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돈은 월스트리에서 나오지만 뉴욕의 영혼은 낡고 오래된 골목길에서 나오고 있다. 그 오래된 거리, 낡은 건물들 사이에서 개성 있는 예술과 문화가 창조된다고 믿었던 여성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 맨해튼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고속화도로 건설계획(일명 ‘로어 맨해튼 고속도로)에 맨몸으로 맞선 여성이다. 그녀의 헌신적인 노력 덕에 소호와 그리니치의 골목길과 개성 있는 가게들이 살아남았다. 예술과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뉴욕의 문화가 발전할 수 있는 토대도 바로 그 작은 골목길들에서 시작되었다. 그녀를 통해 골목길의 유산이 살아남았고, 뉴욕의 영혼이 사라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제인 제이콥스는 191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태어났다. 그녀가 뉴욕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40년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역 신문 기자로 일하다 뉴욕으로 이주해서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치밀하고 호기심 많은 성격 탓에 주위에는 늘 좋은 사람, 좋은 일자리의 기회들이 많았다. 그러다 우연히 건축 잡지 <아키텍처 포럼>의 부편집장으로 발탁되었고, 그때부터 뉴욕의 생생한 모습에 주목했다. 저서 <미국 대도시의 삶과 죽음 The death and life of the great american cities>(1961)는 도시와 사람, 그 속에서 진정한 행복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탐색한 명저다. 
무명의 그녀를 일약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사건은 뉴욕 맨해튼을 관통하는 도시고속화도로를 
저지하기 위한 싸움이었다. 뉴욕 남쪽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거대한 도시 개발 계획이 지니는 무모하고 비인간적인 모습을 그녀는 일찍부터 간파했다. 대학도 나오지 못한 평범한 저널리스트가 일약 미국 문화를 뒤흔든 스타로 변신하게 된 과정에는 악역도 존재했다. 그는 바로 로버트 모지스(Robert Moses)였다. 1930년부터 60년대까지 고층빌딩의 숲, 격자형으로 된 반듯한 구조, 한마디로 오늘날 뉴욕을 상징하는 맨해튼의 기본 구조를 만들고 구현해낸 사람이 바로 그였다. 어떤 사람은 그를 가리켜 인류 역사 상 ‘가장 많은 물량의 건설사업을 주관했던 인물’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 시기는 속도와의 전쟁이었고 높이의 경쟁 시대였다. 느리면 진다고 믿었고, 위로 오를수록 성공도 가까워진다고 믿었다. 비록 국회의원 같은 요직에 당선된 적은 없지만 대통령도 마음대로 하지 못한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늘 저돌적인 추진력과 잘생긴 외모 덕분에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또한 힘과 권위의 상징이었던 ‘뉴욕시 건축국장’이라는 직함도 지니고 있었다. 그런 그가 대학도 나오지 못한 한 여성에게 뉴욕 맨해튼의 미래를 놓고 벌인 승부에서 완패했다. 앞서 말한 거대한 고속도로를 건설하려는 계획이 바로 그것이었다. 만약 이것이 실현됐다면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그리니치 빌리지, 소호 등은 완전히 초토화되는 무차별적인 ‘속도전’이었다. 
제인 제이콥스에게 작은 골목길은 도시의 생명을 담보하는 살아 있는 세포들이었다. 그녀가 그와 한판 승부를 벌이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여기에 있다. 인간의 몸이 세포를 죽이고는 생존할 수 없듯, 도시의 실핏줄 같은 골목길을 죽이고서 도시가 생명력을 유지할 수 없을 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낡고 오래된 것에서 창조가 시작된다는 믿음. 시민들을 만나 뉴욕의 미래를 위해 어떤 선택이 옳은가를 물었다. 새것에서만 창조가 이뤄진다는 근거 없는 모더니즘적인 입장들이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그녀는 활기를 잃어버린 삭막한 거리에서 아이들이 무얼 추억하며 살아갈 것인가를 따졌다. 
그렇게 시민들과 만났고 뉴욕시 도시건축 계획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단지 거리에 나가 피켓을 들고 시위 몇 번 했다고 이뤄진 결과가 아니었다. 철저한 리서치를 통해 인간의 미래를 닮은 뉴욕의 미래에 관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처음에는 그녀가 도시고속도로 개발 계획에 반대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도 그녀의 주장에 귀를 기울였다. 경쟁과 효율성만이 중심이 되는 뉴욕, 산업화의 물살에 밀려 자신들의 오래된 단골 가게, 카페, 서점 등이 밀려난다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직감할 수 있었다. 그것은 삶의 정체성이 뿌리 채 흔들리는 일이었다. 그녀의 반대 여론에 시민들이 동참하기 시작하면서 그 계획은 전면 취소되기에 이른다. 
결과는 놀라웠다. 세계 최고의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뉴욕에는 돈과 예술, 문화가 넘쳐나고 있다. 뉴욕의 명성이 고층빌딩만이 아니라 걷기 편하고 행복한 보행자 천국의 길거리들에서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이 있을까. 적어도 오래된 골목길과 낡은 가게들 속에 숨어있는 문화와 창조적 본성을 발견한 것은 그녀가 처음이었다. 실제로 맨해튼 개발 계획에 관한 그녀와 로버트 모지스의 논쟁은 현대 도시들의 정체성에 대한 논쟁이기도 했다. 심지어 그녀는 르 꼬르뷔지에 같은 세계적인 건축가들과도 대립각을 세웠다. 
명성보다 중요한 것은 도시인들의 삶이 반영된 도시 건축이 필요하다는 생각. 그 삶의 중심에 작은 골목길들이 존재한다는 믿음. 오늘날 세계적인 도시들에는 그녀의 유산을 믿고 따르려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자본과 재개발에 밀려 사라지고 있는 우리들의 골목길들을 바라보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어쩌면 그것이 ‘100명의 위대한 도시 사상가’ 중 그녀가 늘 1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