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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종합

구분  교양/종합
정간물명   월간에세이
게재월   2013년 09월
제목  여섯 줄의 음악언어로 읊는 시 ! *아름다운 人터뷰 / 장대건, 클래식 기타리스트





그림과 서예, 무술을 좋아하던 14살의 소년은 우연히 첫째 형이 배우던 클래식 기타를 보고 호기심을 갖는다. 이는 곧 열망이 되고 희미한 마음 속 음성을 따라 서서히 명료한 꿈으로 자라난다. 그리고 그 꿈은 3년 뒤 스페인이라는 낯선 땅 위에 뿌리를 내리고 포개진 시간들을 펼쳐낸다. 그 만개한 시간의 주인은 바로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클래식 기타리스트 장대건(40)이다. 17살 때, 전설의 기타리스트 세고비아의 수제자 호세 토마스를 찾아가겠다며 혈혈단신 스페인 유학길에 오른 그는, 혹독한 음악수업과 현지적응을 거쳐 3년 뒤 알리칸테 고등음악원에 수석 입학한다. 그곳에서 그토록 갈망하던 세계적인 명교수 호세 토마스를 사사했고, 당대의 기타리스트 알바로 피에리와도 인연을 맺으면서 꿈과의 거리를 좁혀간다. 1997년에는 스위스 바젤 음대 최고 연주자 과정에 입학해 세고비아의 또 다른 후계자 오스카 길리아를 사사했고, 이후 여러 대가들을 통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공부하게 된다.
“피아노를 하신 어머니, 건축가이신 아버지, 톱악기를 연주하신 외할아버지까지,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집안 분위기에서 자랐어요. 그래서인지 연고도 없는 스페인으로 간다고 했을 때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셨죠. 제 스스로 간절히 원해서 간 유학이라 음악적으로 방황하진 않았어요. 다만 시청과 청음의 4년 과정을 단기간에 이수해야 하는 압박감은 엄청났죠(웃음).”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 강한 집념의 그는 계획대로 학업을 마치고 국제 콩쿠르에 도전하는 등 치열한 음악 여정을 지나왔다. 그 결과 한국인 기타리스트 최초로 마리아 카날스 국제콩쿠르 3위(1997), 훌리안 아르카스 국제콩쿠르 2위(2002), 루이스 밀란 국제콩쿠르 우승(2003) 등 20여개의 콩쿠르에서 수상하면서 명성을 쌓아왔다. 하지만 콩쿠르 수상은 연주 기회의 문을 열어주고 생활비를 보조받는 정도에 의의를 둘 뿐 그 이상은 아니라고 일축했다. 돈과 명예는 예술가의 본질이 아닌, 표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콩쿠르는 분명 득과 실의 딜레마가 있어요. 여러 심사위원을 만족시키려면 자신의 음악 색깔을 배제하고 모범답안처럼 표준화된 연주를 해야 하거든요. 음악(예술)을 서열화한다는 것 자체에 어폐가 있잖아요. 중요한 건 수상이 아니라 사회 한 부분인 음악가가 자신을 넘어서 타인과 공유할만한 가치를 환원하는 거예요. 돈과 명예를 좇지 않고 단 한 사람이라도 감동시킬 수 있다면 성공한 음악가라고 할 수 있죠. 음악의 본질이 우선이니까요.”
연주가들은 넘쳐나지만 ‘진짜’ 예술가를 찾기 힘든 요즘, 그 역시 진지하고 올곧은 태도로 대중과 소통하며 생명력 있는 음악가로 남기 위해 모든 순간을 붙잡고 있다. 과거에는 ‘음악’과 ‘나’ 사이의 호흡법에 더 익숙했다면, 지금은 대중의 호흡에 맞춰 무대 위 공백을 채운 여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 공간에는 순간을 태운 음악에너지가 순환하고 있다.
“조율을 하는 동안에는 청중과 보이지 않는 기 싸움을 하는데, 첫 음을 튕기자마자 그 음이 공중으로 날아가면서 팽팽해지는 공기의 기운으로 그날의 연주를 가늠할 수 있어요. 준비가 덜 됐거나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에는 ‘다음이 뭐지?’하며 손가락의 테크닉을 계산하게 되는데, 그건 이미 좋은 연주가 아니죠. 무대 위 여유는 생겼지만 여전히 긴장감은 떨칠 수 없어요. 가끔은 악몽을 꾸기도 하고, 공연 하루 전에는 밥이 안 넘어갈 정도로 긴장하거든요. 아마 음악가로서의 자존심과 청중의 기대감을 만족시키고 싶어서일 거예요. 연주 후 관객들의 충만한 눈빛, 환호와 열기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긴장감도 한 순간 사라지죠.”
그는 2009년, 세계적인 작곡가 호아킨 로드리고의 서거 10주년 기념음악회에서 대미곡인 ‘아랑훼즈 협주곡’*을 3000여명의 청중 앞에서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면서 화제가 됐다. 스페인 사람보다 스페인 음악을 더 잘 표현해낸다는 찬사를 다시 한 번 증명한 무대였다.
“처음 스페인 음악을 접했을 때부터 이질감이나 저항감이 없었어요. 워낙 한국과 정서적으로도 비슷한 면이 많으니까요. 한국․스페인 수교 60주년 공연 때 양국을 대표하는 현악기인 가야금과 기타로 이중주를 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현재 황병기 선생님의 악보집을 다 구해놓은 상태인데, 언젠가 국악과 접목시킨 무대를 만들고 싶어요.”
기타는 아름다운 소리가 짧게 머물다 사라지기 때문에 아쉬움과 여운을 남기는, 그래서 다시 듣고 싶게끔 하는 악기라고 했다. 그 기다림의 울림을 들려주기 위해 그는 미래의 악장에 어떤 빛깔의 공명을 채워 넣을까.
“늘 ‘겸손하게 초심을 잃지 말자’가 삶의 모토예요. 저에게 음악은 책이자 회화이자 조각품이기 때문에 현재에 만족하고 안주한다면 예술적 갈망도 발전도 사라질 거예요. 20년 전보다 지금이 그리고 앞으로가 더 좋을 수밖에 없는 것은 그동안의 고통, 환희, 경험들이 응집된 엑기스만 연주에 실려서죠. 저는 음악만큼 요리를 좋아하는데, 요리가 비례와 균형의 합을 타인과 나누는 것처럼 음악도 시간적인 오차범위를 줄여가며 소리, 곡, 리듬의 합을 들려주기 때문이에요. 겉만 그럴싸한, 빛 좋은 개살구가 되면 절대 안 되는 거죠.”
인터뷰 내내 호탕한 웃음을 보여준 그는 음악에 대한 천진난만함 혹은 순수함을 잃지 않고 있었다. 부초처럼 음악의 바다를 유영하는 그가 도착할 음악의 섬은 과연 어디쯤일까. 여섯 줄의 감성 언어가 읊어낸 시어들이 이제 막, 그의 손가락 사이로 밀려들어온다.


*제2악장 아다지오(Adagio)는 ‘KBS 토요명화’의 시그널 음악으로 쓰여 더욱 친숙함.


글/사진. 김신영 기자
copyrightⓒ월간에세이





           [출처] 월간에세이 (20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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