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정상의 재즈보컬리스트 웅산(雄山, 본명 김은영).

그 이름에 실린 묵직한 울림은 재즈 선율만큼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현재 국내와 일본 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재즈보컬리스트, 뮤지컬 배우, 음악 프로그램 MC, 국악과 클래식과의 크로스오버 등 다양한 면모를 보이며 음악의 원류를 향해 긴 여정을 떠나고 있다. 무엇보다 ‘日스윙저널 골드디스크 한국인 최초 수상’ ‘日재즈비평 최우수보컬부문 수상’을 비롯하여 자작곡 ‘Yesterday’로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재즈&크로스오버 음반상’ 및 ‘노래상’(2008)으로 2관왕에 오르면서 재즈뮤지션으로서의 단단한 토양을 다져나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노래는 수많은 드라마와 CF삽입곡으로 사랑받아 왔는데, 최근에는 SM5광고에 잔잔히 흐르는 ‘사랑가’로 대중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중저음의 농염한 보이스와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 매너로 관중을 압도하고 있는 그녀를 공연 리허설 현장에서 만나보았다. 무대 위에서의 웅산, 그리고 무대 아래에서의 김은영, 그 간극에서 피어나는 감성의 꽃을 찾기 위해 인터뷰의 첫 장을 열었다.

 스스로 “직각처럼 드라마틱하게 연출된 인생”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열여덟 살에 충북 단양의 구인사에 들어가 1년 반의 수행 시간을 보냈고, 스님으로부터 ‘웅산’이라는 법명을 받았다고 한다. 음색(音色)만큼이나 특별한 이름에 담긴 이야기는 음악적 화두와 뿌리로 연결된다. 불교 학자였던 아버지와 엄격한 불교집안에서 반야심경을 외우고 명상을 하는 일상은 자연스럽게 ‘본연의 자아’를 찾는 과정으로 이어졌다. 그러던 중 자신과 삶의 화두를 찾아가는 길목에서 마음속 울림이 들려왔고, 그 울림은 어느새 소리가 되어 음악은 삶의 변수가 아닌 상수로 존재하게 되었다. 이처럼 인생의 각도를 구하고 다시 세상으로 나온 그녀는 어느 날 우연히 친구가 준 녹음테이프 속 한 여인의 애절한 목소리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재즈는 순간적이고 운명적인 만남이었어요.

 대학 때 락커로 활동한 저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죠.

 빌리 할러데이(Billie Holiday)의 ‘I'm A Fool To Want You’를 듣자마자

  ‘저 노래를 부르고 싶다’라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친구가 준 테이프 하나가 인생을 바꿔놓은 셈이죠.”

 어린 시절부터 합창단, 브라스 밴드, 락 밴드까지 꾸준히 음악활동을 해왔지만 막상 음악을 업으로 삼고자 했을 때, 부모님 특히 아버지의 반대는 피할 수 없었다. 지금도 여전히 걱정을 놓진 않으셨지만 끊임없는 자기증명의 과정으로 음악의 산을 쌓고 있는 그녀에게 보이지 않은 격려도 보내주신다고 한다. 그렇게 소리 위를 걸어온 16년, 화장을 지운 김은영과 화려한 조명에 둘러싸인 웅산의 간극은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처음에는 버거웠던 이름에 ‘자유’와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음악 철학이 짙게 물들었기 때문이다.
 

 “제 모습이 낯설 때도 있지만, 가장 잘 할 수 있는 음악으로 행복할 수 있고, 재즈로의 수행을 통해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어서 눈물겹도록 감사해요. 재즈도 불교의 수행처럼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아닌 끊임없이 화두를 찾아 공부해야 한다는 점은 일맥상통하잖아요. 그래서 재즈라는 음악에 수행이라는 단어는 제법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재즈, 불교, 수행, 그리고 웅산. 언뜻 보면 불협화음으로 부유하는 듯한 이 단어들은 존재의 자유를 찾아 떠나는 음악여정에서는 아름다운 화음으로 빛을 발한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아직 만나보지 못한 음악, 사람들과의 인연을 떠올리면 설렌다고 한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내면의 수많은 인격체가 다양한 소리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이는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자아를 탐험하는, 모든 것에 열려있는 소리꾼이 되고 싶은 마음 속 외침일 것이다.

 “음악을 통해 수많은 좋은 인연을 맺었고, 관계도 확장되었어요. 다른 분야와의 만남도 마찬가지예요. 클래식 음악을 하시는 분들을 통해 오페라의 느낌을 재즈에 녹여보기도 했고, 다양한 콜라보레이션 역시 그런 만남들의 결과물들이죠.”
 자신의 재즈가 음악이라는 프리즘에 다양한 색으로 투과되기를 바라지만, 메시지만큼은 파스텔 톤 블루처럼 편안함과 치유를 담고 싶다는, 음악에 기대며 음악을 기대하는 웅산. 그녀는 오래 전, 빌리 할리데이가 자신의 감성에 봄바람을 불러일으킨 것처럼 누군가의 가슴에 시나브로 담백하고 따뜻한 블루스의 잔향이 되기 위해 곡을 짓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재즈의 제반사항들이 더 좋아질 거라 기대하며 스탠다드 곡 앨범과 자작곡 앨범 작업을 병행하면서 재즈를 지켜가는 길과 나를 찾아가는 길을 이어갈 거예요. 한국에서의 공연뿐만 아니라 일본 투어도 감사함을 담아 최선을 다 할거구요. 6월에는 미국에서 앨범작업을 하고 가을에 새 음반을 출시할 예정이에요. 지금처럼 앞으로도 가장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재즈를 들려드리기 위해 공부하고 노력해야죠.”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차분한 말투로 음악과 삶에 대한 열정을 빚어낸 인터뷰 시간동안 그녀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계절인 가을처럼 넉넉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처음 절에 들어간 계절도, 앨범을 내는 계절도 가을인 것은 새로운 전환점이 될 만한 뜨거운 어떤 것에 늘 화두를 던지고 있어서가 아닐까, 아직 닿지 않은 미명의 인연을 기다리며.


 글. 김신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