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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공연

구분  문화/예술/공연
정간물명   월간에세이
게재월   2015년 10월
제목  사람을 향한 기술이 아름답다 - BizWiz / 이상호, 만드로(Mand.ro) 대표


2015년 1월의 약간 추웠던 어느 날 아침, 3D 프린팅 분야 사업을 진행하고 있던 나는 평소처럼 관련 업계 소식과 커뮤니티 게시판 글을 보고 있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글을 읽어나가는 중에 아래와 같은 제목의 글이 눈에 띄었다.
“의수 제작 가능할까요?”

글의 내용은 이랬다. 나와 동갑인 서른다섯 살 남자 분으로, 지난해 사고로 양손이 절단되었고, 전자의수 가격이 한 개에 4천만 원이나 해서 포기하려고 했지만 쉽게 포기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내게 3D 프린팅 의수라는 건 멀고 먼 아프리카 땅, 전쟁이 빈번한 지역에서나 필요한 물건이라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내 눈앞에 있었다. 그 글을 읽으며 평소 주변의 절단장애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지 못했다는 사실에 자책했다. 하지만 나는 전자의수가 무엇인지도 몰랐고, 일반 의수조차 본 적이 없었기에 어떻게 하면 그분을 도울 수 있을지 막막하고 고민스러웠다.

다행히 약 7개월 전인 2014년 5월경, 전문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서 3D 프린팅 기술과 초소형 컴퓨터(아두이노)를 활용하여 20만 원대에 일종의 전자의수인 로봇 손을 만든 해외 사례가 있음을 확인했다. 필요한 기술이 무엇인지 조사해보니 내가 아는 기술들을 단지 잘 융합한 형태였다. 과거 석박사 과정 기간에 연구했던 기술들과, 최근까지 다녔던 전 직장에서 근무 중에 익혔던 분야의 지식, 그리고 현재 3D 프린팅 사업을 하면서 얻은 노하우를 결합하면 금방이라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뜻이 맞는 한 분과 함께 팀을 꾸려 작업에 착수했고, 전혀 배경 지식이 없었음에도 약 2주 만인 2015년 1월 24일 첫 번째 전자의수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첫 번째 버전을 만드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돌이켜보면 정말로 장난감에 가까운 로봇 손이었기에 상당 부분 개선이 필요했다. 당시만 해도 전자의수를 만드는 일을 단지 ‘한 분을 돕기 위한 재능기부' 정도로만 생각했기에, 이 일을 얼마나 더 진행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었다. 그러다 내 블로그와 3D 프린팅 분야 커뮤니티에 ‘2주 동안의 전자의수 제작기’라는 글을 올렸는데, 우연히 지인 한 분이 그 글을 페이스북에 퍼 나르면서 약 100만 명의 사람들이 내 글을 읽었다. 덕분에 많은 분의 다양한 생각들을 접할 수 있었다. 특히 내게 큰 가르침을 준 페이스북 내의 인용 메시지는 다음과 같았다.

“사람을 향하는 기술이 아름다운 기술이다.”
이 글은 내 나이의 절반도 채 되지 않은 어느 중학생이 쓴 것이었다. 나는 서른다섯 해를 살아오면서 과학 기술을 좋아해서 기술 그 자체에 빠져들었고 박사학위까지 받았지만, 그 오랜 기간 동안 ‘사람을 위한 기술’이라는 것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중학생의 말 한마디에 나는 지난 삶을 반성할 수밖에 없었고, 일회적인 재능기부로 여겼던 전자의수 제작에 관한 고민과 문제 정의를 처음부터 다시 하기에 이르렀다.

조금 더 시간을 내어 절단장애인 분들의 삶과 주변 환경에 대해 알아보니, 국내에 수만 명의 절단장애인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전자의수 사용자는 10명 내외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유는 수천만 원에 달할 만큼 비싼 전자의수 가격에 비해 장애인 복지 예산이 턱없이 적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목표를 다음과 같이 다시 정했다. “돈이 없어서 전자의수를 쓰지 못하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

그리고 전자의수에 대한 생각과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단지 한 명을 돕는 일로 시작했지만, 이제 나는 모든 절단장애인이 큰돈을 들이지 않고 전자의수를 쓸 수 있는 세상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다. 매일 전자의수 설계를 개선하며 매달 새로운 버전의 전자의수를 만드는 동안 벌써 8개월이 흘렀고, 그간 300번이 넘는 설계 변경을 통해 개선을 거듭했다.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우리 주변의 많은 절단장애인이 더 나은 삶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사람을 향한 기술’의 가치와 중요함을 알리는 일에 꾸준히 매진할 것이다.





           [출처] 월간에세이 (2015-10)
           본 콘텐츠는 발행사에서 제공하였으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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