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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종합

구분

교양/종합

정간물명

월간에세이

게재월

2013년 10월

제목

(이 한 장의 사진 / 손난이, 사진작가) - "대나무와 어머니"

몇 년 전부터 대나무 사진을 찍기 위해 대나무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주저 하지 않고 다녔다. 대나무는 따뜻하고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자라는 목본(木本)식물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남부지방에 위치한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많이 자란다. 그중에서도 담양의 죽녹원과 주변 대나무밭은 나에게 좋은 촬영 장소가 되어 주었다. 홀로 서울에서 고속도로를 4시간 남짓 달려 담양까지 운전하여 내려가는 길은 멀고 지루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무척 설레기도 한다. 그것은 매번 촬영 길에 만나는 대나무의 색다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오고 싶은 사진가로서의 욕심 때문일 것이다.
담양은 대나무와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길로 유명해서 많은 사람들이 가족 여행 코스로 즐겨 찾는 곳이다. 산세(山勢)가 수려하고 공기가 맑고 깨끗한 곳, 그리고 아름다운 담양호를 끼고 많은 문화유산과 유적지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에게 담양은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 댁에서 자라면서 자주 외할머니 손을 잡고 다니던 곳이었으며 결혼 후엔 남편의 고향과 선산이 있기 때문에 지금도 가끔씩 내려가는 곳이다. 그런 인연 때문인지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담양의 풍경과 대나무를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담양에서는 대나무 군락이 있는 곳을 대나무 숲이라고 부르지 않고 대밭이라고 부른다. 시골스럽고 참 정감 있는 이름이다. 매년 여름 이맘때가 되면 연초록으로 갈아입은 대나무 잎들이 실 바람에 살랑거리면서 마치 춤추는 듯 일렁거린다. 하늘 높이 솟은 대나무들은 서로를 의지하면서 버티고, 땅 위로는 굵고 단단한 뿌리들이 서로 칡넝쿨처럼 뻗어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꽃을 피우게 되면 다함께 고사해 버린다. 매우 집단적이고 결속력이 있는 식물이다. 그래서인지 대밭은 가까이에서 보는 것보다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더 아름답고 동양화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처음 대나무 사진을 찍기 시작 했을 때는 시원스럽게 뻗은 직선의 아름다움과 한 폭의 수묵화 같은 신비로운 풍경 때문에 셔터를 눌렀으나 시간이 갈수록 대나무는 내게 그이상의 특별함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느 늦은 봄날, 대밭에 서서 마디가 굵은 왕대나무들을 -흔히 맹종죽 이라 불리 우는-마주하게 되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순간 대나무의 마디마디가 생전에 어머니께서 투병 중일 때 찍으셨던 X-Ray 사진 속의 척추와 흡사하다는 느낌이 문득 들었다. 그리고 마디마디에서 흘러나오는 새하얀 진액은 옛날 어른들이 가끔 얘기하는 “부모의 등골을 자식들이 빼먹는다”는 말을 연상하게 했다. 순간 나도 그런 자식들 중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때 보았던 대나무들을 계기로 나의 대나무 작업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어머니는 내 사진 속에서 대나무로 다시 환생하게 된 것이다. <윤회-어머니, 대나무로 다시 태어나다>는 그렇게 해서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다.
작업을 하면서 나는 붓이 아닌 카메라로 우리의 전통 수묵화를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전통한지를 사용하여 흑백으로 프린트하고 마지막에 왁스로 코팅해 이미지를 투명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남기신 일기장에서 발췌한 글들을 모아 콜라주 작업으로 마무리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내 이미지들을 수묵화처럼 만드는 데 일조하였다.
대밭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면 이마와 귀 뒤로 흐르는 땀은 어느새 시원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귓가에는 사아- 하는 대나무 바람 소리만이 길게 여운을 남긴다. 그래서인지 한여름의 대나무밭에 서면 시원함과 동시에 마음이 편안하고 정신도 맑아진다. 모든 근심은 이내 사라지고 잠시 일상으로부터 빠져나와 마냥 여유로워지는 나를 발견한다. 그러면 사진 찍는 일을 잠시 뒤로하고 대나무밭 가운데 있는 오래된 정자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무심히 바라본다. 나이가 많은 아주머니들이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오신 듯 즐거워 보인다. 내 어머니도 살아계셨다면, 아마 저분들처럼 지금 어디선가 웃고 계시겠지.

글/사진. 손난이(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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