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저는 ‘최은희 여기자상’이라는 큰 상을 받았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활약하셨던 故최은희 여기자께서 기탁한 기금을 바탕으로 매해 빛나는 활약을 한 여기자들 가운데 한 명을 선정해서 주는 상인데, 올해의 수상자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후보자들의 면면을 듣고 보니 ‘어떻게 내가 이 상을 받게 되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각 분야에서 여성 기자로서 열심히 뛰고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 이 상을 주신 이유는 남보다 조금 더 ‘안트르프르너십(Entrepreneurship)에 대한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 아닐까, 심사평을 들으며 미루어 짐작해보았습니다. 
‘안트르프르너십’은 대개 ‘기업가정신’ 또는 ‘창업가정신’으로 번역됩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런 줄만 알았습니다. 그래서 ‘안트르프르너(Entrepreneur)’라고 하면 故정주영 회장이나 故이병철 회장처럼 대단한 분들을 떠올렸고, 저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개념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유학을 가서 이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경영학석사(MBA)를 밟으러 미국에 가서 보니 대학원 수업 시간에 급우들이 삼삼오오 팀을 이뤄 프로젝트로 하던 걸 그 학기가 끝나자 바로 창업해버리더군요. 


‘기업가정신’이 꼭 대단한 사람들만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며 누구나 실현 가능하다는 걸 그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꼭 회사, 기업(企業)을 일으키고 경영하는 것만이 아니라 삶에서 자신의 업을 찾아 실현할 수 있는, 즉 ‘업을 일으키는(起業)’ 일을 의미할 수도 있다는 것도요. 사실 기업인(起業人)이라는 말도 근본적으로는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가치와 일자리를 만드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면서 더 중요하게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세상에 아직 없지만 꼭 필요한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기자 일을 대하니 전과는 조금 달리 보였습니다. 전보다 고민도 더 깊게 더 많이 하게 되었죠.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그러면서도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일, 즉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내가 속한 조직, 몸담고 있는 회사의 필요는 어떤가, 시너지가 나는가’ ‘주변에서 이용 가능한 리소스(자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이런 생각들을 통해 스케일이 크지는 않아도 당장 실천 가능한 작은 규모의 일부터 조금씩 실현해나갔습니다. 그리고 당장은 빛이 나지 않아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꾸준히 해나갔습니다. 
시도가 좌절될 때면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용기 내기가 두려울 때면 ‘안 되면 어때?’라는 말을 수없이 되뇌며 일희일비하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려 노력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 지나도 ‘내가 옳다고 믿는 바’, ‘마음을 울리는 일’, ‘마음이 자꾸만 끌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방향을 잃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오다 보니 ‘점’으로 그쳤던 일들이 하나하나 이어지며 ‘궤적’이 되었고, 어떤 방향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비로소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인정을 받게 된 것이 이번 상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래서 잘 했다”라는 의미보다는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정진하라”는 격려의 의미가 더 크겠지요.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얘기가 있습니다. 상이라는 인생의 한 ‘마디’, ‘중간 매듭’이라는 걸 거치면서 절실하게 깨닫게 된 것은 ‘인연의 소중함’입니다. 시상식에서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관심 가져주시고, 격려해주시고, 지혜를 나눠주시고, 가르쳐주시고, 이끌어주시고, 도와주셨던 감사한 분들을 한 자리에서 뵙고 나니 지금의 저는 결코 ‘나 혼자만의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는 깊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삶의 중요한 순간순간마다 큰 영향을 미친 인연들이 저를 여기까지 이끌어주었고, 지금도 이끌어가고 있다는 걸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저도 당시 그분들의 사회적 역할이나 지위를 헤아리고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이 쌓이게 되니 ‘남을 위해 베푼다는 것-그게 마음이든, 지혜든, 물질적인 것이든, 시간이든’의 의미와 가치가 더욱 뼈저리게 다가왔습니다. 감사와 감동으로…. 그러면서 저 또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어렴풋하지만 확실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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