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숲의 사람이며 나무의 벗입니다

시인 신달자

“재생종이를 선택하는 것은 나무나 숲에 대한 경외이기도 합니다. 나무를 베는 일을 문명의 발전이라는 사고를 멈추지 않는 한 인간은 결국 자신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길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종이에 대한 기억을 들려주세요.

종이는 시인에게 근원이자 바탕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에도 종이가 좋아 종이를 가지고 놀기를 좋아했어요. 그때는 종이 질이 너무 나빠 글씨도 잘 써지지 않는 것이었는데 그 종이를 가지고 종이접기며, 종이사람을 만들기도 했어요. 중학교 때 색종이를 너무 많이 모아서 어머니에게 야단을 맞은 적이 있었어요. 색종이 색깔마다 별, 달, 마음, 집 이런 글자를 하나씩 써 놓곤 했어요.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데 그 색종이 하나하나마다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느 날은 색종이를 방안에 좍 펴 놓고 “난 하늘에 있다고 난 무지개 속에 있다고” 하면서 종이놀이를 하기도 했지요. 그 종이 놀이는 더 발전해서 공책 모으기도 했는데 언니들 공책을 모조리 가져다가 아무도 모르게 숨겨두곤 해서 언니들에게 결국 들켜 매를 맞기도 했어요.

이상하게 종이에 끌렸어요. 왜인지 나에게 물은 적이 많아요. 그 공책, 색종이, 빈종이 이런 것이 나에겐 이상하게도 내 공간을 넓히고 돌아갈 곳처럼 넉넉하고 좋았어요. 종이하고는 인연이 있어요. 제가 초등학교 때 아버지는 제재소를 했어요. 전쟁이 끝나고 집들이 필요했다고 생각하셨던 아버지는 제재소를 만드셨는데 그때 큰 둥치 나무들이 우리 집에는 많이 쌓여있었고 기계 돌아가는 소리를 듣고 살았어요. 특히 그 덕분에 나는 톱밥을 가지고 소꿉놀이를 했지요. 나무의 살들이 나의 밥이고 국이고 반찬이었어요. 그것이 나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지만 중학교, 고등학교를 가면서 문학에 뜻을 두면서 내가 가상으로 먹은 밥은 결국 나의 밥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나무는 그래서 친근하고 사랑스럽고 인간의 영원한 밥이라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아마 다 연관이 있을 거예요. 그것은 지금도 다르지 않아 수첩 공책이 방마다 쌓여있어요. 전화 옆에 침대 옆에, 손가방에, 화장실에, 수첩이 어딘가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요. 공책과 필기도구는 현금보다 훨씬 나에게 안정을 주죠. 마치 내 몸의 장기 같은 느낌입니다.

숲에 대한 생각이나 경험을 말씀해주세요.

어린 시절부터 사춘기까지 고향에 살았어요. 나는 시골뜨기인 셈이죠. 나무와 숲은 늘 바로 옆에 있었어요. 그러나 그것이 나무이고 숲이라는 사실은 몰랐어요. 빗자루같이 감동 없는 배경이었어요. 늘 소풍을 숲으로 갔고 학교 가는 길도 나무가 많았어요. 그러다가 고등학교를, 대학을 도시로 나가면서 나는 너무 놀랐어요. 내가 살던 고향을 뒤돌아보면서 아, 얼마나 내가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살았는지 깨닫게 되었지요. 고향은 숲이고 아름다운 곳이었다는 생각은 나무를 보거나 숲을 볼 때마다 생각하게 되었어요. 저것이 내 고향이라고 말이죠. 저것이 내 아버지 어머니라고 하면서요. 그리고 그것이 바로 나를 숨 쉬게 하는 생명의 동력이라는 것도 서서히 알게 되었지요. 그래서 저는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을 제 마음의 월든으로 제 옆에 두게 되었고 그 책은 나에게 아주 소중한 자산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자연에 대한 애착과 그곳으로 향하는 마음은 자신도 모르게 베어든 환경의 원초적 경험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물욕과 현실에 빠져 살아가기는 하지만 마음 깊이 그리워하는 환경은 소로우의 월든과 다름없다고 스스로 위로하곤 하지요. 《종이》라는 이름을 붙인 시집도 그런 결과라고 봅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종이는 그 나무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면서 더욱 애착을 갖게 되었어요. 30대 중반, 생이 뒤틀리기 시작하고 힘겨울 때 광릉수목원을 몇 번 갔어요. 소흘산을 바라보면서 뜨겁게 울고 울었지요. 마치 어머니를 만난 것처럼 말이죠. 너무 감동이었고 눈물을 흘리면서 두 팔을 벌리고 한참을 서 있었어요. 숲에 안겨있는 것 같았거든요. 큰 위로가 되었어요. 그런 시간에 사람을 만나 내 속을 텄다면 더 울화가 치밀었을 거예요. 그런데 숲은 절 안아주었지요. 숲은 지금도 어머니 같은 원초적 감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