 그만큼 디자인의 질적 향상에 최선을 다해야죠.”
강원도 강릉에서 나고 자란 그는 대학 입학 후 처음 에스컬레이터를 봤을 때와 유럽 배낭여행에서의 경험을 여전히 기억한다고 했다. ‘문화충격’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호기심만큼이나 부끄러움도 많은, ‘얼굴 잘 빨개지는 아이’였던 그의 어릴 적 꿈은 예상과는 달리 고아원 원장이었다. 동네 강아지들과 꼬마들을 데려다 씻기고 밥 먹이는 것을 좋아했다며 넉넉한 웃음을 짓는 모습에서 그의 디자인 철학이 곧 삶의 철학과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늘 강조하는 디자이너의 ‘사회적 책임감’도 이러한 공존의식에서 배태되었다. 시장의 파이를 키워 고용을 창출하고 제품 사멸 후의 자원문제까지 고려하는 디자인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처럼 다차원적으로 접근하는 그에게 있어서 디자이너는 마라토너와 같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일희일비하지 않고 인생을 길게 보면서 작은 성취에 만족하는 사람만이 큰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견지에서다.
“요즘 학생들 대다수가 대기업 디자이너를 최종 목표로 삼고 있어요. 그런데 수많은 가능성들을 고려해서 조금씩 꿈을 키워가는 것도 필요해요. 스스로를 패배자로 만드는 것보다 자신이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구별하여 긍정적으로 단련시키는 거예요. ‘태산은 한 줌의 흙도 양보하지 않아서 저렇게 커졌다’라는 사기(史記)의 구절처럼 처음부터 거창한 산만 꿈꾸며 괴리감에 무너지는 것보다 차근차근 작은 산부터 쌓아가는 거죠.”
언젠가는 발상부터 기획, 디자인, 유통, 생산까지 한 번의 프로세스로 가능한 자신의 브랜드로 승부를 거는 것이 스스로 쌓아가야 할 태산이라며 디자이너, 기업가, 교육자(홍익대 교수)로서의 소박하고 균형 잡힌 포부를 밝혔다.
“하나의 장점이 아홉 가지의 단점을 상쇄시킬 수 있을 만큼 인성과 품성, 제 이름에 견고한 신뢰가 쌓인다면 좋겠어요. 기업가로서는 과욕 부리지 않고 직원들과 수평적인 관계로 지금처럼 발전하면서 롱런하는 것이고, 교육자가 가장 어려운데, 음… 학생들과 산업 현장에서 인연을 이어가도록 힘이 돼야죠. 인생의 복덕방 혹은 쉼터 같은 존재로 교감하고 싶어요. 물론 복비는 받지 않구요(웃음).”
태산으로 가기 전 오를 산들이 많이 남아 있기에 감히 성공을 말하기엔 이르다는 그가 시간의 궤적으로 빚어낸 한 줌의 흙은 미래에 어떤 조형언어들을 낳게 될까. 그의 손 위에 흐드러진, 생각의 흔적만큼 셀 수 없이 많은 흙알갱이들이 눈부시다.

글/사진. 김신영 기자

copyrightⓒ월간에세이

*장소: 서교동 카페 베를린(Cafe Ber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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