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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공연

구분  문화/예술/공연
정간물명   월간에세이
게재월   2015년 10월
제목  마음 헤아림 - 이 한 장의 사진 / 안재인, 사진가


얼마 전 책을 펴냈다. 2003년 1월에 시작해 올해 봄 출간했으니 12년 4개월 만에 완성된 책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속에 어머니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는데, 그동안 400곳이 넘는 절과 절터를 포함해 1천여 곳이 넘는 장소를 다녔다. 그중 50여 곳을 엄선하고, 5만 장이 넘는 사진 중에서 70여 장을 추려 한 권의 사진 수필집을 완성했다.

책을 읽어본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우선 그 많은 곳을 함께 다닌 어머니가 고생이 많았을 것이며 참으로 대단하시다는 평이었다. 그다음으로 많이 들은 얘기는 어머님이 책을 보고 정말 좋아하시지 않았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런데 그건 그렇지 않다. 사실 어머니는 책을 받아들고 처음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저 “고생했다”는 말뿐이었다. 그 책의 주인공이 당신이며, 당신이 찍은 사진도 함께 실린 책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돋보기를 들고서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보던 어머니는 대뜸 일하고 있는 내게 와서 투정을 부렸다. “아니, 책 내용이 왜 이러냐? 너도 참, 이런 책을 내려고 했으면 나랑 상의했어야지. 니 맘대로 이렇게 책을 내면 어떡하냐?” 처음에는 당신의 이름과 사진이 실린 것이 민망해서 그리 말씀하시는 줄 알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뒤로도 같은 말씀을 몇 번 더 하셨다.“이 내용은 쓸모도 없는데 남사스럽게 뭐하러 넣었냐? 나는 어디가 좋던데 거기는 또 왜 빼먹었냐?”하시는 게 아닌가.

그 책을 어머니가 평소 다니던 사찰에 가지고 가서 자랑하라고 말씀드렸더니, “야, 창피해서 어떻게 가냐? 관음사가 안 나왔잖아. 이걸 가지고 어떻게 스님한테 가서 인사를 해. 신도들한테도 그렇고”라고 하셨다. 어머니에게 중요한 것은 좋은 사진도, 내 마음이 담긴 책에 실린 내용도 아니었다. 어머니는 평소 당신이 자주 다니던 절의 모습이나 이야기가 실리지 않은 것을 못내 서운해 했다. 십 년 넘게 함께 여행을 다니면서도 나는 어머니가 무엇을 원하는지 몰랐다.

조선 시대 성대중이 쓴 <청성잡기(靑城雜記)>에는 ‘사람의 얼굴을 관상(觀相)하는 것은 사람의 말을 들어보는 것만 못하고, 사람의 말을 들어보는 것은 사람의 일을 살펴보는 것만 못하고, 사람의 일을 살펴보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것만 못하다’라는 말이 있다. 그토록 오랜 세월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껏 나는 어머니의 낯빛을 살피고, 말에 신경 쓰고, 행동을 돌아보는 데만 관심을 가졌을 뿐, 가장 중요한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는 부족했다.

그럴 수밖에. 내게는 흔히 말하는 그림이 될 만한 경치 좋은 풍경이나 사찰이 중요했다. 하지만 어머니에게는 평소 자주 다니던 절이 가장 애착이 가고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어머니에게 선물하겠다고 시작한 책이었는데, 내 욕심만 차리고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그 절은 안중에도 없었으니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친 셈이다.

얼마 전에는 책에 실린 사진들로 전시회도 열었다. 많은 사람이 어머니가 행복해 보인다고 했다. 크게 인화해서 넓은 벽면에 건 사진을 멀찍이서 바라보던 나는 새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전에는 사진 속 어머니가 자연과 어우러진 모습이 아름답다고만 생각했는데, 쑥을 뜯거나 매화밭에 가만 서 있고, 오솔길을 걷는 사진에서도 어머니는 한없이 걱정스럽고 쓸쓸해 보였다.

반면 전시장 한쪽 면에 전시된 어머니의 사진은 달랐다. 어머니는 어느 날 내게 사진을 배워보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 자동카메라를 사 드리고 전원을 켜는 방법만 알려드렸을 뿐인데, 어머니의 사진은 그 어느 사진보다 따뜻하고 보기 좋았다. 나는 안다. 어머니는 단지 사진을 찍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자식이 그토록 놓지 못하는 사진이 어떤 것인지 당신이 몸소 겪어보고 아들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우선이었다는 것을. 어머니의 사진에는 자식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있었기에 사진에 고스란히 그 마음이 담긴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뜻밖에 쉬울 수도 있다. 어느 정도 내 것을 포기하고 다가간다면 상대의 마음을 조금은 더 헤아릴 수 있으리라.





           [출처] 월간에세이 (2015-10)
           본 콘텐츠는 발행사에서 제공하였으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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