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편집디자인대행사, ‘디자인수다’를 운영한 지 꼭 십 년이다. 기획자 6년 차에 다니던 회사가 망하는 바람에 떠밀리다시피 창업을 했다. 지인의 회사 한 귀퉁이를 빌려 사무실을 꾸렸다. 부족한 경험만큼 자주 두려움에 시달렸다. 결정하고 책임져야 할 일이 많아질수록 외로워졌다. 그러한 순간을 극복하고 점점 나아질 수 있었던 것은 함께해온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잊지 않고 찾아오는 고비의 순간마다 할 수 있다고, 잘될 거라고 말해준 나의 동료들. 그들과 즐거운 일을 하고 싶었다. 더 잘할 수 있고 보다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기왕이면 그 일이 우리의 밥벌이가 되길 바라기도 했다. 그래서 자체적으로 기획하고 출판하는 브랜드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정체성이 담긴 이름을 고민했다. 가장 먼저 ‘달’을 떠올렸다. 나는 달 보기를 좋아한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자주 나가던 밤마실 기억 덕분이다. 온통 캄캄할 줄만 알았던 밤하늘에 선명하게 떠 있던 하얀 구름, 밤하늘을 가르며 번쩍이던 마른벼락, 촘촘히 박혀있던 별들, 그리고 늘 거기 있던 달. 서늘한 바람을 느끼며 할아버지 손을 잡고 올려다보던 밤하늘의 풍경은 지금도 선연하다.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밤하늘의 달.

하지만 이미 유명한 출판사의 이름이기도 한 그 외음절 단어를 쓸 수는 없었다. 고민에 빠져 있던 어느 날 출근길에서 달을 만났다. 볕이 유난해지기 전 희미한 자국처럼 남은 그 달을 차를 세우고 한참 바라보았다. ‘그래. 달은 늘 떠 있지 잘 보이지 않는 것뿐이지’ 늘 그리운 누군가의 선한 얼굴 같았다. 없을 때도 느껴지는 그 사람의 자취 같았다. 은은하고 선선한 그 기운이 아침의 선물처럼 느껴져 도통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침달’이 되었다.

아침달 이름으로 만든 첫 책은 시 잡지 <일상시화>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시라니, 걱정도 많았지만, 손해를 보는 것쯤은 감내할 자신이 있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시로 시작하자. 시보다 아침달과 어울리는 것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동료들도 모두 찬성이었다. <일상시화>에 ‘우리가 시간을 기록하는 방식’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의 삶 속에 시를 담아보자는 시도였다. 이미 시와 닮아 있는 것, 또 우리들의 크고 작은 개입으로 점점 더 시화(詩化)되는 순간을 갖자는 의미기도 하다. 오래 들여다보고 머무를 때 마침내 발견하게 되는 순간들.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가 시화(詩話)할 수 있는 것들이 더욱 많아진다면 그보다 좋을 수 있을까.

기존에 해오던 일과 병행하는 혹독한 일정이었지만, <일상시화>를 만들면서 우리는 즐거웠다. 언제 만든 것인지도 기억 못 할 만큼 한 달에도 몇 권씩 대행 제작해 내는 우리가 <일상시화>를 만드는 데는 꼬박 일 년이 걸렸다. 책이 나왔던 한여름의 그 날은 무척 기뻤다. 곧 다음호를 내겠다고 약속하고도 일 년이 넘도록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 기억은 ‘아침달’처럼 우리 곁에 있다. 그 후로 아침달의 이름으로 소월, 영랑, 동주, 백석의 시구로 <미인미가美人美歌> 문구 세트를 만들고, 원고지를 모티프로 한 엽서와 카드를 출시했다. 첫 단행본인 시인 유희경의 <당신의 자리-나무로 자라는 방법>과 <한편 시집>을 발행했다. 앞으로도 ‘아침달무늬 시인선’을 연이어 선보일 예정이다.

사람이 만든 물건은 만든 사람의 ‘마음꼴’을 닮기 마련이다. 아침달의 디자인은 결국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것을 잊지 않고, 화려하고 주목받는 것이 아니더라도 묵묵히 우리만의 선한 색을 이어가기로 한다. 바람이 있다면 마음속에 시를 품고 살아가는 이들 곁에 아침달이 함께라면 좋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