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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공연

구분  문화/예술/공연
정간물명   월간에세이
게재월   2015년 11월
제목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 만남 / 조규찬, 가수


2015년 7월 말, 나와 아내, 그리고 아들은 스코틀랜드로 향하는 여정에 올랐다. 에든버러 대학 주최의 무대예술 관련 워크숍에 참가하는 아내와 동행하기 위함이었다(나는 청강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16일간의 일정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가져가야 할 짐은 그 크기와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비행기에 탈 때는 짐을 부치면 되니까 그리 큰 어려움은 겪지 않았지만, 런던을 경유하여 스코틀랜드로 가는 기차에 오르기까지의 과정과,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기차역부터 숙소까지 가는 동선에서는 상당히 고된 순간들을 겪었다. 온 몸이 땀에 흠뻑 젖을 정도였다.
어찌되었건, 우리는 에든버러 대학 안에 있는 숙소에 무사히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다.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하고 난 다음 날 오전을 시작으로, 아내는 워크숍 일정을 따라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청강을 했던 나는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있었으므로, 아들과 적지 않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다.
예컨대, 기회가 될 때마다 현지에서 공연되고 있는 각종 연극에 아들을 데리고 다녔는데, 그를 위해 나는 그곳의 대중교통(버스)을 잘 이용해야 했다. 처음 가는 곳의 지리와, 생소한 대중교통 이용법 등이 적잖이 까다로웠다. 그래서인지 상당히 긴장되고 조마조마한 나들이가 매일 이어졌다. 그러는 와중에 길을 잃은 적도 있었다.

아들의 손을 잡고 우왕좌왕하던 나는, 지나는 사람에게 길을 묻기로 결심했다. 그때, 맞은편에서 씩씩하게 걸어오는 백인 남자 한 사람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서양 사람치고는 키가 크지 않은, 아니 작은 편이었는데, 귀에는 이어폰을 끼고 있었고, 등에는 백팩을 메고 있었다. 어딘가를 바쁘게 향하는 것 같은 걸음걸이여서, 나는 그가 나와 내 아들을 도와줄 것인가에 대해 약간은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나의 손짓과 말이 이미 나간 상태였으므로, 결과에 관해서는 운에 맡기기로 했다. 그는 이어폰을 빼고서 나에게 다시 말해줄 것을 요구했다.
나는 에든버러 대학의 리셉션 센터(내 일행의 숙소 가까이에 있는 곳)에 가려면 어디에서 어떤 버스를 타야 하는지, 혹은 택시 승강장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는 내 얘기를 잘 알아듣기 위해 그의 귀를 내 입 쪽으로 기울였다. 나의 서툰 영어 악센트를 알아듣기 위해 최선을 다한 후, 그는 길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핑계겠지만, 스코틀랜드식 영어의 악센트를 알아듣는 일은 정말 쉽지 않았다. 그것은 결정적인 장면이 하얗게 지워져버린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난감함이었다. 나의 초점 없는 눈을 읽은 그는, 잠시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내게 말했다.“I will show you the way, could you come with me?”

그는 몸을 돌려서 자신이 지나온 길을 거슬러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나와 내 아들에게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에든버러의 인상은 어떤지를 물어주었다. 우리의 대답을 들으며 미소 짓는 그에게서, 그를 따라 걷는 우리가 어색함이나 미안함을 느끼지 않게 하려는 배려를 엿볼 수 있었다.
내 일행의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그는, 분명 바쁘게 어딘가로 향하는 모습이었는데, 그렇게 자신의 귀한 시간을 써 가면서까지 길을 가르쳐주다니, 참으로‘비현실적인 현실’이라는 신기한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가 우리를 데리고 택시 승강장까지 가는 데 걸린 시간은 최소 10분이었다. 짧다면 짧지만, 바쁜 이에게 지나온 길을 10분간 거슬러 걷고, 또다시 그 길을 10분간 되걷는 일이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그것이 낯선 여행자를 위한 것이었다면 더욱 그렇다.

그가 우리를 데리고 도착한 곳은 어느 작은 교차로의 택시 승강장이었다. 그는 택시 기사에게 우리를 태워서 목적지에 갈 수 있는지, 그러니까 영업 중인지를 확인하고, 우리가 택시에 탈 수 있도록 차 문을 열어주기까지 했다. 그리고 즐거운 여행이 되길 바란다는 덕담까지 해 주고서 우리를 떠났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일이기라도 한 것처럼 다시 이어폰을 귀에 꽂고, 처음 나와 마주쳤을 때의 모습으로 가던 길을 향했다. 멀어지는 그에게, 나는 두 번이나 진심을 담아 고맙다고 말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 스코틀랜드 청년은 내 인생에서 마주친 그 누구보다도 강한 임팩트를 내 가슴에 가하고 사라졌다.





           [출처] 월간에세이 (2015-11)
           본 콘텐츠는 발행사에서 제공하였으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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