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 같은 하늘, 같은 시간 아래엔 ‘나’ 아닌 ‘타인’이 있고, ‘이곳’이 아닌 ‘저곳’에 또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가끔 긴 시간 동안 다른 곳에서 다른 이들을 만난다는 건 가슴 설레는 일입니다.
퇴근길, 광화문 네거리에서 총총걸음을 하며 걸어가는 사람들을 봅니다.

 기차처럼 이어진 버스들, 한 창가에서 밖을 바라보는 이들의 눈빛을 봅니다. 거인 같은 수많은 콘크리트 빌딩들, 반짝반짝 형형색색의 빛을 비추는 유리 외벽들, 어느덧 뭔가에 지칠 대로 지쳐 축 처진 내 자신의 어깨를 의식합니다.
 그때마다 히말라야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그들을 생각하면 왠지 마음이 편해지고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한동안 잊혔던 그들은 언젠가 꼭 만나야 할 친구가 되었습니다.
 히말라야는 지구상 가장 매혹적인 곳 중의 하나입니다.

 인류 시원(始原)의 땅이며, 만년설 아래 많은 신(神)들이 살고 있는 경외의 땅, 또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들 중 상당수가 밀집해 있는 도전의 땅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순례자와 산악인들, 트레커들이 고산증과 추위를 견디며 끊임없이 찾아오는 곳!
히말라야 서쪽의 시작 카라코람 히말라야에서 인도히말라야, 네팔히말라야에 이르기까지 직선거리 2,400Km, 6개월의 여정으로 둘러보았습니다.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존재를 알게 해준 여행, 이미 있는 ‘나’의 존재를 다시 한 번 뒤돌아보게 한 ‘성찰’의 시간이었습니다.
 척박한 히말라야 고산 풍경, 여러 종족의 생활, 어린이들의 천진한 모습들…

 같은 하늘 아래, 사람들이 어쩜 이렇게 다르게 살 수 있는지…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밝았고, 우리 같은 외지인은 그들에겐 오히려 호기심의 대상일 뿐이었습니다.

 그들에게 히말라야는 신들이 사는 신성한 땅이고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사실 히말라야를 다녀온 직후부터 히말라야 사진 원고를 한 달 가까이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6개월은 너무 긴 시간이었고, 몸과 마음이 지쳤는지 아니면 다시 시작한 도시생활과 회사생활에 부적응했는지 오히려 현재 내 위치가 어진지 헷갈렸습니다.
 귀국한 지 두 달째가 되어서야 사진과 글 원고를 서서히 정리하다가, 그때 보았던 산들, 사람들이 다시 보고 싶고 그리워졌습니다.

 원정 당시엔 매일매일 다음 목적지를 향해 걷고 달리고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주변의 아름다운 산과 사람들이 있었어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입니다.

 삶과 일, 사람들을 보는 내 태도가 문제였습니다.
 고산증에 시달린 나를 따뜻하게 돌봐준 파키스탄 부니마을 가족들, 결혼잔치에 불러준 훈자마을 사람들, 하루 종일 공사장 골재로 쓰일 돌을 깨고도 1.5달러밖에 못 받는 소녀일꾼들, 불안 속에 살면서도 따뜻한 눈길을 보내준 카슈미르 분쟁지역 사람들, 깊은 산중에 학교도 못 가고 양치기로 살아가는 아이들, 6,000m 고산까지 20kg이 훨씬 넘는 내 짐들을 짊어졌던 포터들…

 낯선 이방인의 카메라에 따뜻한 미소를 보내준 그분들이 아니었더라면 6개월의 유랑은 그저, 허망한 나그넷길 이었을 겁니다.
 산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산은 언제나 굳건히 그 자리에 서 있고, 그저 수많은 사람이 어미 양을 타고 노는 새끼 양들처럼 움직였을 뿐입니다. 이제 다시 그리워했던 히말라야 사람들을 만나러 갑니다.그들을 만나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매일 밤 가슴 설렙니다.

 어느덧 그들은 내 안으로 들어와 삶의 의미를 나누는 친구가 되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