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을 하라.” -앤디 워홀


‘차리다’. 아내인 푸드스타일리스트 김은아를 중심으로 평균 5명의 푸드스타일리스트 혹은 지망생, 그리고 브랜드 디렉터인 나까지 10명이 채 되지 않는 푸드스타일링 그룹.
흔히 푸드스타일링이라고 하면 음식을 단순히 예쁘게 꾸미는 일 정도이겠거니 생각하기 쉽지만, 차리다가 하는 일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방송, 광고, 매거진 촬영은 기본이고, 젊은 아티스트들과 공동 작업으로 도마나 그릇을 디자인, 판매하는 다이닝스타일 브랜드 ‘차리다 키친’을 런칭했는가 하면, 부티크 에어비앤비(airbnb)를 표방한 ‘차리다 호텔’을 오픈하기도 했다. 보통 사람들의 기대를 배신하는 것, 그럼으로써 우리조차도 우리의 다음 행보를 예상치 못하게 하는 것이 차리다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이미지가 됐다.
아내와 나는 2010년 2월에 처음 만났다. 난 첫눈에 그녀와 결혼하게 될 것을 직감했지만, 푸드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은 무척 생소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들어보는 직업이라 “그래서 어떤 일을 하시는 거예요?”라고 몇 번이나 되물었던 기억이 난다.
2011년 결혼한 이후 우리의 삶은 더욱 가파르게 흘러갔다. 1년에 하나씩 새로운 공간을 오픈하거나 브랜드를 런칭하자 주변 사람들이 오히려 “너희 이래도 괜찮니?”라고 걱정할 정도였다. 얼마간은 이해시키려고 노력하다가 이내 그만뒀다.
그중에서도 가장 결정적으로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 일은 2013년
3월의 피렌체행이었다. “지금부터 20년 뒤 잘못해서 후회하는 일보다 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일이 더 많을 겁니다. 그러니 안전한 항구에서 벗어나세요. 멀리 항해하세요”라고 했던 앙드레 지드의 말처럼, 지금 떠나지 않으면 두 번 다시 이 기회가 돌아오지 않을 걸 이번에도 직감적으로 알았고, 나는 더 이상 망설임 없이 나이 서른다섯에 네이버라는 안정된 직장을 그만뒀다. 모든 게 새로운 시작, 완전한 리셋이었다.

피렌체에서는 하루하루가 환희와 흥분의 연속이었다. 넘쳐나는 키안티 와인, 이탈리아 감성의 디자인, 그리고 연인들의 성지 두오모까지, 지금 돌이켜봐도 어느 것 하나 부족하거나 넘치지 않았다.
특히 음식이 기대 이상이었다. 일부러 세련된 식당을 찾거나 여행자들의 블로그를 뒤지지 않아도, 발길에 이끌려 문을 열고 들어간 거의 모든 식당의 메뉴 대부분이 우리 눈을 휘둥그렇게 만들었다. 시장에서 갓 사 온 싱싱한 아스파라거스를 굽고 마트에서 구입한 올리브 오일을 거칠게 두르기만 해도 감칠맛이 돌았다. 스페인을 상징하는 단어가 ‘열정’이라면 이탈리아는 ‘맛’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피렌체 중앙시장 귀퉁이에서 우연히 먹게 된 칼라마리(한치) 튀김. 깨끗한 기름에 튀겨내어 레몬즙을 뿌리기만 했을 뿐인 데도, 그런 풍미를 내는 맛의 정체가 궁금했다. 몇 번이나 똑같이 만들어보려고 시도해봤는데 재현해내지 못했다. 중앙시장의 떠들썩한 분위기와 인상 좋은 주인아저씨 두 분이 한국 커플이라고 호감을 보이며 건네주던 싸구려 화이트 와인의 복숭아 향이 더해져서였던 게 아니었을까, 어렴풋하게 짐작만 할 뿐.

주위 사람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했던 피렌체행 이후 우리의 삶은 극적으로 변했다. 결국 나는 차리다의 브랜드 디렉터로 합류하며 아내와 함께 일하게 됐고, 차리다는 불안함 속에서도 착실히 성장을 계속해가며 보통 사람들에게도 ‘이해받는’ 브랜드로 커가고 있다. 이런 안정이 익숙지 않은 우리는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스스로 묻곤 한다.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차리다의 다음 도전은 또 무엇일까? 올해 10월, 3년 만에 다시 방문할 피렌체에서 그 답을 다시 한 번 찾아볼 생각이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조우한 칼라마리의 행운이 이번에도 우리와 함께하길 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