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미국 크루즈 라인의 입사는 바로 승선으로 이어졌다. 시차로 비몽사몽 하며 혼자서는 방도 제대로 못 찾아가던 나는 첫날부터 프런트 데스크에 바로 투입되었다. 어깨와 팔이 한참 남아도는 큼직한 유니폼을 입고 매니저가 지시한 대로 내 전담 트레이너 카르멘을 졸졸 따라다니는 것이 그 시작이었다. 처음 며칠은 카르멘 옆에서 그녀가 게스트에게 어떻게 말하는지, 어떤 부서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하는지, 게스트 로그를 어떻게 작성하는지를 유심히 보고, 받아 적었다. 데스크에서는 카르멘 옆에 찰싹 붙어서 그녀가 게스트에게 하는 말을 귀를 쫑긋하고 들으며 입으로는 열심히 되뇌었다.

늘 카르멘과 붙어 다니다 보니 내가 혼자였던 유일한 시간은 1층 내 방에서 5층 데스크까지 올라가는 짧고 간소한 출근길이었다. 크루즈 둘째 날이었을 거다. 어떤 게스트가 계단을 올라가는 나에게 손짓했다. 지금이었다! 처음으로 내 힘으로 게스트를 도울 수 있는 순간. 그는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Could you tell me where the reception is?” (리셉션이 어디예요?)
이제 와서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당시의 나는 그가 말하는 리셉션이 뭔지 몰랐다. 내가 배운 리셉션은 하나였다. 배에서 둘째 날 저녁에 캡틴이 주관하는 샴페인 파티를 “Captain reception”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나는 게스트에게 리셉션은 저녁 일곱 시에 메인 스트릿에서 시작한다고 자신 있게 알려주었다. 그는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말했다.
“No no, I am looking for the reception desk.” (아니요. 그 파티 말고 ‘리셉션 데스크’를 찾고 있어요.)
데스크? 리셉션 데스크? 머뭇거리고 있자 게스트가 약간 가시 돋친 목소리로 말했다.
“You are working in the hotel, and you don’t know where the reception is? I am just looking for a front desk!” (아니 호텔에서 일하는 직원이 리셉션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게 말이 돼요? 프런트 데스크 하나 찾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그제야 나는 그가 말하는 리셉션이 프런트 데스크라는 걸 깨달았고, 나도 마침 가는 중이니 같이 가자고 했다. 그리고 그때서야 게스트도 내가 데스크의 위치를 몰랐던 게 아니라 “Reception”이 내 단어장에 아직 없는 단어였음을 알아차렸던 것 같다. 데스크에 다 왔을 때 그는 내 눈을 바라보며 다정하게 말했다.
“Sorry, I got you wrong. You are very kind, and I really appreciate your help today.” (미안해요. 내가 당신을 오해했어요. 당신은 정말 친절한 직원이고 도와주어서 감사해요.)
나의 첫 게스트 대면은 성공이었을까 실패였을까. 분명한 건 그렇게 난 배우며 성장했다는 사실이다. 한 단계 나아졌다 싶으면 또 내가 모르는 것을 묻는 게스트가 나타나 나를 긴장하게 했다. 일주일 동안 게스트들과 얼굴을 트고 익숙해졌다 싶으면 그들은 떠나고 새로운 삼천 명의 게스트가 새로 탔다. 수많은 처음과 맞닥뜨리고 작은 성공과 자잘한 실수들을 반복하며 같은 해 나는 VIP 게스트를 전담하는 컨시어지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까지는 따뜻하고 푸근하게 나를 보듬어준 매니저들과 동료들이 있었고, 마음 착한 게스트들의 다독거림이 있었다.

크루징을 하면서 셀 수 없는 만남, 헤어짐, 그리고 재회를 겪는다. 그리고 많이 겪었다고 해서 익숙해지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배운다. 아무리 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해도 처음은 언제나 설레고, 작별의 인사에는 늘 마음이 찌르르하다. 그렇게 세계 곳곳에 심어진 나의 작고 단단한 인연의 씨앗들은 나에게 말 없는 응원을 보내준다. 늘 보면서 매일 물을 주고 가꿀 수는 없지만, 그곳에 잘 있겠지 하는 마음만으로 안도가 되어준다. 각자의 자리에서 행복할, 웃고 있을 인연들.
지금도 이집트에서는 남루하지만, 눈이 빛나는 소년들이 관광객들에게 피라미드를 손바닥에 얹은 것처럼 보이는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청산유수같이 말하며 푼돈을 요구하고 있을 것이다. 오클랜드의 한 작은 카페에서는 최고의 라떼아트를 할 줄 아는 청년이 문신이 가득한 팔로 커피를 내리고 있을 것이다. 색의 향연이 어우러지는 홍콩의 거리는 여전히 소란스럽고 활기차겠지. 온두라스의 해변에는 게으른 누렁이가 어슬렁거리고 있을 것이고, 푸에르토리코의 고양이들은 여전히 관광객들을 피해 그늘에서 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내 앞에 펼쳐진 무한한 바다.
만남과 이별이 손을 맞잡고 있는 곳.
그곳에서 난 매일의 ‘처음’이 이루어내는 작은 기적을 경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