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은영

 

‘학’으로 익숙한 두루미는 세계 18종, 그 가운데 7종이 한반도를 찾아온다. 두루미, 재두루미, 흑두루미, 검은목두루미, 시베리아흰두루미, 캐나다두루미, 쇠두루미다. 우리가 ‘두루미’로 아는 단정학은 흰 몸체, 검은 날개끝, 빨간 정수리를 가졌다. 동아시아 지역 두루미 8종 가운데 가장 크고 무게가 많이 나간다. 남한에선 ‘두루미’, 북한에선 ‘흰두루미’라 부른다. 미국 흰두루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희귀하다. 세계자연보전연맹 적색목록과 아시아 멸종위기종 도서에 올라있고,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네 나라 모두에서 멸종위기종이다.

 

두루미 번식지는 러시아 동북지역 습지대와 아무르강 평원, 중국 북부 해안 습지대로 알려져 있다. 월동지는 두루미종에 따라 다르다. 두루미는 파주, 연천, 철원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지역, 재두루미는 한강 하구와 철원, 흑두루미는 천수만과 순천만을 찾는다. 북한에선 황해도 서해안 지역과 함경, 평안도 동해안 지역이 두루미 도래지로 알려져 있다. 1994년, 두루미 이동경로가 인공위성 추적 장치로 처음 밝혀졌다. 두루미는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지대인 한카호자연보호구역을 떠나 300킬로미터 남서쪽으로 이동해 중국, 러시아, 북한의 국경지대 두만강 하구를 지났다.

 

북한 동해안을 따라 몇 지역 머물다 평야와 리아스식해안이 펼쳐진 함경남도 금야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겨울을 나거나 다시 30킬로미터 남쪽, 안변을 지나 비무장지대 철원에 도착했다. 그 뒤에도 두루미는 북한 금야와 안변, 남한 철원을 오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루미단정학는 원래 한반도 전역에서 월동했다고 이기섭 박사는 말한다.“서해안 습지를 따라 남쪽으로, 동해안 권은 철원에서 낙동강을 따라 내려갔어요. 두루미 서식처가 개발되고 매립되면서 길이 끊어졌고, 황해도 강령에서 한강 하구, 전남 진도까지 수백 마리 두루미 월동지가 한반도에서 사라졌어요. 남은 곳은 철원밖에 없는 거죠. 한반도 모든 두루미들이 철원으로 집중되고 있어요. ”

 

가족군으로 생활하는 두루미는 가족마다 영역이 있다. 죽기 전까지도 월동지의 제 영역으로 자식을 데려오고, 심지어 되물림하기도 한다. 서식지가 망가지면서 원래 영역을 잃어버린 20~30마리가 모여 ‘피난두루미들’이 된다. 식물성과 동물성 먹이를 먹는 두루미에겐 논과 습지가 함께 있어야 한다. 전에는 논에 둠벙도 많고 자연 재방과 수로에 풀과 미꾸라지도 많았다. 지금은 시멘트수로에 평탄하게 만든 제방에 제초제까지 뿌린다. 거기에 먼저 날아오는 수천마리 기러기떼가 지나가면 논엔 벼 한 톨도 남지 않는다.

 

그렇지만 단정학은 남쪽으로 내려갈 수가 없다. 남한의 넓은 농경지마다 낮밤 차가 다니고, 수없는 전봇대, 전깃줄은 그물 같다. 잠자리엔 수심이 깊은 보가, 옆엔 사람들이 밤낮없이 자전거 타고 돌아다닌다. 그나마 철원 비무장지대에 가면 간섭 없이 잠은 잘 수가 있다. “영하 20~25도 떨어질 때 조사해보니, 두루미들이 눈 녹을 때까지 며칠을 굶고 움츠리고 있어요. 더 이상 갈 곳이 없거든요.”

 

 

두루미 소리 끊긴 도래지는 남과 북이 마찬가지. 북한 안변에선 1984년 220마리, 1988년 140마리, 1990년 70마리, 1997년 한 마리 두루미도 오지 않았다. 1984년 220마리였던 두루미가 급격히 줄다 1990년대 후반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이다. 안변 두루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함경남도 원산 아래 동북지방, 안변은 남대천이 흐르는 충적평야 ‘안변벌’이 예부터 주요 쌀 산지였다. 동해안 금야와 함께 북한식 표현으로 ‘두루미살이터’다.

 

안변 두루미는 안변평야를 먹이터로 남대천 여울을 잠자리로 이용하며 겨울을 났다. 1989년 소련이 무너지며 북한에 화학비료 원조도 끊겼다. 화학비료에 의지한 농사로 땅은 피폐해졌고 생산량도 떨어지던 중, ‘대기근’이 북한을 휩쓸었다. 수백만 사람이 굶어죽는 그즈음 상황에서 논밭에 낙곡이 남을 리 없었다. 월동지 안변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온 이른바 ‘탈북두루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철원에 두루미 개체수가 급증한 시기와도 겹친다.

 

1997년 남북한 두루미를 연구해온 도쿄 조선대 정종렬 교수와 유학 중이던 한상훈 박사가 협력해 ‘남북한 두루미 월동지 조사’를 시작했다. 북한 박우일 박사도 참여했다. 이 같은 사실이 한반도 두루미에 관심을 가져온 나라안밖 조류전문가들에게 알려졌다. 이기섭 박사는 “조류학자 아치볼드 박사와국제두루미재단에서 한반도 두루미 서식지가 없어지는 것과 특히 북한의 두루미 서식지가 사라져버린 것을 매우 안타까워했다”고 전한다. 국제두루미재단, 국제조류보호협회, 디엠지포럼, 한국에선 한상훈 박사, 고 김수일 교수가 참여했고, 남한 조류전문가들도 조사에 함께했다. 북한 박우일 박사가 북한 두루미 모니터링 결과를 공유했다. 일본 정종렬 교수는 북한 두루미 서식지 실태를 알리고 남북한 조류전문가를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 두루미 번식지가 있는 중국 임업국 두루미 연구자도 도왔다.

