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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종합

구분  교양/종합
정간물명   월간에세이
게재월   2013년 01월
제목  1000분의 1초의 승부사, 꿈의 엔진을 켜다 ★





폭발적인 스피드와 엄청난 굉음으로 찰나의 순간, 열정을 태우는 카레이서. 그들이 피어내는 승부의 꽃은 꿈과 맞닿은 마찰력으로 미래로 향하는 지면을 단단하게 만든다. 문명의 이기, 인간의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인 자동차로 속도를 겨루는 첨단 스포츠인 카레이싱. 흔히 남성들의 스포츠로 인식되며 여성들에게는 비가시적인 성역으로 존재했던 이 분야에 점차적으로 여성들의 거센 바람이 불고 있다. 그 속도와 방향, 세기가 강해지면서 여성 카레이서를 선호하는 팀이 늘어났고, 그만큼 가능성의 길도 확대되었다. 이러한 발전적 기로에서 ‘여성 카레이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2005년 ‘BAT GT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하면서 ‘국내 최초 여성 포뮬러 챔피언’으로 기록된 카레이서 강윤수(29)가 그 주인공이다. 작은 체구와 가녀린 외모, 앳된 목소리는 ‘카레이서’로 연상되는 이미지와 상충됐지만, 명확한 언어로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시제를 자신감 넘치게 펼친 패기 넘치는 모습은 ‘카레이서’ 그 자체였다. 과거시제는 카레이서였던 아버지(강현택, ‘타키온’ 단장)의 이야기로 시작됐지만 현재와 미래시제에는 ‘그녀 자신’만의 이야기로 채워졌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아빠가 출전하신 경주를 봤어요. 당시 저는 자동차 경주가 뭔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모든 경주차들이 마지막 직선 코스에서 쾌속 질주하는 모습에 매료됐었죠. 순간 ‘저 무리에서 같이 달려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그날의 그 장면은 제 꿈을 정립하는 데 도화선이 된 거죠.”
그날 이후 그녀는 어머니에게 종종 카레이서가 될 거라고 했지만, 정작 아버지에게는 고민을 털어놓지 못했다고 한다. 카레이서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충분히 체감하고 있었던 아버지는 그녀가 단지 화려한 겉모습에 이끌려 선택한 것은 아닐까, 여자로서 힘들지는 않을까 염려하셨던 것이다. 늘 암묵적인 태도로 일관했던 아버지는 그녀가 카트로 입문하여 첫 시합을 치루고 난 후에야 아껴둔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카트로 입문했을 때는 다른 팀에서 배웠어요. 아버지가 기술과 노하우를 알려주실 줄 알았는데, 아무 말씀도 없으셨죠. 신인전에서 우승했을 때, 아버지는 ‘첫 시합까지 그냥 지켜본 거다’라고 하셨어요.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지 테스트 하셨던 거죠. 앞으로 닥칠 엄청난 시련을 이겨낼 수 있는지 시합을 통해 지켜보신 거예요. 그런데 제 표정에서 진심으로 행복해 하는 모습과 의지를 읽으셨대요. 그때부터 저를 믿고 반대하시진 않았죠.”
집에서의 자상한 아버지와는 달리 경기장에서는 다른 선수들보다 자신을 더 많이 혼내고 엄격하게 대하는 아버지에게 서운한 감정도 들지만 그만큼 오기도 생긴다며 소탈하게 웃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아닌 단장으로서의 엄격함은 실수를 고쳐나가고 객관화 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약이 된다고 덧붙였다. 한 번 마음먹은 것에 집요하게 파고드는 끈덕짐은 카레이서 앞에 붙은 ‘여성’이라는 단어의 특수성을 걸림돌에서 디딤돌로 전환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정식으로 프로에 입문한 후, 여성이라 경쟁에서 밀린 경우가 많았는데, 정말 자존심이 상했어요. 여성이 운동습득능력과 체력적인 부분에서 불리하긴 하지만 이러한 핸디캡은 연습으로 충분히 보완할 수 있잖아요. 결국 노력과 오기로 편견을 이겨내고 우승할 수 있었죠.”
차량이 박살나고 사고로 의식을 잃는 등, 늘 위험한 순간에 직면해 있는 그녀는 어떤 순간에 마음의 갈피를 꽂아놓았을까. 모든 위험한 순간과 그것의 극복 과정은 카레이싱만의 매력적인 모험이라면서 프로 입문 후 첫 경기를 떠올렸다. 기계 결함으로 맨 나중에 출발했지만 고군분투 끝에 2등으로 들어온 감격적인 순간,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승으로 탁월한 존재감을 알려온 그녀는 스폰서 문제 등 현실적인 고민들과 대면하면서 목표 주행에 브레이크가 걸리기도 했다. 다행히 2008년에 다시 속도를 높일 수 있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그녀는 반복된 상황에서 일취월장하는 경쟁 선수들을 떠올리면 초조해 지기도 하고, 자신이 아닌 외부적인 요인으로 준비된 속도를 낼 수 없다는 게 무엇보다 속상하다고 했다. 그러나 인생은 자동차 경주처럼 하나의 산이 아닌 수많은 산을 넘는, 매 순간이 절정의 순간이라며 긍정적인 마인드로 질퍽한 노면을 헤쳐 나가고 있다.
레이싱 할 때와 같이 매사에 겁이 없을 것 같다는 질문에 “의외로 겁도 많고 고소공포증도 있다”며 수줍게 웃은 스물아홉의 소녀 같은 카레이서 강윤수. 죽을 때까지 카레이서를 하며 여성 카레이서가 아닌 그냥 카레이서로 남고 싶다는 그녀는 수많은 기업들이 모토 스포츠에 관심을 갖고, 대중적인 인지도를 상승시키는 데 힘을 보탰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앞으로 어떤 클래스에 출전하든 종합 우승을 하는 것이 단기 목표이고, 장기적인 꿈은 당연히 외국 시합에 출전해서 우승하는 거예요(웃음). 결과를 떠나 스스로 여러 개의 산을 넘으며 완주한 순간, 피니쉬 라인에서의 그 뜨거운 감동을 기억하며 계속 달려 나가야죠.”
다시 펼쳐질 인생의 스타트 라인에서 신호대기 중인 그녀의 현재 속도계는 빠른 속도로 미래를 가리키고 있다. 자신의 삶 1분 1초에 승부수를 던지는 작지만 큰, 부드럽지만 강한 그녀는 큰 사람, 작은 거인이었다.

글. 사진/ 김신영 기자





           [출처] 월간에세이 (20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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