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를 유지하기 위해 늘 대면해야 할 대상은 인칭(人稱)이다.

나와 대칭된 자리에 서 있었던 너.

너에 부대끼고 그로부터 떠나가고 어떤 이의 근거 없는 질타에도 수긍해야 할 궁극의 대상은 ‘나’란 인칭이다.

 

 빈궁한 교감의 산물들은 사회란 철벽의 틀 안에서 용인되어야 할 인칭대명사(목적격)에 속한 함의(咸意)다.

도시를 떠나 빈 공간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과의 관계를 파헤치기 위해, 나는 문명의 얼개를 조립한 인칭대명사를 허물며 그 첫 발자국을 내딛었다.

 사막에서는 하늘은 낮아지고 땅이 넓어졌다.

사멸한 것들이 동음반복으로 몰려오는 바람 앞에 놓이고, 떠남으로 생긴 흔적에는 속수무책의 먹먹함이 차오르며, 끝없이 넓은 계곡은 묵음(默音)의 세계로 충만해졌다.

 내뱉는 말들은 금세 증발하여 혀끝에 오므라들었다. 말이 말라 시선으로 더듬은 것은 힘겹게 살아가는 들풀이었고, 들풀 하나하나는 빛바랜 녹색으로 떠오른 사막 위의 섬이었으며, 그 내력은 지구란 설화에 속해 있어 저마다의 사연을 가늠할 도리가 없었다.

 

 빈 공간은 언어의 퇴화와 존재의 먹먹함으로 대인칭(代人稱)만이 합당하였다.

하여 들풀 외에도 모래, 바위, 그리고 그 위로 쏟아지는 하늘의 색 모두가 ‘너’란 대상에 스며들었다.

 오래 전 이곳은 인디언의 호령만이 계곡을 적셨다.

그들의 언어는 태양, 불꽃, 나무, 달빛, 하늘과 바람의 것들이었다.

 그 소리를 해독하는 것은 육신의 능력 바깥이다.

귀를 닫으니 들리는 소리들. 사막에서 인디언이 명명한 나무는 ‘백색 늑대의 환생’이다.

 

 바람이 몰고 온 이름이어서 마음으로 들어야 하며, 그 소리는 적막한 땅에서 소통의 언어로 육화되었다.

 

 인디언들은 나의 별자리를 ‘용감한 황소의 유령’으로 호칭해 주었다.

나는 그 영백(靈魄)의 기운으로 원주민의 옛 여정을 따르게 되었다.

 그렇다!

 구름과 바람과 물이 그러하듯이 ‘떠돎’ 만한 자유는 없다. 인간이기에 역마살 뒤에 따라붙는 고적(孤寂)감. 누군가는 자유를 찾아 모하브 사막의 한 귀퉁이에서 모래 알갱이만큼 작아져 외로워야 했으며 그로인해 광막한 소실의 아픔으로 온몸이 타들어갔다.

 

 목소리를 ‘한 톨’도 남기지 않고 증발시켜버린 사막이라는 해체 공간에서는, 나무 한 그루가 이뤄낸 풍경에도 절절했다. 거세된 시간 속 사멸의 땅을 뚫고 솟아난 가지 아래에서 똬리를 튼 푸른 뱀을 만나는 일도 어쩌면 있을 법하다.

 그때 나는 ‘너’인 뱀의 유혹을 품고 출발했던 별로 회귀하는 꿈을 예기했을 것이다.

더 이상 머물 수 없는 마지막 여정의 준비물로 챙겨야 할 것은 무엇일까? 나무는 바람의 소리로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을 정하라. 그것이 남겨진 밥을 챙기는 것보다 절실하다”고 속삭여 주었다.

 막막하고 광활한 곳에서 홀로 우뚝하다는 것은 슬프고도 놀라운 일이다.

 우리도 초인간을 꿈꾸며 사막과 같은 삶의 현장에서 ‘꽃의 촉’을 틔우려고 하지 않았던가?

 

 그 우뚝함에 너보다 작은 것은 기죽고 무기력했을 것이다. 이제 네가 있는 철벽의 성에서 다시 노래해야 할 일이 생겼다. 사막 위 창창한 먼 별 아래서는 너도 나도 아득한 반짝임에 불과할 뿐이니…. 도시와 사막이란 비가역적인 공간의 경계에서 이인칭인 ‘너(또 다른 너)’를 감당하는 나는 대체 어떤 행위자의 모습이어야 할까? 그것을 풀 실타래는 ‘탈(脫) 속물’을 선언하며 도시라는 미궁에서 새로운 출구를 찾는 것이어야 한다. 소유란 물신(物神)이 거대한 소멸의 공간에 묻혀버린 곳에서의 비생산적인 응시는 어떤 인간적 소용도 절멸(絶滅)하고 만다.

 나는 그 짤막한 해탈의 곁에 서 보았다. 그 시선은 도시의 삶 속에 칼을 쓰고 차꼬에 옥죄인 가난한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난 누구인가” 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열사(熱沙)에 또 다시 눌어붙어 버렸다.

안타까운 것은 그 해답 찾기로부터 회귀해 도시에 속한 수인(囚人)으로서 대면해야할 말끔한 얼굴의 인칭들과 가역적인 언어를 생산하는 것이다. 그럴 땐 다시 ‘비우는 삶’을 향한 시선을 갈구하며 나는 어디론가 떠날 채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