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言)들이 부유하는 세상이다. 하나의 말은 또 다른 말을 낳고, 서로 부딪치며 흩어진 말들은 다시 새로운 말로 태어난다. 시대가 바뀌고 사회가 변하면서 그 말들이 생명력을 얻고 머물 수 있는 자리는 많아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말들은 길을 잃고 방황 중이다. 얽히고설킨 말들의 실타래, 그것을 풀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타인의 말을, 그 틈새에서 오는 긴장감과 행간의 의미를 읽어내야 하지 않을까. 
각자가 자신만을 향해 안테나를 세우고 있는 요즘, ‘감각적 정론’으로 누군가의 마이크가 되어주고 있는 사람이 있다.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CBS 김현정 앵커(41)*가 그 주인공이다. 최초의 ‘PD 출신 앵커’라는 무게감을 이겨내고 <김현정의 뉴스쇼>(이하 뉴스쇼)를 10년 이상 맡고 있는 그녀는 매일 아침 세상의 크고 작은 창들을 열고 있다. 청취자들과 교감하고 소통하며 함께 성장해온 그녀를 만나기 위해 목동 CBS 사옥을 찾았다. 지난 2014년 가을 하차 후, 10개월의 재충전 시간을 갖고 이듬해 가을 개편으로 복귀한 그녀는 훨씬 더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비우는 시간에서 채우는 시간을 미음완보하는 그녀에게 마이크를 넘겨보았다. 
“그동안 차안대를 쓴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렸지만 이제는 매일 단거리로 소진하지 말고 장거리 경주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예전에는 길거리를 경보했다면, 그 10개월 동안은 길가의 풀과 꽃, 나뭇잎과 사물들도 관찰하면서 채우는 시간이었죠. 평소에는 그냥 허술한 사람인데, 이상하게 일에 있어서는 완벽주의가 좀 있어요. 제 지인들은 방송과 실제의 저를 매치시키지 못해요(웃음). 특종 하나를 놓치면 배가 아플 정도로 아등바등했던 것 같아요. ‘지금 당장만을 생각하는 사람의 미래는 암담하다’라는 말을 새겼을 정도니까요(웃음). 지금은 100이 아닌 80밖에 못하더라도 여유가 생겼고, 에너지도 달라졌어요.”
그녀를 다시 뉴스쇼로 소환한 것은 다름 아닌 청취자들이었다. 힘내라는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콩나물을 박스째 보낸 청취자에서부터 마치 애인이나 친구와 이별하는 것처럼 아쉬워한 청취자, 뉴스쇼를 통해 세상의 모든 소식과 정보들을 얻고 있다는 시각장애인, 단체로 편지를 보낸 고등학생들까지, 그 빈자리에는 그리움이 올올이 새겨진 말들로 가득 찼다. 
“라디오에는 올드 미디어의 정이 있어요. TV처럼 폭발적이진 않아도 은근히 진한 아날로그 감성이 있죠. TV나 지면과는 달리 제가 숨을 내뱉는 순간 반응이 온다는 것도 좋아요. 마치 공연하듯이…. 그래서 앵커들은 연출자들이 느끼지 못하는 끈끈함을 알고 있어요. 연인과 만나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저희는 ‘당사자주의’다 보니 사건의 최전선에 있는 분들부터 섭외해요. 소외되고 사연 있는 당사자들을 인터뷰하면 울컥할 때가 너무 많아요. 한 번은 아들을 떠나보낸 아버지를 인터뷰하는데,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팔뚝을 하도 꼬집어서 시퍼렇게 멍이 들기도 했어요. 그럴 때면 ‘출근길에 운전대를 놓고 펑펑 울고 있습니다’와 같은 문자들이 동시에 쏟아지죠. 보이진 않지만 서로 교감하고 있다는 거예요.”
온에어 불이 들어오면 청취자들과 같은 시간, 서로 다른 공간에서 교감의 주파수를 맞추고 있는 그녀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라디오 PD를 꿈꿔왔다. ‘김희애의 인기가요’를 즐겨듣던 ‘라디오 키드’에서 ‘라디오 PD이자 앵커’가 된 지금도 가장 공적이지만 사적인 라디오라는 매체를 통해 꿈을 꾸고 있다. 
그만큼 음악은 그녀에게 있어서 떼래야 뗄 수 없는 가장 일상적이고 친숙한 소통의 통로이다. “명색이 음악방송 PD 출신이라서 최신곡까지 섭렵하고 있다”라며 호탕하게 웃는 그녀가 요즘 즐겨듣는 노래는 악동뮤지션의 ‘오랜 날 오랜 밤’이라고 한다. 
“각종 음원사이트에서 손쉽게 음악을 고르고 들을 순 있지만, DJ가 내 이름과 사연을 읽어주며 신청곡을 틀어줄 때, 뭔가 통하는 게 있어요. 디지털 매체가 
채워줄 수 없는 인간, 휴머니즘이 있죠. 그것을 저는 숨, 교감이라고 봐요. 학창시절 심야에 공부할 때 라디오를 켜놓으면 혼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어요. 마치 김희애씨와 제가 일대일로 교감하고 있다고 느꼈죠. 물론 전국의 모든 청취자들에게 한 말이지만, 저에게만 들려주는 것 같았어요(웃음).” 
누구에게나 향하고 있는 말이 특별히 자기만을 향해 있다는 행복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것도 청취율로만 설명되지 않는 라디오의 매력이다. 뉴스쇼가 차별화된 색감과 온도로 사랑받은 것도 설득력 있는 목소리에 녹아든 그녀만의 감정과 감성의 결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감성과 이성의 균형을 잘 맞추려고 해요. 저는 판을 까는 고수인 동시에 줄 타는 곡예사니까요. 다만 누구를 비판하는 성격이 아닌데, 늘 비판거리를 찾아야 한다는 게 힘들고 아플 때도 있어요. 늘 긴장감을 갖고 매서운 눈으로 후벼 파는 것이 시사 프로의 숙명이기 때문에 어쩌면 제 본성과 어긋나긴 하죠. 음악방송 PD를 할 때는 개인적인 즐거움이 컸다면 시사 프로는 그것을 넘어 보람으로 가는 것 같아요. 술렁이던 반응이 여론을 만들고 정책을 바꾸고 세상이 움직이며 변하는 것을 보면 사명감이 들더라고요.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끼면서 고통을 상쇄하고 있어요(웃음).”


