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디자인이란 어떤 것인가요?” 이 한마디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한창 ‘드링클립’이라는 제품이 잘나가서 무역 전시로 바이어들을 상대하고 있던 때였다. 한번 생각해 보자.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지. ‘왜 전통을 디자인하는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다닐 때면 꼭 하는 질문이다. 그런데 ‘디자인’은 ‘정치’라는 단어처럼 알 것 같으면서도 정작 본연의 뜻은 잘 알지 못한다. 디자인도 어렵고, 거기에 한국 디자인이라고 하면 더 어렵게 여겨질 수밖에.
질문을 다시 던져본다. “북유럽 디자인은 어떤 것인가요?”라고. 쉽게는 이케아(IKEA) 가구에서부터 실용적이고 똑똑한 디자인, 나무의 따스한 질감이 특징인 친환경 디자인, 공공시설과 복지의 디자인이 잘 된 나라, 뱅 앤 올룹슨(Bang & Olufsen)의 시간을 초월하여 모던한, 볼보의 실용적인 디자인, 소위 힙하다고 하는 많은 것들이 떠오르지 않는가.
우리가 한국 디자인에 대해 모르는 이유는 첫째, 한국 디자인(에 담긴)을 누리는 사람이 많지 않거나, 둘째, 더 들어가면 그것을 누릴 미디어(건축, 패션, 전자제품, 자동차 등)를 선택할 폭이 좁거나 느낌이 올 만큼 발전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셋째, 근본적으로는 한국의 얼과 정신이 담긴 콘텐츠가 부재한다고 할 수 있다.
맨 위의 질문을 들었을 때가 2006년이었다. 2008년에 ‘21세기 조족등’, 2010년에 볏짚 의자인 ‘made of chair’를 만들었는데, 그때는 모두가 나에게 “뭐 해?”라고 할 정도로 한국의 전통에 접근하는 것은 괴짜 같은 일이었다. 물론 서울디자인올림픽(이후 서울디자인한마당으로 명칭이 바뀜)에서 주제관을 맡으신 최정심 교수님께서는 ‘오래된 미래’라는 주제로 옛 공예품을 re-design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셨을 정도로 선구자적인 분도 계셨지만.
그동안 우리는 온고지신(溫故知新)에 무지했고, 서구의 선진 문물이라는 환상과 시류에 밀려 있었다. 당시 한국에서 디자이너로 잘 나가려면 대기업에 취직하거나 해외로 나가서 디자인 컨설턴시에서 일하거나, 해외 자동차나 가전 기업으로 취직하여 높은 자리에 올라가 한국의 이름을 알리는 디자이너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또한 그러한 꿈을 꿨었다. 이러한 경향에서 젊은 산업디자이너가, 특히 대기업 입사 연수를 1등으로 마쳐 주목받았던 휴대폰 디자이너의 이력으로 봤을 때, 볏짚, 전통, 공예, 한지와 단청은 너무도 생뚱맞아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8년 전, 이런 내 결정에 영향을 준 또 하나의 계기가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에 출장 차 업체를 방문했을 때였다. 당시 디자인 경영팀이었던 나는 기존의 거래 파트너와 잠재 파트너의 역량을 검증하러 실사를 나갔었다. 이때 같은 분야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던 디자인 회사들을 목도하면서 나는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인 디자이너로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한국인으로서 한국에 대해 모르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엔 내가 하는 디자인이 곧 한국 디자인이고, 한국인을 비롯한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즉 향유할 수 있는 디자인은 전통 공예와 디자인을 잇는 다리를 만듦으로써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Contemporary Design & Craft’ 브랜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브랜드 철학을 세웠다. 전할 전(傳), 반드시 한국의 얼을 기술적 혹은 의미로서 그 메시지를 전해야 하고, 흐를 류(流), 이것이 현대에도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로서 충분해야 하며, 새로울 신(新), 21세기 생활방식에 적합하도록 진화된 형태로 제시되어야 한다. 얼마나 전통 쪽으로 갈 것인지, 얼마나 새롭게 접근할 것인지에 대한 저울질이 가장 큰 고민이었기에 한자 이름은 아름다울 미(美), 저울 추(錘)를 써서, ‘아름다운 저울’이라는 의미를 만들었다(영문 이름은 meeets이다).
이후 우연인지 필연인지 한지장인을 만나 한지를 연구하여 그것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한지 바스켓 시리즈’*가 탄생했고, 버려지게 될 장판지를 업사이클링(up-cycling)하여 리빙 용품, 패션잡화, 사무용 액세서리 등으로 디자인한 ‘jpj 시리즈’가 탄생했다. 그리고 한국인 최초로, 한지장인과 함께 런던의 victoria & Albert Museum에서 ‘외발뜨기’를 시연하며 한지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얘기했다.
이제 주어진 과제는 의미를 벗어나 실제로, 숫자로 보여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향유하여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것이다. 작년 5월, 출장 때 비트라 뮤지엄에 들렀다. 언젠가 우리도 디자이너들의 끊임없는 시도로 탄생한 많은 디자인 제품으로 이러한 박물관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디자이너, 공예가, 장인들이 지금처럼 포기하지 않고, 다양한 디자인콘텐츠를 누릴 준비가 된 많은 사람들이 있다면 그 시기는 조금 더 빨라질 거라는 상상을 해본다. 

* kcdf 원장상, 중학교 교과서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