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머니의 권유로 첼로를 배웠다. 그리고 대학에서 첼로를 전공했고, 첼리스트가 됐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길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인지 몰라도 마음 한구석에는 늘 뭔지 모를 갈증이 있었다. 그러던 중 나에게 첼로를 배웠던 한 학생이 큰 콩쿠르에서 상을 타게 됐고, 학생은 내게 고맙다며 신라 유물을 재현한 귀고리를 선물했다. 그것을 본 순간, 설명할 수 없는 큰 감동을 받았다. 진품도 아닌 모조품이었는데도 그 정교함이 매우 아름답게 느껴졌다. 
우리나라 전통, 그리고 장신구에 대해 좀 더 디테일하게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밤낮으로 환자를 봐야 하는 남편과 입시를 준비하는 자식이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분야의 공부를 시작한다는 것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 내게 남편은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데 지금도 늦지 않았다며 큰 힘을 줬다. 딸도 본인의 공부는 본인이 해야 하는 것이라며 나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해줬다. 
그렇게 40대가 되어 주얼리 공부를 시작했다. 신라 유물의 아름다움에 반해 시작한 것이기에 나의 작품 세계에는 한국 전통의 모티브가 살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국적인 모티브로 주얼리 디자인을 한다는 것에 주변의 심한 반대가 있었다. 당시에는 ‘전통은 고루한 것’, ‘한국은 디자인 카피의 나라’라는 인식이 있었기에 ‘Made in Korea’ 주얼리가 인정받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통 과정을 경유해 한국 제품임에도 ‘Made in France’ 마크를 달고 나오는 브랜드도 허다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욕심 없이 시작한 공부였지만 눈에 띄는 성과들이 계속 나타났다. 신라의 태환이식 귀고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 ‘문희의 꿈’이 이태리 월드 골드 카운실에서 1등상을 수상하고, 유네스코로부터 최우수 수공예품 인증서를 획득했다. 한국을 모티브로 한 작품들이 아이러니하게도 해외에서 먼저 인정을 받은 것이다. 해외의 유수한 대회에서 연이어 수상하게 되자 국내의 큰 기관들로부터 사업을 함께 하자는 제의를 받았다.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상품 개발자로 선정되기도 했는데, 정부 기관과 일을 하려면 사업자 등록증이 필요했다. 사업을 할 생각이 없던 나는 그 일을 계기로 사업자 등록증을 발급받았고, 청담동에 숍을 오픈하게 됐다. 그동안은 개발과 전시 등을 하면서 작가로서의 삶을 살았는데, 갑자기 숍을 운영하게 되면서 큰 부담감이 밀려왔다. 
사업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기도 했지만, 그 무렵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자신감이 하락했다. 그때 우리 딸이 큰 힘이 되어줬다. 딸은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었는데, 울고 있는 나를 다독이며 밤새 오프닝 준비를 해줬다. 덕분에 성공적으로 오픈식을 치르고, 희망차게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었다.
숍을 오픈하고 매년 꾸준히 성장세가 있었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미실(고현정 분) 주얼리가 큰 인기를 얻게 되면서 대중적인 인지도도 생겼고, 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나의 작품 세계가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미디어 노출 횟수가 잦아지면서 디자인의 가치가 쉽게 여겨지는 일도 생겼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일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이제는 일을 그만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그때, 우리 딸은 포기하지 말자며 다시 내게 큰 힘이 되어줬다. 
딸은 내 이름 ‘민휘’를 앞세운 ‘민휘아트주얼리’라는 브랜드를 독자적으로 내세우며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후 각종 드라마와 영화를 비롯해 엑소와 트와이스 등 케이팝 가수들에도 ‘민휘아트주얼리’를 입혀내며 큰 활약을 펼쳤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열린 패션쇼에 참여하기도 했고, 카네기홀 오페라를 통해 우리 주얼리를 무대에 선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주얼리를 활용한 USB, 보석함 등의 소품, 미술 작품 등 작품의 범위도 넓어졌다. 
이처럼 다양한 채널에 비친 딸의 작품들이 한류 바람을 타면서 우리 브랜드에 해외 팬들이 생기게 됐다. 얼마 전에는 싱가포르의 한 팬이 내가 참여한 <선덕여왕>의 이순재 씨 역할이 딸 재인이가 참여한 <화랑>의 박형식 씨와 같다며 두 분의 장신구를 합성한 엽서를 선물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딸의 작업을 통해 수년 전의 내 작업도 함께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작은 일화지만 앞으로도 이런 일들을 꾸준히 만들어나가고 싶다. 아주 오래전의 유물들이 현재의 작업들을 통해 끊임없이 현 세대로 되살아나는 그런 작업들 말이다. 딸과 함께, 한국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려나가는 작업을 계속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