지치지 않고 ‘꾸준히’ 한다는 것 


새벽 3~4시에 일어나 밤 12시가 다 되어 잠자리에 들기까지 그녀의 하루는 빼곡히 채워져 있다. “일주일이 한 덩어리로 붙어있는 느낌”이라는 말이 그 치열함을 대신한다. 여기에 워킹맘으로서 물리적, 심리적으로 마주하는 현실의 벽은 그녀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한 여자가 자기 일을 온전히 하기 위해서는 다른 한 여자의 희생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저도 친정어머니가 육아를 도와주고 계시거든요.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저출산 문제는 해결되기 힘들 거예요. 마이크를 놓기 전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일조하고 싶어요. 그리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든 사회구성원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하루에 수천 개가 넘게 쏟아지는 청취자들의 문자는 시사평론가 수준을 웃돈다고 한다. 그녀는 이러한 소통의 장에서부터 민주주의의 성장을 체감하고 있다. 청취자와 함께 만들어가기 위해 중립을 찾아 균형 잡힌 건강한 시각에서 사안을 읽어내는 것은 굳은살 박힌 내공의 결과이다. ‘가장 쉬운 말’로 에두르지 않고 누구나 궁금해하는 것을 명쾌하게 묻는 화법은 진짜 마이크가 필요한 사람들, 마이크가 잘 닿지 않는 곳을 향해 있다. 무심코 지나친 것들을 담아 세상에 알리려는 사명감은 이러한 마이크를 통해 실현된다. 
“코가 간지럽다면 빙빙 둘러서 볼을 긁지 말고 바로 코를 긁자는 거예요. 저는 정치인도, 정치학 전문가도 교수도 아니잖아요. 청취자 입장에서 질문을 던지는 게 직설적일 수도 있지만 가장 궁금해하는 이슈를 가장 가까운 당사자에게 묻는 게 중요하죠.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세상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겠더라고요. 사안을 보는 눈도 깊어졌죠. 과거에는 어떤 사건이나 현실에 감정적으로만 접근했다면 지금은 구조적인 원인과 해결책도 고민하고 있어요.”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가장 활발한 소통을 하는 듯 보이지만, 진정한 소통이 단절된 시대에 문득 정현종 시인의 시가 떠오른다. 시원하고 따뜻한 마이크가, 그리고 쓴 소리를 하되 서민들을 살뜰히 보듬어주는 진행자가 되고 싶다는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소통’에 대해 물었다.  
“그저 말이 오간다고 대화는 아니에요. 눈빛만으로도, 그리고 몇 마디 없이 라디오 전파를 타고 흐르는 공기를 통해서도 소통이 될 수 있죠. 서로 상대방이 정말 힘들어하는 것을 이해하고 도와주려고 할 때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 사회는 지금 너무 갈라져 있어요. 내 편 아니면 네 편을 빨리 결정하래요. 양극단이 아닌 중간에서 대화할 수 있는 합리적인 선을 찾아야 해요. 싸우고만 살 순 없잖아요(웃음).” 
날카롭지만 아프지는 않은, 그러나 돌이켜보면 돌직구였던 그녀의 말들은 ‘김현정식 인터뷰’, ‘김현정 스타일’로 건네는 위로이자 희망의 메시지다. 이 사람과 저 사람의 말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해나갈 그녀가 다시, 출발선에 서 있다. 긴 호흡으로 더 멀리 달리기 위해.


* 제5회 여성부 남녀평등방송대상 최우수상(2003), 방송프로듀서연합회 이달의 PD상(2007), 제36회 한국방송대상 개인상부문 앵커상(2009), 제26회 한국PD대상 올해의 PD상(2014) 수상.



글. 사진/ 김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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