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남쪽 아름다운 찰스 강.

 강변 벤치에 앉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던 ‘호세 보르헤스’라는 이름의 노인은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을 기억해본다: 물이 변하고, 사람이 변하기에, 그 누구도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고.

순간 옆자리에 한 젊은이가 앉는다.

누구였을까?

놀랍게도 노인은 그가 다름 아닌 50년 전 자신이란 걸 발견한다.

젊은이의 미래를 불쌍하게 생각한 노인은 알려준다(우리는 언제나 우리 자신을 가장 불쌍히 여기지 않던가?), 자신의 과거이자 젊은이의 미래를 말이다. 많은 책들을 쓸 거라고, 어머니는 건강하게 오래 사시겠지만, 아버지는 곧 돌아가실 거라고. 하지만 이제 겨우 20살 된 젊은 ‘보르헤스’는 노인이 되어버린 자신을 믿지 않는다. 이건 꿈일 거라고. 스위스 제네바에 사는 자신은 단지 노인이 되어 미국 보스턴 강변에 앉아있는 자신을 꿈꾸고 있을 뿐이라고.

물론 인생은 꿈이다.

하지만 만약 둘이 되어버린 자신이 하나의 꿈을 꾼다면?

그건 누구의 꿈일까?

아르헨티나 작가 호세 보르헤스(Jorge Borges)의 단편 <타인>의 내용이다.

그렇다.

“판타 레이”(Panta rhei, 만물은 변한다)라고 주장했던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대로 세상에 같은 것은 없다. 하지만 잠깐! 아무리 만물이 변한다고 해도 변화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고정된 무엇이 존재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우리는 믿는다: 이 세상 모든 게 변하더라도, ‘나’라는 자아만은 변하지 않는다고. ‘내’가 지속적으로 존재하기에 세상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고.

‘나’는 내 기억의 합집합이다.

기억이 존재하기에, 내가 존재할 수 있고, 어제 저녁 ‘나’를 기억하기에, 오늘 아침 ‘나’는 어제의 ‘나’와 같은 인물이란 걸 인식한다. 우리가 치매를 두려워하는 건, 기억을 잃는 순간 ‘나’라는 존재가 더 이상 지금 이순간의 내가 아닐 거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나’라는 존재를 매일 새로 발견하게 된다면?

1926년부터 2008년까지 살았던 헨리 몰래슨(Henry Gustav Molaison, HM이라고 불림)이라는 사람은 간질을 앓기는 했지만 그 외에는 그저 한 평범한 젊은이였다. 27살 되던 해, 그는 의사의 조언에 따라 간질을 일으키는 뇌 부위를 제거하기로 결심한다. 제거된 부위엔‘해마’라는 영역도 포함하고 있었다. 당시 아무도 몰랐던 사실은 해마 없는 뇌는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점이다.

수술 후 HM은 수술 전 일들은 기억하지만 새로운 기억은 만들 수 없었다. 2008년 사망할 때까지 HM은 매일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기억하지 못했고, 왜 병원에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의사의 설명을 듣곤 슬퍼했지만, 금방 다시 잊어버리고 또다시 물었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고. HM에게 ‘나’라는 존재의 의미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 내지 못해 5분마다 자신의 삶을 새로 인식해야 했던 HM에겐 어쩌면 ‘나’라는 단어 그 자체가 무의미했을 수도 있다.

우리는 아침마다 확신한다. 오늘 아침 잠에서 깨어난 ‘나’는 어제 저녁 잠든 ‘나’와 같은 인물이라고. 인간의 삶은 매일 아침 어젯밤 ‘나’와 오늘 아침 ‘나’의 만남으로 시작된다고. 하지만 적어도 우리의 몸은 언제나 변하고 있다. 몸은 수십조의 세포들로 구성되어있다. 세포들은 주기적으로 만들어지고, 분열하고, 죽는다. 허파세포는 2~3주마다, 창자세포들은 2~3일마다 교환된다. 피부 세포들은 시간당 3~4만 개씩 죽어, 우리가 잠들어 있는 동안 수십만 개의 세포들이 몸에서 떨어져나간다. 창문을 열어놓지 않았는데도 바닥에 하얗게 쌓인 ‘먼지’ 대부분이 바로 얼마 전까지 ‘영원히’ 대리석 같은 피부로 만들기 위해 씻고, 바르던 ‘나’의 한 부분 이였던 것이다.

우리의 몸은 매일 조금씩 변신하고 있다.

그런대도 변하지 않는 듯한 ‘나’라는 정체성의 근거는 과연 무엇일까? 아니면 어쩌면 우리 몸속 세포들 같이 ‘나’라는 존재 역시 매일 조금씩 만들어지고, 변하고,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제 잠든 ‘나’는 더 이상 아침에 깨어난 ‘내’가 아니기에, 어쩌면 우리는 매일 아침 새로운 ‘나’와 새로운 만남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독일 다름슈타트공과대학교 학사를 거쳐 막스-플랑크뇌과학연구소(Max-Planck Institut für Hirnforschung)에서 박사학위를, 미국 MIT에서 박사 후 과정을 밟음. 저서로는 <내 머릿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現 KAIST 전기및전자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