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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공연

구분  문화/예술/공연
정간물명   월간에세이
게재월   2016년 06월
제목  <해녀의 춤> 꿈꾸던 푸른 눈의 셀린 - 이 한 장의 사진 / 고성미, 사진가


“저는 내일 떠나요.”
2015년 초여름, 셀린을 길에서 만나 소라축제에서 찍은 사진을 건네줄 때, 사진을 받아들고 활짝 웃던 그녀의 미소를 기억한다. 그리고 다음 날 우도를 떠난다고 말하던 그녀의 슬픈 표정도 기억한다. 오봉리에서 중앙동으로 이어진 큰길가, 마주 선 우리 두 사람, 강한 햇살. 그것은 우리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던 순간이었다. 나의 소심한 성격 탓에 근 두 달여 그녀 주위를 맴돌며 촬영을 했지만, 스스럼없이 다가가 사진을 전해주고 인사를 나눈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그만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
얼마 전인 4월 23일 우도에서 소라축제가 열리던 날,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했고 간간이 내리던 비는 셀린의 공연 시간이 다가오자 폭우로 변했다. 무대 앞에 마련된 간이 의자에 앉아 공연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모두 비를 피해 행사용 천막으로 들어가 버렸다. 때는 이미 4월이었지만 겨울이 아직 다 가시지 않은 듯한 추운 날씨여서 사람들은 두꺼운 점퍼를 입고 있었고, 말할 때 입김이 뿜어 나올 정도였다.
해녀의 옛 잠수복인 물소중이로 갈아입던 셀린은 이미 추위로 입술이 파랗게 변해 있었고 주위 사람들은 공연을 취소하자 하였으나 그녀의 반응은 단호했다. 차가운 빗줄기를 뚫고 조용히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테왁과 망사리를 들고 탈의장을 나서던 순간부터 그녀는 이미 추위를 잊고 온몸은 춤사위로 가득했다.

공연이 당연히 무대 위에서 시작되리라던 예상이 빗나가면서 나는 그녀의 동선을 따라 바삐 움직여야 했다. 때로는 느리고 때로는 빠른 춤사위로 그녀가 계단에 올라서는 순간 저 멀리 바다 건너 종달산을 배경으로 소라축제를 알리는 플래카드의 줄이 사선으로 비껴나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녀의 오른쪽 동선을 따라가며 촬영을 하던 나는 냅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뛰어갔다.
그리고 그녀가 머리에 올린 작은 돌과 사선으로 구도를 맞추고 셔터를 눌렀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등 뒤에 있던 나의 존재와 촬영 의도를 알 리 없는 그녀는 마치 나의 렌즈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한순간 완벽한 포즈를 취해준 것이다. 게다가 나중에 사진을 다운로드하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바로 그때 잠시 비도 그쳤었다.
그녀의 춤사위는 굳이 이름 붙이지 않아도 해녀 그 자체였다. 비가 온다고 해서 해녀가 물질을 포기하지 않듯, 그녀의 몸짓 하나, 손짓 하나에서 강하고 모질게 살아왔던 해녀의 모습이 되살아났다. 빗줄기는 더욱더 거세어지고 그녀의 공연도 클라이맥스로 치달았다.
그녀는 무대를 박차고 나왔다. 비어 있는 하얀 관객용 의자를 지나 행사용으로 마련한 파란색 풀장으로 뛰어들며 해녀의 화신이 되었고 음악은 폭우와 함께 어우러졌다. 사람들은 모두 천막 안에 들어가 있었고 폭우 속에는 춤을 추는 셀린과 그녀의 동선을 좇으며 촬영하는 나뿐이었다. 그 순간 그녀와 그녀의 춤사위를 카메라에 담는 나는 같은 공간, 다른 세계에 있었다. 우리는 혼연일체였고 우리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가 존재했으며 서로 소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여운은 아주 길고도 오랫동안 내 기억의 궁전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올해 5월 9일 그녀가 대만 공연 중 급성 폐지혈증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듣고 나는 우도의 분향소에 올릴 영정 사진을 찾기 위해 셀린의 폴더를 열었다. 그리고 이 한 장의 사진을 마주했다. “저는 내일 떠나요”라는 말을 전하던 그녀의 뒷모습이 영원한 이별을 암시한 것 같아 마음이 저려왔다. 제주를 사랑했고 해녀를 사랑했던, 그래서 그 먼 제주의 우도에 와 1년여를 머물던 푸른 눈의 셀린. <해녀의 춤>을 완성하고자 온 삶을 내던진 프랑스의 현대 무용수 셀린 바케(Celine Bacque, 1979년 3월 18일생)에게 이 한 장의 사진을 바친다.





           [출처] 월간에세이 (2016-06)
           본 콘텐츠는 발행사에서 제공하였으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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