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진촬영을 하는 것이 나의 일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나에게 이런 세 가지 질문을 가장 많이 한다.
 

 “여행 많이 다녀서 좋겠어요?” “가장 좋았던 곳은 어딘가요?” “마지막으로 좋은 여행지 추천해 주세요.”

 사실 난 사람들이 흔히들 말하는 ‘여행통’은 아니다. 혼자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여행가와 달리 나는 ‘세계’라는 공간이 주는 다양한 경험, 찰나의 순간이 주는 사진적 묘미 때문에 여행을 택했을 뿐이다. 결국 나에게 있어서 사진이 주고, 여행은 부수적인 것이다. 여행 사진의 묘미 중 찰나의 순간이 주는 감동은 나로 하여금 7년이 넘게 여행 잡지에 머물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여행 사진에 있어서 찰나의 순간이란 무엇일까. 이는 한 공간에서의 빛, 날씨, 사물, 사진을 찍는 나 자신이 삼위일체가 되는 순간을 말한다. 모든 상황이 상호작용이 되었을 때 비로소 나만의 사진이 완성되는 것이다.

 물론 여행 중 찰나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 순간은 더 매력적으로 남아있지 않을까. 또한 똑같은 순간이 적용되더라도 공간을 쪼개고 셔터를 누르는 차이에 따라 다른 사진이 되기도 한다. 나는 풍경보다도 사람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그중 연인들의 모습이 늘 나의 눈길을 끈다. 찰나의 순간이 기억되는 여행지 중 특별히 생각나는 곳은 바로 스위스다.

 나는 여행지 중 스위스를 좋아한다. 약간의 ‘깔끔병’이 있어서 그런지 오래되었지만 정돈된 도시, 그림 같은 대자연의 풍경이 한국을 떠나 처음으로 살고 싶은 곳이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이처럼 아름다운 스위스의 여러 도시를 다녀봤지만 사실 스위스의 수도에는 별관심이 없었다. 나의 무지함은 스위스의 수도가 당연히 제네바일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으로 이어졌을 뿐이다. 융푸라우(Jungfrau) 지역만 4번 정도 갔었는데, 그때도 역시 촬영차 갔다가 마지막으로 베른(Bern)을 하루 정도 들르게 되는 일정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이 작고 오래된 도시가 스위스의 수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붉은 지붕이 늘어선 베른은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오래된 도시다. 오늘날에도 중세시대의 모습을 온전히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되어 있다. 12세기 경 언덕 위에 지어진 이 도시는 그 당시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만 아케이드에는 트렌디한 숍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고, 지하 저장고에는 갤러리와 레스토랑이 자리 잡으면서 21세기를 받아들이고 있다. 또한 선명하게 붉은색의 트램은 사람들을 쉴 새 없이 실어 나르고 있지만 시계탑에서 바라본 올드타운의 풍경은 15세기 때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다닥다닥 이어진 도시에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셈이다. 전 세계 수많은 관광객들이 오가는 곳이지만 여전히 평화롭고 차분하다.

 이렇게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이 추억을 만들기 위해 오가는 이곳 베른에서 내 시선을 한 눈에 사로잡은 두 연인이 있었다. 빠른 속도로 지나쳐가는 새빨간 트램 사이에 보란 듯이 자신의 젊음을 격렬한 키스로 보여주는 ‘젊은 연인’과 ‘따사로운 햇빛’이 정지된 화면으로 시야에 들어왔다. 그 사이로는 뒤에 늘어선 ‘오래된 건물’처럼 조금씩 간격을 두고 떨어져 걷지만 걸음걸이에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노년의 연인’이 있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왔지만 현재는 같은 공간, 같은 시간대를 걷고 있는 이 두 연인들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베른의 현재 모습을 경험하게 해주었다. 단 하루라는 짧은 여행기간 동안 그 시간 그 공간에 내가 있음으로 하여금 이 모든 우연의 상황이 내 앞에 펼쳐짐으로써 이 순간을 담을 수 있었다. 이런 짜릿한 순간의 묘미는 여행 그 자체보다

사진을 더 좋아하는 나만의 여행법이다.