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만남과 헤어짐이 존재한다.
그 수많은 인연의 틀 속에서 절대로 헤어질 수 없는 관계가 있는데, 바로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의 만남이다.
때로는 너무 가까이 있어서 소중함을 잊고 살다가 외롭고 지칠 때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존재. 때로는 투정부리고 가볍게 대하기도 하지만 나라는 사람이 절대 혼자가 아님을 일깨워주는 존재가 바로 가족인 것이다.
언젠가 엄마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갔던 적이 있었다. 하루하루가 의미 없이 흘러갔고,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며 숱한 잠을 청하기도 했다.
그렇게 지독히도 미웠던 엄마가 내 앞에 나타난 순간, 화를 낼 수도, 미워할 수도 없는, 밀려오는 그리움을 쏟아냈다. 나보다 더 그리움 가득한 눈동자로 바라보던 엄마를 보는 순간, 그 동안의 상처와 아픔이라는 단어는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사랑’이라는 단어만이 마음속에 맴돌았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엄마~” 하고 다정하게 부르고 싶었는지, 얼마나 그 따뜻한 품에 안기고 싶었는지…, 그 큰 손으로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길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는지….
그러한 그리움과 기다림, 미움이라는 단어로 애써 포장해서 독하게 버티며 살아온 시간들이 나를 얼마나 힘들게 했었는지 말이다. 마음껏 울어본 적 없던 내가 한없이 눈물 흘리던 그날, 내가 온전히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은 가족의 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없이 커 보이고 언제나 기대고 싶었던 엄마의 긴 투병생활이 시작됐다.
이제는 엄마가 나에게 주는 사랑이 아닌, 내가 엄마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싶었다.
이렇게 연약해져버린 엄마지만….
이 모습이라도 좋으니 내 곁에 있어주길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매일 밤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엄마에게 받았던 희생적인 사랑을, 나를 위해 포기하며 살았던 그 섬김을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나누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으로 만난 내 딸.
먼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내 가슴으로 낳은 딸, 아그네스.
나도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 그 사람의 아픔을 껴안아보니 엄마의 마음을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이미 천국으로 가신 엄마를 떠올리며 내게 전해준 사랑의 농도와 깊이를 온전한 마음으로 깨닫게 된 것이다.
이제는 “엄마~” 하고 부를 수도, 따뜻한 품에 안길수도, 손을 잡아줄 수도 없지만, 가족이기에 여전히 그립고, 영원히 헤어질 수 없는, 가슴으로 불러보는 이름 엄마.
미워했던 마음도 서로에게 줬던 상처들도 나의 엄마이기 때문에, 딸이기 때문에, 또 가족이기 때문에 모두 용서할 수 있고 품어줄 수 있는 기적과 같은 마음들.
그 마음의 온기 안에서 작지만 커다란, 보이지 않는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있어서 오늘도 나는 혼자가 아님을 느낀다.
그리고 나라는 존재가 충분히 사랑을 받고 있고, 사랑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며 살아갈 수 있다.
너무나도 그리운 엄마를 그리며 내 딸 아그네스를 생각해본다.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에이즈에 걸린 아그네스도 나를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을까.
나처럼 그리움에 눈물 흘리고 있지는 않을까, 외로움과 두려움, 한없이 밀려오는 슬픔에 힘들어하지는 않을까, 조심스레 마음의 창을 열고 닫아본다.
그리고 오늘도 아주 멀리서 가슴으로 나를 부르는 이름들, 엄마와 내 딸에게 힘껏 소리쳐 본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그리고 진심으로…정말 사랑해요” 라고.
*1983년 서울 출생.
MBC 시트콤 <논스톱3>, 드라마<유리구두> <태양속으로> <1%의 어떤 것>
<백설공주> <쩐의 전쟁> 등, 영화 <그녀를 모르면 간첩> <파란자전거> 등, <바람의 나라><광개토대왕> 등 다수 작품 출연.
교양/종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