 

이렇게 해서 2006년 사라지는 한반도 두루미를 지키기 위한 첫 모임이 중국에서 열렸다. 북한 박우일 박사는 ‘두루미를 살리는 일은 농민을 살리는 일이다, 먼저 농민을 살리는 일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여러 차례 논의 끝에2008년‘안변 두루미 서식지 복원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우선 화학농업을 유기농으로 대체하는 목표를 세웠다. 퇴비로 땅을 살려 식량생산을 늘리고 식량공급원을 다양화시켜 북한주민의 삶을 개선시킨다. 그 다음 농부들이 두루미 서식지를 지키도록 돕자는 것이었다. 이를 위한 기금은 북한 정부가 아닌 민간단체를 통해 북한 프로젝트 책임자 박우일 박사에게 전달되었다. 기금이 직접 프로젝트에 쓰이게 하기 위해서였다. 국제조류보호협회를 통해 첫 기금 2만5천 달러가 지원됐다. 도정 과정에서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쌀도정기, 운반하기 위한 차량을 구입해 제공했다.

 

2010년부턴 북한 지원사업으로 유기농교육을 해오던 독일 한스자이델 재단이 참여했다. 유기농 지도자 양성과정을 열고, 북한 최초 유기농 교재를 펴내고 중국 유기농장 연수도 진행했다. 가장 중요한 유기질 비료를 만들기 위해 가축을 기르고 생산시설을 세웠다. 질소고정 작물, 헤어리베치녹비작물, 청풍보라를 심어 땅을 살리고, 계단식 언덕엔 과실수를 심어 침식을 줄이면서 식량공급원도 얻었다. 버드나무를 심어 나무를 죽이지 않아도 땔감을 얻게 했다. 유기농 시범 농장에서 이전 러시아산 화학비료농업 수확량의 90퍼센트 넘는 결실을 맺었다. 그 뒤 안변의 다른 지역에 유기농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5 년 동안 북한 전역에서 온 5만 명 넘는 북한주민이 유기농교육을 받았다.

 

두루미를 위한 계획들도 실행에 옮겼다. 먹이용으로 율무와 기름콩을 재배했다. 북한 정부는 안변 63헥타르 지역을 두루미 먹이터인 논을 보호하는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물, 초지, 볏단 구역을 나누고 유인용으로 두루미 조형물도 세우고, 중국에서 기증받은 두루미 한 쌍을 키웠다. 안변 어린이들은 두루미에게 메뚜기를 잡아다주었다고 한다. <흰두루미보호안내서>도 만들어 교육했다.

 

 

마침내 2009년 11월 12~13일 흰두루미가 비산협동농장 논밭에 내려앉았다. 20년 만이었다. 2014년 가을엔 주민과 가축으로부터 안전한 두루미 잠자리를 위해 보호구역 주변에 울타리가 쳐졌다. 지난 4년 두루미들은 며칠에서 몇 주까지 42회 안변에서 머물다 떠났다.

 

북한엔 조류보호구역 13곳, 철새보호구역 24곳(2014년 기준)이 있다. 한스 자이델 제단 베른하르트 젤리거 박사는 북한이 남한보다 방해요소는 적다며 두루미 보호를 위해 남한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강조한다. “사람 위주 개발을 자제하고, 개발을 하더라도 환경친화적으로 해야 합니다. 철원 샘통 지역도 개발로 두루미가 없어졌어요. 민통선지역에서 두루미 보호에 필요한 지역은 정확한 보호구역으로 정하는 대책이 필요합니다. 독일 바이에른 지역처럼 철원에서도 인삼밭 대신 두루미를 위해 쌀농사만 하도록 계약하고 그 수익을 보전해주는 방법도 필요합니다.”

 

이기섭 박사도 10년 전과 비교해 급격히 늘어나는 비닐하우스로 철원이 덮이지 않을까 걱정이다. 철원군이 두루미를 ‘관광상품’으로 이용할 뿐, 보호정책을 적극 펴지 않는 것도 두루미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박근혜 정부의‘디엠지평화생태공원’의 핵심은 ‘물류 단지’라고 비판했다. ‘빨리빨리’, ‘일단 추진’ ‘여기까지만’ 개발이 새만금과 도라산을 만들었고, 철원도 그럴 것이다.

 

“지금 도라산역과 주변 공원들은 두루미가 먹고 놀던 먹이터였어요, 개성공단으로 가는 디엠지 지역은 두루미의 잠자리였던 곳입니다. 오랫동안 두루미가 겨울을 나던 핵심지역이었습니다. 그곳을 쉽게 밀어버리고 만든 것 아닙니까?” 그래서 ‘북한 안변 두루미 서식지 복원’프로젝트가 가진 의미는 더 크다.“철원마저 망가지면 두루미들은 한반도에서 없어지는 겁니다. 어딘가 두루미가 겨울나기를 대체할 희망이 있는 곳, 그게 안변인 거죠. 두루미가 안변이라도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철원이 망가졌을 때 몇 마리라도 남아있게 하면, 한반도에서 멸종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