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급상황 시 영사 콜센터로 전화하세요. 통화 누르시면….’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과연 이런 문자를 몇 번이나 받게 될까? 하루에도 몇 번씩 수신된 외교부 안내 문자만이 내가 국경을 넘나들고 있음을 알려주는 유일한 단서였다. 그때 나는 어디라고 말하기조차 애매한 유럽, 정확히는 독일을 둘러싸고 있는 나라와 나라 사이를 지나고 있었다.
독일은 유럽의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어 스위스, 프랑스, 오스트리아, 체코, 폴란드 등 9개 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그곳에 있는 나무와 숲들은 기이한 느낌이 들 정도로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야생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마치 인접한 나라들이 그곳을 신의 영역으로 남겨둔 채, 대자연에 아무도 손을 대지 않기로 굳게 약속이나 한 듯이 말이다. 유럽의 숲은 눅눅하고 특유의 깊은 색감을 가지고 있어 때로는 그 속에 있는 나 자신의 존재조차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굴러가는 게 신기할 정도로 낡은 폭스바겐의 폴로(작은 경차) 속에는 오래된 사진관에 골동품으로나 남아있을 법한 나보다 나이가 많은 카메라 한 대와 비눗방울을 만드는 도구, 그리고 창을 뚫고 들어오는 빛이 전부였다. 이렇다 할 목적지 없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풍경을 만나면 그 자리에서 바로 비눗방울을 만들었다. 비눗방울은 온도와 습도, 바람의 세기에 민감하여 제멋대로 날아다니고 쉽게 터져버리기 일쑤여서 종잡을 수가 없는 존재이다.
그것은 수십 번의 탄생과 소멸을 반복하다가 마침내 풍경과 하나가 되는 찰나의 순간을 허락한다. 그 순간, 비눗방울은 찬란하게 반짝였고 그 풍경에 어울리는 단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비눗방울과 풍경은 10년 전의 나를 떠올리게 한다.
10년 전, 유학으로 처음 만난 런던이라는 도시는 마냥 신기하고 호기심으로 가득한 곳이었고, 두려울 것 없는 공간이었다. 25살의 나는 모든 것이 새로웠고 그 자체로 반짝였으며 치열하게 사랑했고 또 많이 아파했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그때는 그랬다. 당장이라도 깨져버릴 것 같이 연약하고 불안정하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웠던 비눗방울은 바로 그 시절 나의 모습이었다. 반짝이는 눈으로 새로운 세상을 바라봤고 편견 없이 온몸으로 투명하게 받아들였으며 언제고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열정적이고 순수했다.
런던에서의 첫 전시에서 수십 번의 실패 끝에 처음으로 완성한 버블 작품 #1이 판매 되어 비로소 나에게 작가라는 이름을 갖게 해주고 기꺼이 그 작품의 풍경이 되어준 나무에게는 꼭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다.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다 우연히 만나게 된 장소들이라 그곳을 다시 찾는 것은 연락이 끊긴 옛 연인을 찾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어렵사리 다시 찾은 그 나무는 그때의 그 모습이 아니었다. 숲의 주인이던 웅장한 기세는 사라지고 형광색 스프레이로 벌목 예정 표시가 흉측하게 되어 있었다. 나무도 자신의 미래를 예견한 듯 앙상하고 초라한 모습에 불과했다. 그때 깨달았다. ‘아, 그 순간에만 잠시 허락된 풍경이었구나.’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우연히 만나게 된 숲속의 작은 나무와 들판의 피어있던 꽃, 호수의 바람들처럼 지금 나를 지나치는 소소한 인연과 시간은 어쩌면 지금만 허락된 풍경은 아닐까? 바로 지금이 찬란하게 빛나는 그 순간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는 그때 반짝였고 불안정했으며 아름다웠다.

사진1 : ‘버블시리즈 #1’,
사진2: ‘버블시리즈 #21’


‘위급상황 시 영사 콜센터로 전화하세요. 통화 누르시면….’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과연 이런 문자를 몇 번이나 받게 될까? 하루에도 몇 번씩 수신된 외교부 안내 문자만이 내가 국경을 넘나들고 있음을 알려주는 유일한 단서였다. 그때 나는 어디라고 말하기조차 애매한 유럽, 정확히는 독일을 둘러싸고 있는 나라와 나라 사이를 지나고 있었다.
독일은 유럽의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어 스위스, 프랑스, 오스트리아, 체코, 폴란드 등 9개 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그곳에 있는 나무와 숲들은 기이한 느낌이 들 정도로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야생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마치 인접한 나라들이 그곳을 신의 영역으로 남겨둔 채, 대자연에 아무도 손을 대지 않기로 굳게 약속이나 한 듯이 말이다. 유럽의 숲은 눅눅하고 특유의 깊은 색감을 가지고 있어 때로는 그 속에 있는 나 자신의 존재조차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굴러가는 게 신기할 정도로 낡은 폭스바겐의 폴로(작은 경차) 속에는 오래된 사진관에 골동품으로나 남아있을 법한 나보다 나이가 많은 카메라 한 대와 비눗방울을 만드는 도구, 그리고 창을 뚫고 들어오는 빛이 전부였다. 이렇다 할 목적지 없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풍경을 만나면 그 자리에서 바로 비눗방울을 만들었다. 비눗방울은 온도와 습도, 바람의 세기에 민감하여 제멋대로 날아다니고 쉽게 터져버리기 일쑤여서 종잡을 수가 없는 존재이다.
그것은 수십 번의 탄생과 소멸을 반복하다가 마침내 풍경과 하나가 되는 찰나의 순간을 허락한다. 그 순간, 비눗방울은 찬란하게 반짝였고 그 풍경에 어울리는 단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비눗방울과 풍경은 10년 전의 나를 떠올리게 한다.
10년 전, 유학으로 처음 만난 런던이라는 도시는 마냥 신기하고 호기심으로 가득한 곳이었고, 두려울 것 없는 공간이었다. 25살의 나는 모든 것이 새로웠고 그 자체로 반짝였으며 치열하게 사랑했고 또 많이 아파했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그때는 그랬다. 당장이라도 깨져버릴 것 같이 연약하고 불안정하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웠던 비눗방울은 바로 그 시절 나의 모습이었다. 반짝이는 눈으로 새로운 세상을 바라봤고 편견 없이 온몸으로 투명하게 받아들였으며 언제고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열정적이고 순수했다.
런던에서의 첫 전시에서 수십 번의 실패 끝에 처음으로 완성한 버블 작품 #1이 판매 되어 비로소 나에게 작가라는 이름을 갖게 해주고 기꺼이 그 작품의 풍경이 되어준 나무에게는 꼭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다.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다 우연히 만나게 된 장소들이라 그곳을 다시 찾는 것은 연락이 끊긴 옛 연인을 찾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어렵사리 다시 찾은 그 나무는 그때의 그 모습이 아니었다. 숲의 주인이던 웅장한 기세는 사라지고 형광색 스프레이로 벌목 예정 표시가 흉측하게 되어 있었다. 나무도 자신의 미래를 예견한 듯 앙상하고 초라한 모습에 불과했다. 그때 깨달았다. ‘아, 그 순간에만 잠시 허락된 풍경이었구나.’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우연히 만나게 된 숲속의 작은 나무와 들판의 피어있던 꽃, 호수의 바람들처럼 지금 나를 지나치는 소소한 인연과 시간은 어쩌면 지금만 허락된 풍경은 아닐까? 바로 지금이 찬란하게 빛나는 그 순간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는 그때 반짝였고 불안정했으며 아름다웠다.


사진1 : ‘버블시리즈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